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실리콘밸리의 보톡스 바람

최보윤 문화부 기자 2016. 12. 2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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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실리콘밸리 기술 전문가 중엔 나이 들어 보일까 봐 보톡스를 맞거나 모발을 이식하는 이가 꽤 있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나는 에이지즘에 반대한다'라는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의외의 문구다. '에이지즘(ageism)'이란 연령에 따른 차별을 뜻한다.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구글,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 등은 직원의 중위연령(median age·중간나이)이 29~30세일 만큼 젊은 기업이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라면 코딩과 프로그래밍 능력이 중요하지 나이가 문제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 애플화이트는 지난 9월 뉴욕타임스에 에이지즘 실태를 알리는 기고도 했다. 이 글에 소개된 엔지니어는 애플에서 21년 근무를 마치고 애플 제품을 수리하는 서비스센터에 재취업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엔지니어는 2005년 스티브 잡스를 설득해 맥(Mac) 컴퓨터에 탑재했던 IBM 파워PC 대신 인텔 프로세서를 적용하게 해 맥의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린 주인공이었다. 재취업에 실패한 그는 "나이 빼놓고는 떨어질 이유가 없다"며 씁쓸해했다.

가는 세월을 붙잡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거울 속에서 눈가 주름을 하나 더 찾아내거나, 어느 날 문득 한 올 도드라진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각본을 쓴 노라 에프론은 '내 인생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책에서 자글자글해진 목 주름이 보기 싫어 성형외과에 갔다가 얼굴 전체를 손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좌절했던 심정을 고백했다. 읽을 땐 무심히 지나쳤는데, 2016년의 몇 남지 않은 날들을 지워나가다 보니 에프론의 경험이 멀지 않은 내 미래 같기도 하다. 스물다섯 생일날 "꺾어진 오십"이라며 "좋은 시절 다 갔다"고 주위에서 반어적으로 축하해주던 젊음은 그날 허공에 흩어진 박수소리만큼이나 멀어졌다.

나이 드는 게 어쩐지 부끄럽거나, 심지어 비난받을 짓 한 것처럼 느껴지는 게 요즘 세태다. 연령차별이 일상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에이지즘' 용어는 1969년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가 노인뿐만 아니라 나이 드는 것 자체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기 위해 처음 썼다. 성(性)차별이나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높아졌지만, 노인에 대해선 '힘없고' '지적·성적(性的) 능력이 떨어진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그들을 존중하기보다는 부양해야 할 짐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심지어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과 미국의 트럼프 당선 이후 국내외 일부 뉴스와 토론 게시판에선 '65세 이상 투표 금지'가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노인들이 누릴 미래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겐 결정할 권리가 없다"는 등의 주장이 나온다. 젊은 층의 분노와 좌절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의 원망도 일견 이해할 법하다. 하지만 이런 연령차별적 행태는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누구도 시간의 수레바퀴 밖으로 나갈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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