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김정식 대표 "40년 유리장인 자존심 상처..대통령표창 반납하고 싶어"

유준호 2016. 12. 1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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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갇힌 아이들 모습에 '유리창 파쇄기' 발명특허..김정식 대표의 탄식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일주일 만에 다시 수십만 촛불민심이 모인 서울 광화문광장에 큼지막한 현수막을 내건 대형 버스가 등장했다.

현수막에는 "나는 국가나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가 없으므로 기술안전대상 대통령 표창장을 반납하고 싶습니다. 표창장을 돌려줄 방법을 아는 분은 010-××××-××××로 연락 부탁드립니다"라는 글귀가 들어 있었다. 이 현수막을 내건 주인공은 중견기업인 JSK글래스의 김정식 대표(61). 웬만한 기업들은 받고 싶어 안달이 난 대통령상까지 반납하겠다고 광장으로 나선 사연은 무엇일까.

그는 현재 생산공장이 위치한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 살고 있다. 김 대표는 작년 11월 '2015 대한민국 기술안전대상(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가 공모전에 출품했던 제품은 'JSK 고정형 유리 파쇄기'다. 선박, 자동차, 열차, 지하철 등이 침수와 화재 등 재난을 만날 경우 장착된 안전핀을 제거해 레버를 돌려 강화유리를 깨고 탈출하도록 고안된 도구다. 1㎜ 정도의 흠집만 내면 유리 전체면이 굵은 모래알처럼 깨지는 강화유리 특성을 역이용해 고안한 것이 고정형 유리 파쇄기다.

19일 김씨는 광화문 근처에서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하면서 "너무 자랑스러운 기술이었는데, 요즘은 박근혜 대통령 표창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 있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라며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인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보면서 무얼 했나 한숨만 나온다"고 한탄했다. 그가 유독 격분한 것은 사실 대통령 표창을 받은 이 기술이 박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졸인 그는 13세 때 동네 유리가게에서 일하며 유리가공업에 발을 들였다. 1983년엔 국내에 가람기업이라는 유리시공 전문업체를 세워 인천국제공항을 비롯해 종로타워, 아셈타워, 포스코센터 등 국내 굴지의 대형 건물 공사 현장 유리를 시공했고 2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갔다.

그가 갑자기 유리 파쇄기에 꽂힌 것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김 대표는 "TV를 통해 아이들이 선체에 갇혀서 강화 유리문을 '탕탕' 치는 장면을 봤다"며 "해경은 바다 위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어린 학생 수백 명이 수몰되는 것을 본 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개월간 작업실에 쳐박혀 숙식을 해결하며 이 제품을 발명했다. 정부로부터 표창을 수여받았을 당시 그는 감격에 아내와 함께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보잘것없는 기술이지만 한국에서 실현되면 세월호 참사와 같은 피해를 막는 데 작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는 감격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대는 빗나갔다. 그는 "상을 받은 뒤 어느 국내 기업이라도 생산을 하겠다면 기술료도 안 받고 그냥 주겠다고 했고, 정부 측에도 숱하게 편지를 보냈다"며 "그런데 어느 기업도, 어떤 부처도 기술을 상용화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5월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에 "상용화하지도 못할 바엔 표창장을 다시 거둬 달라"며 편지를 보냈지만 편지는 반송됐다고 한다. 이런 그의 실망감은 지난 10월 초 울산에서 발생한 버스 화재 참사 사건을 지켜보며 자괴감으로 변했다. 당시 가드레일 충돌 후 버스가 불에 타오르자 강화 통유리로 된 관광버스를 탈출하지 못한 탑승객들 10여 명이 꼼짝없이 참사를 당했다.

그는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게 한국 정부 아니냐"며 "미국에선 선박회사를 비롯해 자동차회사인 포드사 등도 기술을 채용하겠다며 연락이 오는데 우리 정부는 상만 주고 그냥 '땡'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용화하지도 못해 제품을 만들지도 못했고 이러다 보니 국가·사회에 기여한 바가 전혀 없어 상을 반납하겠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대통령상 반납' 현수막이 걸린 버스도 그가 사재를 털어 구입한 것이다. 그는 요즘 이 버스에서 먹고자고 하면서 학교 등을 돌아다니며 홍보하고 있다. 그는 "돈은 벌 만큼 벌었고 죽기 전엔 모두 사회에 환원할 생각"이라며 "침몰하는 배 안에서, 불타는 버스 속에서 억울하게 생명이 희생당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사서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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