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표지이야기]장소로 본 격동의 2016년

2016. 12. 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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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광장-750만개 촛불 ‘광장 민주주의’ 새로 썼다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청계광장에 2만여개의 촛불이 모였다. 1차 촛불집회였다. 2만여개로 시작한 촛불은 광화문광장으로 장소를 옮겨 차수를 거듭하면서 20만, 100만, 200만개로 늘어났다. 지난 7주 동안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에서 타오른 750만개의 촛불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광장 민주주의’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았다.

광화문광장에는 역대 최다 인원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지만, 연행자는 한 명도 없었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참석자들을 비롯해 청소년, 노인, 대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해 촛불 파도타기와 문화공연 등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참가자들은 대치한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대신 꽃을 던지고 경찰 차벽에 꽃스티커를 붙여 꽃벽을 만들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집회 이후 광장 곳곳에 쌓여 있는 쓰레기들을 치우는 등 시작부터 끝까지 평화로운 집회를 지켜 나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자발적인 참여 또한 새로운 집회문화로 주목 받았다. 광화문광장에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장수풍뎅이연구회’ ‘민주묘총’ 등 참가자들의 재치가 돋보인 각종 모임의 깃발들이 눈에 띄었다. 광화문광장에는 조직의 깃발 아래 형성된 단일대오가 아닌 다양한 집단과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에도 광화문광장에는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서부터 한국 사회의 모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광장 민주주의’의 상징이 된 광화문광장은 이제 시민들의 목소리들이 모여 한국 사회의 변화를 견인하는 장소가 됐다.

지난 5월 20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 시민들이 공용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여성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강남역 10번 출구-여성혐오 반대하는 연대의 고리 만들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술집의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34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피해자와 일면식도 없었다. 범인은 “여성에게 자꾸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신질환자에 의한 ‘묻지마 범죄’로 사건을 규정했지만, 한국 사회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해석했다. 여성들은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며 분노했다. 분노는 ‘포스트잇’ 추모열기로 이어졌다. 강남역 10번 출구에는 피해자 추모 문구를 적은 메시지가 일주일 만에 2만개 이상 붙었다. 강남역 10번 출구를 비롯, 곳곳에서 열린 자유발언대에서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현실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범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집단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 이후, 여성혐오에 반대하고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논하는 공론장은 일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성우 김자연씨가 여성혐오 반대 사이트인 메갈리아 후원 티셔츠를 입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가 남성들의 집중 항의로 교체되자 여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문화예술계에 은폐돼 있던 성희롱·성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들도 이어졌다. 페미니즘 서적의 판매가 늘고 페미니즘 강좌에 사람들이 몰리는 등 페미니즘을 공부하자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은 흉악범죄 피해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사실, 한국이 양성평등지수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고, 분노한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혐오에 반대한다는 연대의 고리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지난 6월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현장에 추모의 포스트잇과 국화들이 놓여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구의역-청년 비정규직의 열악한 근무실태 상징

5월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모씨(19)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씨는 스크린도어 고장 신고를 받고 홀로 점검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 측은 사고 원인을 김씨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김씨가 2인 1조 작업이라는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규정에 따르면 고장 신고를 받으면 출동한 2명 중 1명은 열차를 감시하고, 나머지 1명은 보수작업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장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규정이었다. 당시 강북지역 49개 역사를 담당하는 현장인력은 4~5명에 불과해 2인 1조로 작업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1명만 투입되는 것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책임은 인력 부족을 방치한 용역업체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서울메트로와 비용절감만을 목적으로 한 무분별한 외주화에 있었다.

구의역 사고는 2016년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비정규직의 열악한 실태를 보여줬다. 당시 김씨의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과 숟가락은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조차 없었을 김씨의 노동조건을 보여줬다. 숨 돌릴 틈 없이 일해도 김씨의 월급은 월 140만원에 불과했다. 사고 이후 구의역에는 김씨를 추모하고 청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었다.

서울시는 구의역 사고 이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등 지하철 안전 관련 업무를 시 직영체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억울한 죽음과 그에 대한 전 사회적인 분노와 애도가 있은 후에야 겨우 한국 사회는 조금 변화한 셈이다. 2016년을 지나 2017년에도 비정규직 노동 문제가 한국 사회의 큰 과제로 남아 있는 이유다.

10월 19일 최경희 총장이 사퇴를 발표한 날 이화여대 학생들이 교내를 행진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이화여대-‘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드러낸 학생시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SNS에는 한동안 “#이화여대_감사합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붙었다.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신설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결국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입학 특혜, 성적 특혜에 대한 의혹 제기로 이어졌고, 이것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드러내는 하나의 단초가 됐다는 이유에서다.

7월 15일 교육부가 성인전담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에 이화여대를 추가선정하면서 학교 측의 일방적인 사업 강행에 대한 학생들의 반대가 시작됐다.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8월 3일 이화여대 측은 ‘미래라이프단과대학’ 신설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은 사업 철회를 받아낸 데서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은 밤샘 토론 끝에 최경희 총장이 물러날 때까지 본관 점거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7월 30일 학교 측이 1600여명의 경찰을 불러 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려 했다는 점에 대해 최 총장의 책임을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시위가 이어지던 가운데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 입학 및 성적관리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학생들과 교수들은 최 총장 및 대학본부 측에 강하게 해명을 요구했고, 학생들의 증언 등으로 구체적인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학생들이 시위를 시작한 지 86일 만인 10월 19일 오후 2시 최경희 총장은 사임을 발표했다. 최 총장의 사임 직후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는 이화여대 교수 150명과 5000명 학생들이 “특례입학과 비리를 해명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전 총장과 남궁곤 당시 입학처장 등은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등에서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정유라에 대한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탄핵소추안의 가결을 선언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국회-모처럼 제 역할 다한 필리버스터와 탄핵

2016년 국회는 비판도 받았지만, 박수도 받았다.

지난 3월 2일 필리버스터가 종료됐다. 9일간 38명이 참여해 총 192시간25분 동안 진행됐다. 필리버스터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가비상사태’를 이유로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면서 시작됐다. 야당은 국정원이 테러 위험인물에 대한 정보수집권과 추적권을 가질 수 있다는 법안의 조항이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을 만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위험이 크다고 반대했다. 의원수에 밀려 테러방지법은 본회의를 통과됐지만, 9일에 걸친 야당의 필리버스터로 야당이 모처럼 제 역할을 다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12월 9일 오후 4시10분쯤 정세균 국회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발표했다.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기권 1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탄핵 표결을 앞두고 부결 시에는 전원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탄핵안이 가결된 후 국회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탄핵 가결 소식에 환호를 보냈다. 물론 탄핵에 이르기까지 국회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단독으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추진하다 비판을 받고 이를 철회했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박계가 내세운 ‘4월 퇴진’으로 기울어지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를 해야만 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국정농단의 공범이라 할 수 있는 친박에게 여전히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향후 조기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탄핵 이후 각 당의 대차대조표는 더 복잡해질 것으로 보이다. 국회가 각자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지 않고 이후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로드맵을 어떻게 제시할지 여부가 주목된다. 국회는 여전히 민심의 심판대 위에 놓여 있다.

6월 15일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크레인 위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연합뉴스

거제도-구조조정 칼바람 맞은 조선산업 본거지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있는 거제도는 한국 조선산업의 본거지다. 5년 전만 해도 거제는 1인당 국민소득이 4만1100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2016년, 한국의 조선업이 수주절벽과 수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영업손실로 기나긴 불황의 터널로 들어서게 되자, 거제의 지역경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불황의 칼바람은 ‘물량팀’이라고 불리는 가장 약한 노동자계층을 먼저 치고 들어왔다. ‘물량팀’은 대기업 협력업체나 이 협력업체의 재하청을 받아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을 뜻한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들은 가장 먼저 구조조정 1순위가 됐다. 이들 대부분은 변변한 퇴직과정 없이 일자리를 잃었다. 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상당수의 물량팀 노동자들은 고용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하청업체가 도산하면서 일당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9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정의당 이정미 의원의 발표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고용노동부로부터 피보험 자격을 취득한 물량팀 추정 종사자는 전체 4만1385명 중 2340명(5.6%)에 불과했다. 또한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으로 조선업계 임금체불액은 526억원에 달하며, 하청업체 직원 1만1746명이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의 칼바람이 지역경제와 노동자들을 파고들자, 10월 3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까지 조선 3사(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는 건조설비 23%, 인력 32%를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대책은 결국 기업의 방만경영의 결과로 발생한 조선업 불황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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