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문송' 청년들의 고백

임진희 원광대 한중관게연구원 연구교수 2016. 12. 23.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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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중국 명문대 학생들, 누가 이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나?

[임진희 원광대 한중관게연구원 연구교수]

 지난 10월 12일 "비전형적인 985 졸업생의 대학 시절"이라는 글 한편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여기서 '985'란 중국 정부가 세계 일류의 대학 건설을 위해 실시한 프로젝트로, 해당 프로젝트에 속하는 39개 대학은 흔히 말하는 명문대로 간주된다.

중국인민대학 졸업생으로 알려진 저자는 큰 포부를 가지고 17세에 대학에 입학하여 졸업 후에 홀로 베이징에서 궁색하게 살아가는 순간까지를 때로는 엄숙하게, 때로는 익살스레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은 많은 중국 젊은이들이 그 경험과 고통에 공감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국, 명문대 졸업장 소용없다?

저자의 글에 따르면 그는 문학과 구국을 향한 포부를 가지고 소위 말하는 명문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열심히 꿈을 쫒지만 무언가 심히 어설픈, 우리가 흔히 겪을 그러한 대학 생활을 이어가다 졸업을 앞두고 '문송(문과라 죄송한)'의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며 평범한 다수의 삶을 선택한다.

어려운 취업문을 뚫고서도 궁색하게 지내다가 월말 열심히 일한 자신에 주는 상으로 비싼 머리를 했던 저자는 문득 분기별로 내는 집세를 치를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보지만 실패하고 결국은 고향의 부모에게 손을 벌리게 된다.

두말 않고 선뜻 돈을 빌려준 부모는 후에 전후 사정을 묻고 오히려 번듯한 집을 사주지 못한 자신들의 무능력함에 미안해한다. 저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번듯한 명문대에 입학했고 긴 시간 문학과 구국의 꿈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20여 년간 길러준 부모에 또 다시 손을 벌리는 자신에, 그리고 무언가 더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부모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계급의 고착화, 사회적 불공정 등에 울며 괴로워하던 그는 가진 것이 명문대 자부심뿐이라면 가까운 사람에 상처 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 글은 많은 젊은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댓글이 이어졌는데 이 중 일부는 중국 사회의 학력, 외모, 재산, 배경에 따른 차별이나 구직, 주택, 빈부격차 등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며 울분을 토했다. 어떤 이들은 한때 문학가나 순수과학 연구자 같은 순수한 꿈을 꾸었던 자신이 현실과 생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정형화된 엘리트의 길을 걸어가거나,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비위를 맞추는 소위 말하는 평범한 길로 접어들게 되어버린 삶을 자조했다.

한편으로는 현재 중국의 평범한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에는 공감하지만 또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또 다른 명문대인 상하이 푸단대학 재학생은 "985, 211에 들어가고 나서야 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혹은......, 꼭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라는 글을 남겼다.

글의 저자는 세상 누구든 어느 정도의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으며, 명문대 학생은 노력을 통해 이미 많은 격차와 장애를 극복하고 성장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이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으며 널리 회자됐다.

개인의 허영심? 마음가짐의 문제?

그런데 이에 대한 중국 언론과 전문가 반응은 놀라웠다. 예상보다 더욱 냉정했고, 어찌 보면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명문대 후광이 인생에 이로운 것만은 아니라 말하며, 나아가 명문대생 스스로가 졸업장에 걸맞는 능력을 갖췄는지 돌아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서 재능과 노력으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학교나 사회 탓만 한다면 명문대 졸업은 오히려 상처만 될 것이라 지적했다. 개인의 노력을 통해 이상을 실현하고 보이지 않는 관행을 극복하라는 매우 익숙한 논리다.

'평범한 다수가 실패자인가' 라고 반문하는 언론도 있었다. 다원화된 시대에 성공과 실패, 우수함과 무능함, 탁월함과 평범함 사이에서 단순한 이분법적 기준으로 사람과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매체는 전문가 기고를 통해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매체는 이런 경우는 사회적 비교에 따른 열등감, 스스로 통제력을 잃어버렸을 때에 느끼는 무력감, 사회의 배척으로 인한 비관적 사고 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본인이 노력을 통해 명문대 출신이란 헛된 자부심을 버려야만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개인들이 제기한 의견은 더욱 매몰찼다. 그들은 명문대 졸업생이 현실을 모르고 허영심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좋은 학벌만 있다면 온갖 부귀영화가 따라올 거라고 기대하거나, 푸얼다이(부유층 2세), 관얼다이(고위 관료 2세), 싱얼다이(연예인 2세) 등 금수저 자손의 집안이 대대손손 노력하여 얻은 것을 단순히 몇 년간 공부 좀 잘했다고 따라잡길 바라는 그들이 문제라고 비난했다. 그나마 동정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저자가 겪는 고통은 사회에 처음 진출하면 으레 겪는 과정이며, 자신들도 젊은 시절 다 겪었던 일이라고 참고 견디라며 조언하고 있다.

무엇이 젊은이를 좌절하게 만들었나

중국인민대학은 필자의 모교이기도 하다. 글의 곳곳에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에 과거를 떠올리고 재미있는 일화에 때로는 웃음 지으면서 읽어 내려갔다. 물론 졸업 이후 꿈에서 멀어진 스스로에 대한 자조섞인 유머에는 씁쓸한 웃음만이 나왔다.

바쁜 일상에 치이다 자신을 위한 소소한 선물을 하고, 미처 생각지 못한 금전적 문제에 쩔쩔매며, 자신과 친구 그리고 부모에 대한 죄책감으로 눈물 흘린 저자에 공감하다가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이 글을 읽은, 현재를 살아가는 다수의 중국 청년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으면서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반성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과 경험을 공유했다. 사실 재밌는 것은 보통 젊은이의 글과 다른 소위 주류 언론과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그들의 분석과 의견에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명문대 졸업생 자신이 좋은 학벌로 인해 품었던 삐뚤어진 자부심과 우월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나아가 몇몇의 명문대 학생은 밑바닥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에 명문대 졸업장 하나로 당연히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고 기대하는 욕심쟁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는 없을까 생각해본다. 중국의 명문대 학생은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학업에 대한 가정과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려 노력해왔던 소위 말하는 착한 학생들이다. 그들에게 가정과 학교는 공부의 목적과 필요성 그리고 노력한 만큼 성공할 것이란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글의 저자가 바라는 것은 분에 넘치는 부나 권력이 아니다. 다만 대학과 사회에서 현실에 직면하며 그간 가르침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과 노력이 배신당한 사실을 깨닫고서 일종의 좌절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들은 부조리한 사회와 비양심적 권력에 의해서 자신의 어릴 적 포부와 지금까지의 노력이 배신당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끼지만 이를 바꾸지 못하는 본인의 무기력함을 블랙 유머로써 애써 자조한다. 분명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이상, 부모, 주변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밤을 새워 울고 괴로워하는 이들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오히려 지금까지 온순한 학생들을 호도해 좌절시킨, 나아가 개인에게 노력으로 극복하라 조언하는 사회와 국가에 책임은 없는지, 그렇다면 그들은 왜 존재하는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임진희 원광대 한중관게연구원 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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