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 구글에 모기업 '알파벳'은 신의 선물?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 "혹시 알파벳이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실리콘 밸리에 거주하는 일반인들(테크 기업 종사자를 제외한)에게 물으면 대부분 "모른다"고 말한다. 하물며 다른 지역에서랴.
지난해 8월 구글은 유튜브와 안드로이드 등 다양한 사업체를 한데 묶은 모기업 알파벳을 출범시켰다.
그리고 1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알파벳이라는 구글의 모회사 명칭은 생소하기만 하다.
애플과 시가 총액 세계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의 이름이 이처럼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다면 우리 상식으로는 이 회사의 PR 책임자는 당장 사표를 써야 한다. 회사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기업홍보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글, 엄밀히 말하면 알파벳 그룹 사람들은 오히려 최대의 성공작이라고 속삭인다.
구글이 알파벳을 탄생시킨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투자자들과 주주들에게 구글의 전통적 수익 모델인 검색과 광고를 리스크가 큰 연구 프로젝트와 분리해 안정감을 심어주겠다는 취지였다. 또 하나는 당시 구글의 CEO였던 래리 페이지가 자신의 더 큰 꿈인 건강과 에너지 같은 '문 샷'(혁신)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위해 구글 경영에서 물러나고 싶어 했다.
문 샷은 '달을 더 가까이 보고 싶다면 더 크고 성능 좋은 망원경을 만들 것이 아니라 직접 달에 가보자'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무수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 바로 X로 불리는 문 샷 실험실이다.
페이지의 구글 내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를 일선에서 무조건 물러나게 할 수 없었던 구글 임원들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게 모회사(지주회사 개념) 설립이었다. 알파벳이 생기면서 페이지는 알파벳 CEO로 명함을 바꿨다. 구글까지 총괄하는 모회사의 대표로 가면서 자회사 중 하나가 된 구글 경영까지도 간접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형식이었다. 구글의 최고위급 의사결정은 지금도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두 공동창업자의 몫이다.
이후 구글은 놀라운 변화를 겪는다.
논란이 될법한 프로젝트에서 구글의 이름이 빠지게 된 것이다. 드론의 고장이나, 자율주행차 논란 등과 관련된 언론 기사에서 구글이 빠지고 알파벳이라는 생소한 이름이 등장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기자인 데이브 스미스는 "아무도 알파벳이라는 이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구글의 공적 이미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늘이 준 선물(Godsend)"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의 총아로 등장한 구글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다루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라는 만트라(진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아이폰의 운영 체계를 본뜬 안드로이드를 만들면서 구글의 '사악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스미스 기자는 주장했다.
당시 CEO인 에릭 슈밋이 애플의 이사회 멤버였기 때문에 표절 의혹은 더 심했다. 심지어 고 스티브 잡스는 "명백한 도둑질"이라며 안드로이드 분쇄를 맹세했을 정도다.
이후 구글은 캐나다 제약회사의 불법 온라인 광고 허용과 관련된 미 법무부의 수사 선상에 올라 5억 달러를 추징당하는가 하면, 2012년에는 독자적 프라이버시 정책을 만들어 이용자 정보를 광고주들에게 판매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여러 건의 추문은 구글의 공적 이미지를 악화시켰다.
문제는 과거의 사건들이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이다.
구글의 문 샷 프로젝트팀으로 알려진 X는 드론, 자율주행차, 유전공학, 인공지능, 인간 수명 연장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민감하고 말썽의 소지가 큰 것들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알파벳이 출범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주체는 구글이 아니라 알파벳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자율주행 부문이 X팀에서 졸업해 별도 사업법인인 웨이모로 독립한 것도 구글과는 무관한 알파벳의 일이다.
스미스 기자는 "이 모든 것은 알파벳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구글은 이제 사악하거나 나쁜 회사가 아니어도 된다"면서 "이 모든 변화는 PR의 이동으로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알파벳을 만들 때 구글의 최고위 임원들은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것을 미리 예견했던 것일까. 그랬다면, 페이지와 브린은 정말 천재임이 틀림없다.
kn020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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