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안에 '아주 특별한 고양이 집'이 생긴답니다

천선휴 기자 2016. 12. 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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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학교 내 길고양이들을 위한 집 지어주는 '대냥이프로젝트'
'대냥이프로젝트'의 김민기씨(왼쪽)와 지노진. © News1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학교 캠퍼스엔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고양이가 산다. 서울대 예술복합동 주변을 터로 삼아 사는 삼색 고양이 '르네'다. 나이가 몇 살인지, 언제부터 캠퍼스에서 살았는지 정확한 정보를 아는 이는 없지만 캠퍼스 안을 떠도는 르네는 언젠가부터 서울대생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됐다.

르네도 학생들을 무척 따른다. 먼저 다가가 애교를 부리고 가끔은 장난을 걸기도 한다. 학생들은 그런 르네의 모습을 공유할 수 있는 전용 SNS까지 개설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그들은 몇 년간 우정을 쌓아갔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학생들에겐 걱정거리가 생겼다. 추운 잔디밭에서 겨울을 나야 하는 고양이들에 대한 걱정이었다. 일부 학생이 뜻을 모아 르네와 함께 다니는 고양이 친구 세 마리를 위해 잔디밭에 작은 텐트를 설치했다. 한파가 몰아치자 텐트는 이불과 '뽁뽁이'로 무장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아는지 고양이들은 텐트를 곧잘 이용했다. 이들의 모습은 수의사를 꿈꾸는 수의학도에게 뜻 깊은 영감을 줬다.

서울대학교에 사는 길고양이 '르네'. (김민기씨 제공) © News1

서울대 수의학과 본과 2학년 김민기씨(22)는 고양이의 행동특성 등을 배려한 전용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겨울엔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건 물론 한여름엔 더위에 취약한 고양이들이 시원하게 몸을 식힐 수 있는 집, 동시에 학생들과 고양이가 편히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르네는 서울대생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됐어요. 이름도 여러 개예요. 르네, 자하냥이, 모아캣, 모냥이…. 르네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갈 때면 먼저 다가와 몸을 비벼대기도 하고, 같이 놀기도 해요. 겨울이 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학생들이 사비를 털어서 텐트로 집을 만들어줬어요. 전 그걸 보면서 학생들과 고양이가 함께할 수 있는 번듯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고양이에 대한 수의학적, 행동학적 지식만 있던 그는 보다 체계적인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 안산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을 전공하는 지노진(jinojinn·본명 윤효진·22)과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가구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모인 '홍대 트리독스'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지난달 말, 이들은 고양이들과 학생들을 위한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인 '대냥이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들은 예술복합동 앞 잔디밭에 보금자리를 설치하는 것을 첫 목표로 설계에 들어갔다.

서울대 학생들이 길고양이들을 위해 만든 텐트. 찬바람이 불어닥치자 텐트는 이불과 '뽁뽁이'로 무장했다. (김민기씨 제공) © News1

이들이 지으려 한 집의 설계도는 길고양이를 위한 일반 쉼터와는 다른 점이 많다. 높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들의 특성에 맞게 철재 틀이 높이 세워지고, 그 사이 사이에 고양이가 쉴 수 있는 원형 집이 자리한다. 철재 타워 옆엔 학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가 배치된다. 고양이의 놀이터이자 집인 동시에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설계물의 디자인을 맡은 지노진은 실용성을 갖추면서도 디자인도 뛰어난 구조물을 만드는 데 힘썼다고 했다.

"실용성, 내구성을 갖추면서 보기에도 좋은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일단 겨울을 나야 하니 단열도 잘 돼야 하고요. 고양이들이 좋아할 만한도 놀이기구, 징검다리도 만들 거예요. 비나 눈을 맞지 않게 사료그릇을 놓는 공간도 만들 거고요. 실외에 계속 둬야 하는 점을 고려해 자재는 튼튼하게 오래 갈 수 있는 것으로 선택했어요. 지난 3주간 끊임없이 토론하면서 만들었는데, 이제 한 가지만 해결하면 완성될 것 같아요."

'대냥이프로젝트'의 회의 모습. 탁자 위에 놓인 설계도가 눈에 띈다. (김민기씨 제공) © News1

이들은 설계도 완성 직전 한 가지 문제에 봉착했다. 단열재를 이용하면 집을 따뜻하게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없지만 여름이 문제였다. 이들은 더위를 잘 타는 고양이들이 좀 더 시원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지만 아직 훌륭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김씨와 지노진은 "지금 해온 대로 함께 머리를 맞대면 생각 이상의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온몸으로 사계절의 변화를 맞닥뜨려야 하는 고양이들에게 좀 더 나은 집을 지어주기 위해 이들은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이들의 열정을 전해들은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위해 하나둘 후원금을 보내기 시작했다. 150만원을 목표로 지난 12일부터 시작한 모금 활동을 벌여 8일 만에 100만원을 모았다. 김씨는 고양이들을 위해 선뜻 기부에 동참한 친구들을 보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80여 명이 모금에 동참했어요. SNS에서 시작한 모금이었는데 이토록 빨리 이 정도 금액이 모일 줄은 몰랐어요. 수의대 선배들도 프로젝트를 듣더니 설계에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제가 놓쳤던 고양이의 행동특성들을 꼼꼼히 알려주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 응원해줬어요. 다른 대학교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구하는 연락이 와요. 일단 르네와 친구들의 집을 만들어 주고 다른 대학들에도 하나둘 만들어 보려고요."

누군가가 걸어놓은 고양이 전용 장난감. 서울대 학생들이 캠퍼스 안 고양이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다. (김민기씨 제공) © News1

이들은 길고양이들을 위해 급식소를 운영하거나 집을 짓는 다른 학교 학생들과도 교류하며 '사람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이 무엇인지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학업과 취업에 치이는 대학생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던 길고양이들과의 우정이 어떻게 결실을 맺었는지 알리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이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해요. 이제 모금액을 달성하면 바로 제작에 들어갈 거예요. 더 추워지기 전에 만들어야 해서 마음이 급해요. 고양이들과 학생들이 그곳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ssunh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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