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 세상] 아이들은 '놀아주는 아빠'를 그리워한다

2016. 12. 2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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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매우 특별하다. 

10월만 넘어가도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는 진료실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는 단골 메뉴이다. 대개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다이노 XX’, ‘XX 메카드’ 등을 갖고 싶다고 얘기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다. 죄책감이 많거나 불안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해서 산타할아버지가 안 오시면 어쩌죠?” “산타할아버지가 나를 잊어버리고 빠뜨리고 가면 어쩌죠?라는 말을 한다.

언제가 병원을 찾은 볼이 통통하고 발그레 했던 한 아이는 ‘같이 놀아주는 아빠’를 선물 받고 싶다고 했다. 재미있는 주문이다.

“아빠는 매일 내가 잠든 후에 들어오시고, 일어나기 전에 회사에 가셔요” “일요일에도 회사에 가시는 적이 많아요” “일요일에도 잠 자거나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보세요. 아빠랑 놀고 싶은데 너무 피곤하시대요”라는 말에 가슴 한편이 아리고 짠해왔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아빠처럼 매일 같이 놀아주는 아빠 선물 받고 싶어요” 이 아이는 아빠와 같이 놀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아빠와 소통하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언어 보다는 놀이로 소통한다. 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아빠는 원천적으로 소통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아빠이고 아이에 가슴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아빠이며, 집에 있는 날도 ‘나보다는 텔레비전이나 스마트 폰과 시간을 보내는 아빠’는 ‘나를 거절하는 아빠’로 아이에게는 인식된다.

심지어 ‘텔레비젼에 나와 아이와 환상적인 이벤트나 놀이를 매일(적어도 아이들에게 ‘매일’이라고 인식된다) 해주는 아빠’와 내 아빠를 비교하면서는 상대적인 박탈감까지 느끼게 된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아빠들이 아이들과 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여한 부분도 많기는 하다.

이런 박탈감은 아빠들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쳇! 저이들은 잘나가는 연예인이니까 시간도 많고 여유가 있어서 그렇지!”라며 화가 난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이나 아내에겐 더욱 미안하다. 가족을 위해서 야근도 마다 않고 주말에도 수당없는 특근을 하고 있건만 인정받기는 커녕 못난 아빠, 게으른 아빠 취급이나 받고 있으니 억울할 법도 하다.

그마나 ‘연예인 아빠’ 코스프레 라도 하는 아빠들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거나 전문직을 갖고 있거나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는 경우다. 하지만 아빠와의 놀이가 전정으로 필요한 연령대의 아빠들은 이런 위치에 있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요즘 어린아이를 키우는 X세대 아빠들은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를 들으며 자라난 세대다. 이 아빠들의 아빠들은 ‘노동을 신성시하며 놀이를 죄악시’ 하는 근대적 가치를 지상과제로 살아왔던 분들이고 자녀에게도 그런 가치를 전수해 주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요즘 아빠들 또한 아빠와 놀아 본 적이 별로 없다.

경제적으론 다소 풍족해 지는 시대에 살아 물질 지향적이면서 ‘가부장적인 일만하는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적대적 동일시’(싫어하는 대상의 특징을 닮아가는 방어기제로 부모의 행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특성을 갖고 있어도 어린애에게는 그것이 강점으로 보이므로 닮아간다) 해왔다. 아빠들이 아이들과 놀 줄을 모른다. 그래서 사람이 변하려면 3대의 변화가 필요한 거다.

더구나 알파고가 우리 노동의 많은 영역을 차지하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의 근대의 근면정신과 노동의 윤리는 빛을 잃어가고 있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알파고와는 차별성을 갖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고 그것은 바로 ‘상상력과 놀이’ 이다.

부모부터 달라져야 할 거다. 그들에게도 노동 뿐 아니라 ‘놀이’가 있어야 하고 그들의 유년시절에 경험하지 못한 ‘놀이’의 즐거움을 이제라도 알아가야 한다. 아이들의 상상과 놀이의 세계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고 경이로운지 아빠들도 아이의 위치로 퇴행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자신에게도 멍 때리는 시간을 주고 놀아도 봐야하고 아이들에게도 이걸 보여 줘야한다.

헌데 지친 아빠에게 놀이는 사치일 수 있다. 먼저 아빠들에게도 저녁의 휴식과 자유시간을 허용해야하지 않을까. 회장님, 사장님들 부탁드립니다!

이호분 (소아정신과 전문의,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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