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더 깊어진 고통..오늘도 '500원 순례길'

박소연 입력 2016. 12. 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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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22일) 밀착카메라는 '절박한 500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겠습니다. 올해 초 였지요.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받으려고 새벽부터 줄을 선 노인들을 밀착카메라가 전해드렸는데 한 해가 저물고 있는 지금은 고된 행렬이 더 길어졌습니다.

박소연 기자입니다.

[기자]

< 지난 1월 22일 >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렇게 긴 줄이 만들어졌습니다. 날씨가 워낙 춥다 보니 바닥에 신문지와 박스를 깔고 앉아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

500원. 라면 한 봉지 값도 안 되는 동전을 벌기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서 하루를 보내는 노인들을 다시 만나러 가봤습니다.

서울 반포동의 한 공원입니다.

지금 시각은 8시 10분, 겨울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입니다. 동전을 나눠주는 시간까지 1시간여 가량이 남았지만 이미 공원에는 수백 명의 노인이 모였습니다.

우산을 쓰고 비닐봉지로 몸을 에워싸봐도 차디찬 비바람까지 전부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모씨/80살 : 새벽 5시에 나와요. 여기 온 사람들은 다. 그리고 밤 늦게 들어가지. 매일 밖에서 생활을 다하는 거예요.]

자리싸움은 여전히 치열했습니다. 순서가 뒤로 밀리면 밥도 돈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떼를 부려! 이웃 사람 다 얘기해. (뭘 얘기해! 자리를 하나둘 맡아야지 왜 여러 사람을 맡아놔.)]

'짤짤이 코스'라고 자조적으로 부르는 노인들의 행렬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김모씨/60살 : 짤짤이 코스라고 해서 (하루) 열 군데 정도는 다녀. 500원짜리고 1000원짜리고…]

오히려 동전을 받으러 다니는 노인들은 늘었습니다. 이날 공원을 다녀간 노인은 410명, 지난 1월보다 꽤 늘었습니다.

반면, 1년 사이 기초연금은 최대 20만 4010원으로 거의 제자리 걸음입니다.

[전일학/81살 : (서울 영등포에서) 점퍼 얻는데 두 시간은 걸렸을 거야. 몇천 명이 왔으니까. (점퍼를) 5000원에 팔았지. 돈 써야지. 추워서 얼어 죽을 생각은 안 하고 돈 생각만 하는 거야.]

동전을 받은 노인들은 또다시 어딘가로 바삐 뛰어갑니다. 혹여나 무단횡단으로 사고가 나지 않을까 이렇게 노끈도 설치해놨습니다.

지적장애 2급 손자와 88살 조모 할머니가 사는 집도 다시 찾아갔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지냈죠! 뭐.]

석 달 전부터 할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동전 받는 일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소득은 정부지원금인데 지난달부턴 기초연금마저 끊겼습니다.

아들의 사망 보험금이 지급되는 등 일부 금융 재산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정한 지원 대상에서 탈락한 겁니다.

한 달 생활비는 국민연금과 손자의 장애인 연금 등 총 38만 5천여원입니다.

[조모 씨/88살 : 지금도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손자도 시설에다 넣는다고 알아봤는데 자리가 없어서 그런지 안 데려가네.]

노년층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 등이 발표한 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층 빈곤율은 46.9%. 노인 2명 가운데 1명은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김모 씨/80살 : 보기 어때요? 비참하죠? 대한민국 노인들의 삶의 현주소야. 최순실이 국정 농단하고 박근혜가 정치를 잘못하는 과정에서. 국민이 힘들고 어렵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첫째 정치인들의 책임이야.]

노인들이 떠난 공원에는 이렇게 깔고 앉았던 빈 박스 종이와 신문지가 놓여있습니다. 가난의 늪에 빠진 노인들에겐 더 힘겨운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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