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이 헛돈다]⑳ 줄지 않는 성매매.. "공급 아닌 수요 차단하고 처벌 강화해야"

세종=이윤정 기자 2016. 12. 18.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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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모(43)씨는 2014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서울 관악구에서 ‘네토루’라는 성매매업소를 운영해 왔다. ‘네토루’란 일본어로 ‘배우자나 애인이 있는 사람과 성관계 한다’는 뜻이다. 손님들에게 입장료를 받은 뒤 마음에 드는 사람과 성매매를 하게 하고, 그 장면을 다른 손님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관전클럽’이다. 입장료는 커플일 경우 인당 10만원, 남성 혼자 입장할 경우 15만원이었다. 주부 두 명은 옷을 벗고 춤을 추는 등 분위기를 이끌면서 손님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고 30만원 내외를 받아갔다.

조선일보 DB

법원은 “관전클럽이란 새로운 형태의 업소를 운영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성욕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성매매를 알선해 죄질이 좋지 못하다”며 이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처벌은 약했다. 업소 운영자 원 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500만원을, 성매매자 주부 두 명은 벌금 150만원을 각각 선고받았다. 정부가 성매매를 근절하겠다며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한지 12년이 지났지만 성매매는 줄지 않았다.

◆ 성매매 단속 건수, 5년간 3만여건… 성매매 종사자 추정만 ‘15만명’

정부는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을 제정하고 성매매방지 종합대책을 내놨다. 성매매특별법에는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포함된다. 국가가 성매매 문제 해결의 주체이고, 이에 따른 책무가 국가에 있음을 명시한 것이다. 정부는 성매매 단속을 강화하고, 피해자 구조지원사업을 벌이는 등의 정책을 매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성매매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5년간 성매매 단속 건수는 3만135건으로 나타났다.

이 의원은 “청소년 상대영업, 사행성 게임장 등 다른 풍속업소 단속 건수는 전체적으로 감소하고 있지만, 성매매의 경우 2013년 4533건에서 2014년 8952건, 2015년 8665건, 올해 5월까지 4702건 등으로 오히려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성매매사범의 연도별 검거현황도 마찬가지다. 2012년 2만2193명이었던 성매매사범은 2013년 2만2617명, 2014년 2만5251명, 2015년 2만79명 등으로 2만명대에서 내려가질 않고 있다. 올해 역시 6월까지만 1만5193명이 검거돼 2만명은 거뜬히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희 경찰수사연수원 강력범죄수사학과 교수는 지난달 여성가족부 주최로 열린 정책 포럼에서 “성매매 알선방식은 성구매자의 접근성을 강화하면서도 단속으로부터 안전성을 확보해 가는 방식으로 날로 진화하고 있다”며 “다양화, 지능적 음성화, 점조직적 확산을 특징으로 하고 있어 단속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성매매 단속 건수가 3만여건, 성매매사범이 2만여명이라 해도 실제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훨씬 거대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성매매 집결지에서 영업하는 ‘전업형’과 유흥업소에서 2차를 나가는 ‘겸업형’만 고려했을 경우 성매매 종사자는 약 15만명 규모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이뤄지는 성매매는 추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 박근혜 정부 들어 사라진 성매매 전담반…경찰 인력 강화 시급

성매매가 줄어들지 않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성매매 단속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성매매 산업은 점차 다양화되고 지능적으로 음성화 되고 있지만, 단속 인력이 부족하니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성매매방지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성매매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인력 확충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경찰의 성매매 단속 및 수사를 통합 전담하는 풍속수사팀은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중 9곳에만 설치돼 있으며, 인원도 총 117명에 불과하다.

경찰은 지난 2012년까지만 해도 성매매 전담반을 운영했었다. 여경 기동대와 여성·청소년과가 성매매 방지 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제정된 4대악(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에서 성매매가 제외되면서 성매매 전담반은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성매매 단속 인력의 확충과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송영심 제주현장상담센터 ‘해냄’ 소장은 지난 9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성매매근절과 여성인권보호를 위해 성매매 전담반이 다시 가동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DB

그는 “성매매를 경험한 여성들 중에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의 피해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많다”며 “과거 사라진 성매매 전담반을 재가동해 성매매 사건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희 교수 역시 “성매매 단속 및 수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경찰의 수사전담부서 마련이 요구된다”면서 “처벌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전담부서 확대 및 인원 충원을 통한 전문화를 꾀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법 우습게 보는 성매매 범죄자들…“적발돼도 집행유예, 벌금 받으면 그만”

경찰이 어렵게 성매매를 적발해도 잡아온 범죄자들을 강하게 처벌할 수 없다는 점 또한 성매매 산업의 확장을 부추기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012년 발표한 ‘제4차 여성정책기본계획(2013~2017)’에 따르면, 정부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성매매 알선 및 구매 행위 등에 대한 단속·처벌의 높은 요구가 있지만, 효과적인 제재조치는 미흡하다”며 “알선자의 영업동기를 박탈할 정도의 강력한 제재 등 성산업 확대 차단 및 수요 근절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대목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앞서 관전클럽 운영자 원 씨의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대부분의 처벌은 집행유예 또는 가벼운 벌금형에 그치고 있다. 성매매를 비롯한 풍속사범 구속률을 보면, 2012년 이후 5년간 적발된 25만5199명 중 1%(2641명)에 불과했다.

원민경 법무법인 원 변호사는 “성매매 알선 등 범죄행위자들에 대한 벌금은 이들이 불법영업으로 인해 얻는 수익에 비해 극히 일부에 불과해 벌금을 감수하고 지속적으로 불법 영업을 계속하는 유인이 되곤 했다”며 “사법부가 성매매처벌법의 입법목적과 성매매알선 등 범죄 행위의 해악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 선진국, 성구매자 제재 통해 성매매 줄여가는데…우리는 여전히 성판매자만 ‘매타작’

전문가들은 성매매 산업의 확장을 막기 위해선 성매매의 수요층인 성구매자를 효과적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나라 성매매 관련 정책은 성매매 알선자나 성매매 여성 등 성판매자의 처벌과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이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권익센터장은 “최근 주요 선진국을 보면 성구매자의 수요를 잡는 것에 집중한다”면서 “스웨덴의 경우 성매매 현장을 적발했을 때 성구매자인 남성만 강하게 처벌하는데, 이후 성매매 산업이 빠르게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이 센터장은 “남성의 절반 이상이 평생 한 번 이상의 성매매 경험이 있을 만큼 수요가 굉장히 많고,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실하고 멀쩡한 사람들”이라며 “우리나라 정서상 성판매자인 여성은 처벌하지 않고 남성만 처벌한다면 반발이 심하겠지만, 결국 수요가 줄어든다면 산업은 자연히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미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 또한 수요 차단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 대표는 “성을 사려는 수요층이 늘어나고, 이들의 욕구에 맞게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 점도 성매매가 줄어들지 않는 요인”이라면서 “정부는 수요 차단 정책으로 전환해 성매매를 효과적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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