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누가 딸아들 가려 낳아요?" 낡은법에 산모들 '불만'

민정혜 기자 2016. 12. 18.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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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상 32주 이후 태아 성별 고지 가능 "개정해야"
© News1

(서울=뉴스1) 민정혜 기자 = # 첫아이를 임신한 김혜진씨(가명·34·서울 동대문구)는 아이의 성별을 24주에 알 수 있었다. 의학적으로 임신 14주 이후면 성별을 알 수 있지만 일찍이 다니고 있는 산부인과가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 몇 안되는 곳이라고 들어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김씨는 24주 초음파 검사를 하는 중 아주 조심스럽게 성별을 물었다. 김씨는 "빨강색을 좋아하겠네요"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지만 의사의 표정을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태아의 성별은 총 40주의 임신기간 중 32주 이후에나 '합법적'으로 알 수 있다. 의료법상 의료인은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부모에게 알려줘서는 안된다. 이러한 태아 성감별 금지 조항은 1980년대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당시의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인데, 시대가 바뀐 만큼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7일 둘째를 임신한 주안희씨(가명·30·경기 수원시)는 "요즘 성별을 안 알려주는 산부인과가 어디 있고 그런 곳을 부모들이 가겠냐"며 "어차피 알려줄 정보인데 내 아이의 성별을 왜 색깔로 묻고 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의료기관들은 '색깔'과 '장난감의 종류' 등을 빗대어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등 태아 성감별 금지조항이 지켜지지 않은지 오래다.

그럼에도 부모들이 성별을 조심스럽게 묻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처벌조항탓이다. 의료인은 32주전 부모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또 1년 범위에서 의사 자격이 정지된다.

이 때문에 산부인과 의사들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태아 성감별 금지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재연 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해당 조항은 과거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생겼는데 지금은 의료현장에서 그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없다"며 "이 조항은 의사와 환자간 정보 교류를 막아 부모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의사를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산부인과 의사 역시 "병원 입장에서 부모는 고객이기 때문에 태아 성별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며 "32주 후에야 태아 성별을 부모에게 알려주는 곳은 고객이 많은 극히 일부의 산부인과"라고 말했다.

태아 성감별 금지 조항이 생긴 것은 1987년이다. 당시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어 딸을 임신한 경우 낙태수술을 감행하는 부모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양성평등 의식이 매우 높아진 상태다. 2015년 우리나라 출생아 성비 역시 여아 100명당 남아 105.3명 수준으로 정상 범주다.

태아의 성별이 더이상 낙태수술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의 '2015 인공임신중절 국민인식조사'를 분석한 결과 낙태수술을 직접 경험한 여성 43.2%는 '원하지 않는 임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 뒤로는 '산모의 건강문제'가 16.3%, 경제적 사정 14.2%, '태아의 건강문제' 14.2%, 주변의 시선 7.9%, '부모가 될 자신이 없어서'가 3.7% 순이었다.

복지부는 법 개정에 소극적인 상태다. 해당 조항을 삭제할 만큼의 사회적 요구가 있는지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이 개정되기 위해서는 부모, 의료계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시민단체 등의 의견 수렴 과정이 있어야 한다"며 "일부 법을 지키지 않는 산부인과가 있다고 해서 법조항 자체가 무용지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m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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