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시대 지고 정치의 시대가 온다

2016. 12. 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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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 [토요판] 뉴스분석 왜?
트럼프 당선과 금리인상, 그 이후
연준 결정에서 확실해진 것은
미 경제, '뉴노멀' 상황 진입
재정팽창·통화긴축 공존해도
신정부·연준 양자 이해 부합

신정부는 대중의 불만을 대변
긴축에서 부양으로 선회한다
공은 정부와 의회로 넘어가
중앙은행 명성은 수그러들 것

[한겨레]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통화정책회의를 열어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1년 만이다. 내년 중 3차례 추가 인상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의 출범과 연준의 금리인상. 언뜻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주요국의 정권교체와 맞물리면서, 이제 정책의 주도권은 중앙은행에서 각국 정부와 의회의 손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주요국 중앙은행가들이 연예인 뺨치는 저명인사가 됐다.”

2년여 전 미국 하버드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중앙은행의 영향력과 중요성이 지나치게 과장돼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지적을 뒷받침하듯 14일(현지시각)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통화정책회의는 전세계의 이목을 붙잡아뒀다. 금리 인상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으나, 내년 정책기조에 대해 긴축적 태도를 드러낸 점이 눈길을 끌었다. 연준의 이번 결정에서 거듭 확실해진 것은, 미국 경제가 ‘저성장-저금리’가 구조화된 이른바 ‘뉴노멀 상태’에 처했다는 인식이다. 연준이 예상하는 내년 말 기준금리는 1.37%다. 올해 3월 예상치였던 2.04%에 비해 많이 낮다. 금리 전망치의 하락은 미국 경제가 뉴노멀 상황에 진입했다는 연준의 인식을 확인해준다.

트럼프 정부와 눈높이 맞추는 과정

대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통해 재정지출을 확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연준의 공식 경제전망도 이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내년 경제성장률과 실업률은 이전에 견줘 각각 0.1%포인트, -0.1%포인트 조정되는 데 그쳤다. 2018년과 2019년의 전망은 변하지 않았다.

트럼프 당선자가 대규모의 재정확대 공약을 천명한 상황에서 연준이 긴축 계획을 밝히고 나선 건 ‘재정 팽창’과 ‘통화 긴축’의 공존이라는 다소 기이한 정책조합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양자 간 갈등이나 대립으로 해석할 이유는 없다. 트럼프 본인과 주요 참모들은 이전부터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이번 금리 인상은 미 연준이 차기 정부의 성향과 공약을 의식하면서 서로 간에 눈높이를 맞추는 과정일 수 있다. 일각에선 차기 정부의 재정지출과 인프라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경우 금리인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아 보인다. 연준은 미국 경제가 뉴노멀 상황에 처해 있다고 인식한다. 미국 금리 상승이 신흥국의 자본유출과 부채부담 확대 등 금융불안으로 이어져 미국 경제 회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가파른 금리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는 미국 제조업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제조업 부활이라는 트럼프 당선자의 공약과도 어긋난다. 결국 점진적 금리인상은 차기 대통령과 연준 양자의 관심과 이해에 부합한다.

게다가 트럼프의 공약 시행 과정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최근 급등한 기대인플레이션은 향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4차례의 금리 인상을 예상했다가 결국 한 차례에 그친 전례를 돌이켜보자. 내년 3차례 인상이라는 전망이 실현될 것이라 일찌감치 확신할 이유도 없다.

무엇보다 이번 연준 회의 전후로 드러난 가장 큰 특징은, 위기 이후 부양책 시행 과정에서 연준이 보여온 ‘동요’가 어느 정도 정리되면서 중앙은행의 역할과 위상이 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 이후 3차례의 양적완화뿐 아니라 벤 버냉키 전 의장이 양적완화의 축소를 시사한 2013년 이후 최근까지도 연준의 정책기조는 상반된 두 입장으로부터 비판의 대상이었다. 한편에서는 “연준이 시행한 완화적 통화정책의 수요진작 효과는 제한적이며 자산버블 등의 부작용이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연준이 더욱 적극적으로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해 부양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준은 상반된 두 비판 사이에서 동요해왔다.

연준의 동요는 정리되고 있다

부실 금융기관들에 대한 구제금융 성격이 강했던 1차 양적완화를 논외로 하면, 대규모 자산매입을 통해 장기금리를 끌어내리고자 했던 2차 양적완화는 그 자체로 후자의 시각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자산매입 규모와 기간을 제한하면서 전자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낳는다. 또 “무기한 지속적 자산매입”을 천명한 3차 양적완화는 2차 양적완화 때의 ‘동요’에 대한 버냉키 의장의 자기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매파들은 신속한 양적완화 축소와 금리인상을 주문했다. 후자의 시각에서는 인플레이션 목표치의 상향 조정, ‘포워드 가이던스’(통화정책의 방향을 미리 알리는 조처) 강화를 통한 기대인플레이션 제고 등을 주장했다. 2013년 테이퍼링 언급 이후 한편에서는 지연된 금리인상이 야기할 자산거품과 금융불안 우려를 제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성급한 금리인상이 초래할 재침체 위험을 부각했다.

최근 연준이 보인 대응 방식도 비슷했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지난 10월 이른바 ‘고압경제’(high pressure economy) 옹호 발언으로 완화적 정책기조의 지속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상태를 의도적으로 유지하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초과수요가 공급 측면의 개선을 자극해 잠재생산능력이 높아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옐런의 이 발언은 거시경제의 총공급능력이 총수요와 별개로 외생적으로 결정된다는 전통적 인식에서 벗어나, 총수요 부양정책이 총공급능력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학계 일각의 혁신적 주장을 수용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나아가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초과하는 상태를 상당 기간 용인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 옐런 의장은 ‘고압경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 명시적으로 말했다. 과거 발언을 부정한 셈이다. 그사이 가장 큰 상황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다. 연준의 ‘동요’는 이렇듯 정리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와 주요 참모들은 연준이 주도해온 부양정책의 결과라 할 현재의 경제 상황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을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는 건 미국만이 아니다. 브렉시트 이후 집권한 영국의 테리사 메이 총리도 “초저금리 정책은 저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부작용이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메이 총리 역시 2020년까지 재정균형을 달성하고자 했던 기존의 재정운용 방침에서 벗어나 긴축에서 부양으로 선회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는 상당 기간 유지될 듯

수년째 경제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미국과 영국, 유럽 중앙은행들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은 동력과 지지기반이 약화돼왔다. 경기회복세는 장기정체 가능성이 제기될 정도로 기대에 못 미친다. 대중의 불만은 위기 이후 부양정책을 주도해온 중앙은행들한테로 향하고 있다. 주요국 신정부들이 중앙은행을 일제히 비판하는 것은 이런 사정의 반영이다. 유가 상승이 계기로 작용하긴 했지만, 지난여름부터 가시화된 주요국 장기금리의 상승은 초저금리 정책의 유효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 피로감을 반영한 현상인 셈이다. 이제 주요국의 정권 교체를 전후로 확장적 재정정책의 화두는 정부와 의회로 넘어가고 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이 통화정책에 따른 결과라 무조건 단정할 순 없다. 중앙은행들이 더 적극적으로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지 못하고 행동반경을 넓히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 전통적 인플레이션 목표제에 대한 집착, 쌓아온 신뢰가 훼손될까 우려한 머뭇거림 등이 문제였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테크노크라트와 학자 위주인 전문가 집단의 한계일 수도 있다.

최종 판단은 보류해야겠지만, 미진한 경기회복과 중앙은행의 초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피로감, 주요국 정권 교체 등이 맞물리면서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정책실험은 이제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 정치경제적 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그동안 중앙은행이 홀로 짊어져왔던 경기부양이라는 짐은 서서히 정부로 넘어가고 있다. 로고프가 말한 중앙은행의 ‘대중적 명성’(celebrity)도 수그러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과연 저금리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일까. 뉴노멀 상황에 처한 미국 경제, 가파른 금리상승과 달러 강세 부작용에 대한 차기 정부와 연준의 공통된 이해 등을 고려한다면, 저금리 기조는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주된 경기부양 수단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면서, 정책의 주도권이 중앙은행에서 정부와 의회로, 테크노크라트에게서 정치가에게로 넘어가는 것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금은 ‘중앙은행의 시대’에서 ‘정치의 시대’로 전환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통화정책의 담당자로서 중앙은행 고유 역할은 그대로겠지만 말이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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