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쓰레기통이 아닙니다"..초코파이, 냉동닭 기부받은 복지시설의 눈물

안상현 기자 입력 2016. 12. 18. 09:43 수정 2016. 12. 1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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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수도권 지역에 있는 70여명 규모의 한 장애인 복지시설에 후원물품으로 초코파이 수십 상자가 들어왔다. 며칠 뒤 상당수 초코파이는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졌다. 애초에 유통기한이 5일밖에 남지 않은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설 관계자 A씨는 “유통기한이 일주일도 안 남은 과자를 주는 것은 그냥 ‘대신 버려달라’는 것 아니냐”며 “이런 분들이 소득공제 혜택받으려고 기부 영수증까지 떼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통기한 지나도 먹을 수 있는데 공짜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냐는 분들도 종종 계신다”며 “하지만 우리 같은 시설은 유통기한 넘은 걸 먹이면 법적인 제재까지 받는다”고 덧붙였다.

A씨는 이달 초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 사연을 올렸다. 한 네티즌은 “유통기한 지난 걸 보낸 것도 아니고 후원한 사람은 임박분이라 버리느니 좋은 데 쓰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버리느니 좋은 데 쓰자가 아니라, 버리느니 장애인한테 버리자 아니냐”, “안 팔려서 폐기할 것 넘기고 후원품 영수증으로 공제받으려는 사람 의외로 많다” 등의 비판이 대다수였다.

본지가 서울 시내 복지시설 10곳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후원물품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7곳이 “그렇다”고 답했다. 서울 중구의 장애인 복지시설 직원 안모씨는 “유통기한 문제 때문에 후원물품으로 식품류는 받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의 지역아동센터는 작년 11월쯤 냉동 닭 600여 마리를 받았다가 얼마 먹지 못하고 폐기처리했다. 5년간 냉동보관한 닭이라 냄새가 심했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권장하는 닭고기의 냉동보관 기간은 12개월이다.

조사한 복지시설 가운데 절반은 유통기한 문제를 피하기 위해 식품 후원은 ‘푸드뱅크’에서 보내오는 물품만 받는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 산하 후원 식품·생활용품 전달 기관인 푸드뱅크는 제과류나 음료 후원 시에 최소 30일 이상 유통기한이 남아있어야 하는 등 기부 식품군에 ‘모집 가능기한’을 두고 있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식품을 후원할 때는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기간까지 보장하는 게 상식적”이라며 “개인 후원이더라도 식중독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기관에서 어느 정도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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