[Weekly BIZ] 300조원 굴리는 캐나다의 워런 버핏 "수년 內 금융위기.. 현금 쥐고 있어라"

남민우 기자 2016. 12.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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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부동산·인프라에 투자하는 브룩필드자산운용 CEO 브루스 플랫

2008년 10월 16일.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을 사시오(Buy American, I am)'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썼다. 불과 한 달 전 세계적인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내면서 미국 월가는 물론 워싱턴 정계마저 혼란에 휩싸인 시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이 욕심을 낼 때 두려워하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을 내는 것이 투자 원칙"이라며 "한 달이 걸릴지 1년이 걸릴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주가는 반드시 지금보다 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루스 플랫(오른쪽) 브룩필드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는 저평가 실물 자산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려 ‘캐나다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5년간 자산운용업계에 몸을 담아 온 그는 “가치 투자 원칙을 지키고, 투자 대상과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고운호 기자

뻔한 얘기로 들릴 법하지만 당시 버핏의 충고에 귀를 기울인 투자자는 많지 않았다. 극도의 신용 경색 속에서 모두가 현금을 손에 쥐기를 원했다. 런던 자금 시장에서 하루짜리 달러 자금을 빌리는 데 적용되는 리보(Libor) 금리가 무려 연 10%를 넘을 정도였다. 현금의 가치가 치솟자 반대로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급락했고, 투자자와 기업들은 조금이라도 손실을 줄이려 보유 자산을 헐값에 팔아 치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투자자들의 패닉이 정점에 달하던 그해 11월. 브루스 플랫(Flatt·51·사진) 브룩필드자산운용 최고경영자(CEO)도 버핏처럼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브룩필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에게 "앞으로 2년간 장기 평균을 넘는 투자 수익을 내겠다"는 약속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비이성적으로 가격이 떨어진 우량 자산이 많아져 투자 기회는 오히려 늘었다는 판단에서다. 투자 손실 해명하기 바빴던 당시 월가에선 보기 드문 메시지였다.

플랫은 이듬해 전 세계를 돌며 직접 투자 대상을 골랐다. 런던 금융 중심지의 오피스 건물, 미국 교외 지역의 대형 쇼핑몰, 호주의 석탄 터미널 등이 투자 대상에 포함됐다. 신규 투자 금액도 2008년 17억달러에서, 2009년 24억달러, 2010년 60억달러로 과감하게 늘렸다. 당시 투자금은 몇 년 뒤 연 10~20%의 높은 투자 수익으로 돌아왔다. 이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평균 수익률보다 2~3배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 중부 위니펙 출신의 플랫 CEO는 일시적으로 가격이 급락한 실물 자산에 과감하게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려 월가에 이름을 알린 투자 전문가다.

9·11 테러 여파로 뉴욕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급등하던 2002년 월드트레이드센터(WTC) 인근 건물에 투자해 나중에 높은 임대 수익을 올린 것도 그의 대표적인 투자 사례로 꼽힌다. 기업 가치보다 현재 주가가 낮은 회사에 투자하는 버핏의 '가치 투자'와 비슷한 투자 방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플랫에겐 '캐나다의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회계 법인인 언스트앤드영에서 일하다 1989년 브룩필드에 합류한 플랫은 2002년부터 브룩필드의 CEO로 재직 중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브룩필드의 운용 자산 규모는 2380억달러(약 282조원)로, 주요 투자 대상은 부동산, 인프라, 에너지 설비 등 실물 자산이다. 국부 펀드에 버금가는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캐나다의 워런 버핏'은 내년 세계경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어떤 투자 전략을 갖고 있을까.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플랫 CEO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만났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서 최근 수년간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언제까지 호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가.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수년 내 또 다른 금융 사고가 터져 자산 가격이 꺼질 때가 올 것이라고 본다. 금융시장의 불마켓(강세장)도 8년 가까이 이어졌고, 채권 가격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 결과 현금의 가치는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현금을 비축해 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브룩필드도 최근 일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현금 보유량을 늘렸다(브룩필드는 현금 보유량을 지난해 말 27억달러에서 올해 9월 말 43억달러로 늘렸다). 현금은 위기가 터지고 나서야 쓰임새를 깨닫게 된다. 브룩필드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2010년에 미국·브라질·인도·콜롬비아·페루 등 전 세계 곳곳에서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현금을 비축해 놓은 덕분이었다. 지금부터 현금 비축량을 늘리면 단기 수익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올해 4월 미국계 보험회사인 AIG가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를 매물로 내놓자 국내 부동산 업계는 후끈 달아올랐다.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동산 거래가 예상됐던 데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비교적 높은 임대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중국계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한국에서 최초로 인수전에 뛰어들 정도로 경쟁이 치열했다.

브룩필드는 지난 11월 IFC 인수전에서 블랙스톤, 싱가포르투자청(GIC), CIC 등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승리를 거두며 국내 금융권에 존재감을 알렸다. AIG가 제시한 최초 매각 가격은 3조원이었으나 IFC의 높은 공실률과 공동 매물로 나온 콘래드호텔의 부진한 실적 등을 감안할 때 최종 매각 가격은 2조4000억원 안팎으로 낮춰진 것으로 부동산 업계는 보고 있다. IFC 준공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졌던 탓에 AIG와 브룩필드 모두 최종 매각 가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처음 투자한 금액이 수조원에 달한다. IFC 인수를 결심한 계기는.

“최소 수십조원을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국가를 고르는 것이 기본 투자 원칙이다. 또한 해외 자본에 대한 불이익이 없는지도 꼼꼼히 살핀다.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투자 금액을 10조~20조원까지 늘릴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수년 전부터 한국 진출을 염두에 뒀으며, 공식적으로 지사를 설립하고 사람을 모은 것은 2년 전부터다. IFC 인수 전까지 한국을 15번 방문했다. 서울에 국제적인 쇼핑몰이 부족한 점을 감안할 때 IFC는 잠재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리적 요건과 입찰 조건 등을 감안할 때 좋은 투자 대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의 금리 인상 등으로 투자 환경이 나빠졌다고 보는가.

“실물 자산에 장기 투자할 때 가장 신경 쓰는 지표는 장기 금리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려도 기존 투자에 영향을 미칠 만큼 장기 금리가 빠르게 오르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금융 규제 강화, 원자재 가격 급락 등으로 인해 경제 성장의 촉매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저금리 패러다임에 큰 변화는 없다는 게 기본적 시각이다. 유럽·일본 중앙은행의 마이너스 금리로 미국 국채 수요가 늘어난 점도 금리를 끌어내리는 주요 요인이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많은 투자자가 심한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저금리 덕분에 현재 실물 자산 시장은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Goldilocks·이상적인 상태)’에 가깝다. 브룩필드의 최근 1년간 투자 금액만 200억달러가 넘는다. 다만 금융시장의 강세장이 오랜 기간 이어진 만큼 앞으로 과거보다는 보수적으로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많은 정책적인 변화가 예고되는데, 투자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트럼프가 친기업 성향이라는 점과 그가 예고한 경제정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투자 전략을 바꿀 만한 요인이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트럼프는 1조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공약을 내세웠다. 물론 인프라 투자가 주 수입원인 브룩필드엔 호재다. 그러나 인프라 투자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려면 최소 3년에서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하면 그의 당선이 투자 방향을 뒤바꿔 놓지는 않았다. 다만, 미국뿐 아니라 현재 대다수 국가가 높은 수준의 부채를 안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인프라 사업은 민영화가 불가피하다. 민간 자본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더 많은 투자 기회가 생길 것으로 본다.”

―현재 브룩필드의 주요 투자 대상은 무엇인가.

“브룩필드의 포트폴리오엔 브라질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독일 베를린 중심지의 오피스 단지, 아일랜드의 풍력발전소, 콜롬비아의 수력발전소, 영국의 아파트 단지, 프랑스의 통신 인프라 등 전 세계 실물 자산이 담겨 있다. 1899년 문을 연 브룩필드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재벌 집단에 가까웠다. 브라질 목장에서부터 맥주 기업까지 많은 분야의 사업을 갖고 있었다. 현재는 부동산, 재생에너지, 인프라 등 세 가지 분야에 집중한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신흥국에도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배경은.

“중국·브라질 등 중산층이 두꺼운 신흥국은 투자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신흥국 투자에만 집중했을 정도다. 현재 전 세계 35개국에 투자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데, 이 중엔 중국·인도뿐 아니라 콜롬비아·페루·칠레 등도 포함된다. 그러나 신흥국 투자는 준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 인도에 처음 진출했을 때 많은 외국 투자 자본이 낭비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작은 규모의 투자만 했다. 2008년 시장이 요동치고 나서야 ‘가치 투자’의 기회가 보였다. 투자 실패는 목숨도 앗아갈 수 있다. 이런 실패를 막기 위해서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베팅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는 이를 ‘끊임없는 점진주의(relentless incrementalism)’라고도 부른다.”

―많은 투자자가 장기 투자의 중요성을 말하는데, 어떤 차별점이 있는가.

“금융권에서 말하는 ‘가치 투자’는 결코 무위험 투자가 아니다. 예를 들어 2007년 독일 호텔 사업에 투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2009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유동성 위기를 겪던 호텔 사업자가 디폴트 선언을 해버렸다. 당시 자산 매각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사업권을 넘겨받아 호텔 운영을 지속하기로 했다. 금융 위기 속에서도 호텔 본업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련을 겪으며 호텔 본업은 다시 제자리를 찾았고, 우리는 최근 이 호텔 포트폴리오를 팔아 큰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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