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억만장자가 사랑한 화가 마리킴 "이상야릇한 소녀 그림은 내 분신.. 나는 나를 믿는다"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2016. 12. 1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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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초현실주의자 마리킴, 10만 팔로워 인스타그래머의 미술품 유통 작전SNS 공간에 그림 올리고 직접 홍보… 해외 유대인 부호, 기업가, 연예인들이 줄줄이 작품 사가왕눈이 소녀 캐릭터 ‘아이돌(Eyedoll)’로 쓴 인류 야사… 마침내 일러스트, 디지털 한계 벗고 파인아트로

팝초현실주의자 마리킴(39세). 현재 신사동 ‘시몬느0914’ 갤러리에서 ‘파리지앵의 생활'이라는 주제로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는 개인전을 열고 있다. 오프닝을 위해 LA 아트쇼와 셀러브러티들이 모이는 마이애미 사교 파티가 끝나자마자 서울로 날아왔다./사진=고운호 기자

여러분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자신이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확신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도를 넘어서는 것이 게임을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일단 큰 변화를 시도한 다음, 그래도 괜찮은지 묻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허락 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팝아티스트 마리킴이 했던 방식이다.

디지털로 프린트된 눈 큰 인형들을 보라. 이것이 예술이냐고? 그렇다. 그것도 10년 넘게 이어지는 미술계의 장기 불황에 맞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젊은 예술이다.

한국 네오팝의 대표 주자 마리킴. 2000년대 후반에 서울에서 팝아트를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의 ‘눈 큰’ 인형 ‘아이돌(Eyedoll)’ 시리즈를 눈여겨봤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몸에 대해 불길한 매혹을 느꼈던 사람이라면 더욱.

그녀는 2007년부터 화랑을 거치지 않은 채 인터넷 블로그(복제 위험성을 무릅쓰고)에 자신의 작품을 수백 개 씩 업로드했다. SNS 장이 열리자 인스타그램 홍보 시장에 발 빠르게 뛰어들었다. 그것은 높은 장벽과 비밀에 가까운 기존 미술품 유통 시스템을 위반하는 행위였지만, 결과적으로 미술품 소비 시장에 신세계가 열렸다.

해외의 억만장자 기업인과 사교계 유명인사 컬렉터들은 자신이 소유한 마리킴의 작품을 자발적으로 홍보했고(“나는 마리킴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완전히 반해버렸다”), 팔로워들은 ‘좋아요'를 눌러댔으며, 상하이, 홍콩, LA, 런던 전시장에 걸린 그녀의 작품은 매번 솔드아웃됐다.

소더비 인스티튜트 예술 대학원의 학과장 이아인 로버트슨은 마리킴 현상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오늘날 우리에겐 최신 아이폰을 사야 한다는 병적인 강박감이 있다...단 한 번의 깜빡임도 없이 두 눈을 부릅뜬 마리킴의 마네킹들은 이 멋진 신세계의 목표 고객이다…”

‘미술은 곧 돈’이라고 믿는 은행가 출신의 영향력 있는 컬렉터이자 서울옥션 전 CEO인 김순응 또한 흥분해서 이 풍경을 전했다. “마리킴은 한국 미술계의 슈퍼 블루칩입니다. 투자 가치에서도, 미적 보유 가치에서도… 해외 컬렉터들 사이에선 지금 마리킴 돌풍이 일고 있어요.”

귀여운 외형과 달리 이미지는 가볍지 않다. 태아를 쓰다듬는 사이보그 임산부, 명품 로고가 그려진 혈액 주스를 마시는 소녀, 철부지 황녀 마리 앙투아네트, 겁먹은 눈으로 태극기를 손에 쥔 유관순, 애완용 원숭이의 팔짱을 뿌리치는 금발의 제인 구달... 무한 변신해가는 마리킴의 이 기이한 인형 놀이는 우아하고 지독한 숙취 같다.

자기 피를 뽑아 수혈된 명품 쥬스를 마시는 소녀를 보라. 그것은 우리가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모습이며, 디지털로 표현된 영혼의 엑스레이다. <Blood>

마리킴을 만났다. 패션 명품 플래그십 매장이 즐비한 도산공원 앞 ‘시몬느 0914’ 갤러리에서였다. 그녀는 자신이 그린 가브리엘 샤넬 그림 앞에 서 있었다. 휘날리는 금발 머리, 검은 마스카라, 붉은색 베트멍 점퍼와 무릎 위를 덮는 롱부츠를 신은 팝아트 스타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마리킴입니다.” “반가워요. 만나고 싶었어요.” 나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자신을 변형시키는 이 팬시한 예술가의 그윽한 눈을 쳐다보았다. 그 모양이 흡사 걸그룹의 모범적인 맏언니 혹은 조난당한 별에서 우연히 만난 관능적인 로봇 공학자 같았다.

-현대 미술은 본격적인 시장 미술입니다. 평론가의 비평보다는 컬렉터의 지폐가 시장을 좌우하지요. 당신은 누구를 믿나요?

“저는 저를 믿어요(웃음). 컬렉터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트렌드를 믿고, 돈을 믿죠. 저는 전시회에서 비평가의 글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평론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가령 권위 있는 미쉐린 조사원이 내 레스토랑을 평가해주길 원하는 요리사도 있지만, 저는 그들의 별점에 흥미가 없어요. 내 요리는 내가 더 잘 알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없는 건 아니겠지요?

“제 그림은 잘 팔리고 있어요. 전시회 요청도 쇄도하죠. 그 느낌만으로 충분해요.”

-처음부터 시장의 인정을 받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림도 안 팔리고, 학원에서 가르치며 생활을 꾸리던 시절도 있었죠. 하지만 배고팠던 시절에도 사람들이 뭘 잘 모른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아티스트 마리킴을 만난 사람들은 두 번 놀란다. 첫번 째는 걸그룹 모범생 멤버같아 보이는 팬시한 외모에. 두번 째는 그 팬시한 어른 아이의 두뇌가 쏟아내는 묵시론적인 세계관에./사진=고운호 기자

한불 수교 130년을 기념해서 열린 이번 전시회에서 그녀는 프랑스 여성 명사들의 포트레이트 13점을 전시했다. 에디트 피아프, 마리 퀴리, 샤넬 등으로 분장한 마리킴의 아이돌 분신들이 사방에서 큰 눈을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최근에 판 그림 가격은 얼마죠?

“120호 마담 퐁파두르를 2,200만원에 팔았어요.”

-명성에 비하면 턱없이 저렴한 가격이군요. 거의 모든 전시회 그림이 솔드아웃 되지 않았나요?

“그렇죠. 하지만 제가 데뷔한 이래 한국 미술 시장과 세계 경제가 거의 ‘폭망' 수준이라서요(웃음). 2009년엔 1점에 100만 원 씩 사간 컬렉터도 있으세요. 수십 점씩 거의 사재기 수준이었죠(웃음). 제 그림은 주로 미국, 영국, 상하이, 홍콩, 베를린 등 해외에서 더 인기가 많아요.”

-미국 마이애미 사교계의 거물 데이비드 그룻맨이 당신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깜짝 놀랐어요. 한복을 입은 아이돌, ‘황진이'이었던가요… 무려 12만 4천 명의 팔로워를 가진 셀러브리티가 홍보한 이후로 더 핫해졌죠? 자동차 경주 F1을 운영하는 영국의 억만장자 버니 에클레스톤도 당신 그림을 샀더군요. 돈의 흐름을 아는 유대인 부호와 은행가 출신 컬렉터들이 당신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천연덕스럽게)예쁨과 무서움과 야함이 동시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해요. 저의 아이돌이 만화 세대와 야동 세대의 페티시를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그 안에 정복할 수 없는 야성도 깃들여 있죠. 그 점이 많은 것을 소유해본 60대 이상의 남자 부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일 테고요.

<Hwang jini>.

“그럴 수 있죠. ‘세일러문'이나 ‘은하철도 999’ ‘신시티'같은 만화를 보세요. 익숙해서 잊고 있지만 사실 그 스토리엔 인간 복제를 넘어 박제까지 등장해요. 제 작품도 그런 소름 끼치는 암시가 자주 등장하죠.”

-2011년 팝스타 2NE1의 앨범 작업은 누가 의뢰한 건가요? 팝아티스트가 당대의 팝스타와 협업한 건 놀라운 행운인데요.

“YG 양현석 사장이요. 양현석 사장은 강남의 한 수입 가구매장에서 제 그림을 보고 반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요. 컬렉터에게 물어 제 전시회를 찾아왔고, 그림을 몇 점 샀고, 바로 2NE1의 앨범 작업을 의뢰했어요. 저는 무려 21장의 아이돌 그림을 그렸어요. 앨범은 MP3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당시에 저는 따로 작업 비용을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깔끔한 거래군요. 반 고흐나 클림트처럼 반미치광이 상태의 퇴폐적인 에너지를 엿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생각보다 매우 정상적이고 양호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어요.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가난하고 마약에 절어 있는 듯한 그런 느낌 말인가요?(웃음). 퇴폐는 사춘기 시절에 청산했습니다. 대신 저는 그 상태를 떠올리는 저만의 비법이 있지요. 음악을 듣고 영상을 떠올리면 그 감정 상태에 이를 수 있어요. 마치 앨리스가 토끼굴을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죠(웃음).”

마리킴은 1977년 부산에서 1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모든 꼬마 여자아이들이 그렇듯 그녀도 연필을 쥘 수 있을 때부터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형태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이었어요. 지금 ‘아이돌'의 원형이었던 것 같아요.” 보통의 아이들이 천재적인 피카소의 어린 시절을 지나 자연스럽게 제도권 교육의 점잖은 세계로 넘어온 데 비해, 마리킴의 편집증적인 드로잉 습관은 중학교 시절로 넘어가면서 더욱 과격해졌다.

감수성과 호기심이 극에 달하던 중학교 시절, 그녀는 로맨스 소설과 컬트 비디오 영화의 엽기적 상상력을 보탠 야한 창작 만화를 그려 또래 친구들을 전염시켰다. “엽기와 변태의 시절이었죠(웃음). 엄마는 쟤가 대체 뭐가 되려나, 걱정하셨어요.” 공부와 담을 쌓고 지내던 그녀는 고교 졸업 후, 부모를 설득해 호주로 도피성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IQ140의 날라리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멜버른 RMIT대학에서 멀티미디어를 전공, 동 대학원에서 크리에이티브 미디어로 석사학위를 받은 후 2007년 서울로 돌아왔다. 미술계 인맥이 전무한 채로, 어쨌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작가가 뭔지도 잘 몰랐을 때였어요.” 몇몇 미술 출판업자를 찾아갔다가 ‘그림이 너무 괴기스러워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다 혹평을 듣자, 그녀는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와 블로그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2011년 파워풀한 걸그룹 2NE1의 앨범 이미지 작업을 했고, ‘Hate You’라는 뮤직비디오를 연출하기도 했다./사진=고운호 기자

“매일 하나씩, 2년 동안 700개를 업로드했어요. 네이버 블로그에서 메인 상단에 제 사이트가 노출되면서 서서히 블로그 스타가 됐죠.” 전략은 적중했다. 대중들의 눈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마리킴이 누군지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다. 유명 갤러리들의 집합지인 청담동 네이처포엠 빌딩의 오페라 갤러리에서 연락이 왔고,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 후부터 본격적인 마리킴의 네오팝 시대가 열렸다.

-기분이 어떤가요?

“저는 항상 저를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요. 사람들은 저를 떴다고 하지만, 더 큰 세상에서 보면 저는 늘 작아요. 이만큼 온 건 감사한 일이지만, 게으름을 피울 여유도 없죠. 도올 선생이 세계적인 석학들과 비교하면 스타트라인에서 20년 뒤졌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래요. 저보다 훌륭한 작가가 너무 많아요. 도널드 트럼프만 봐도 대중을 읽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냔 말이죠.”

이어지는 모범 답안에 살짝 기운이 빠졌다.

-제프 쿤스나 무라카미 다카시 얘기를 해보죠. 그들은 후기 산업 시대가 낳은 대표적인 팝아티스트예요. 돈줄을 쥔 딜러들과 스타에 목마른 시장, 각자의 재능이 시너지를 일으켜 미술 시장의 슈퍼스타가 됐고, 작품값도 천정부지로 올라갔어요.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제 모든 건 어쨌든 SNS에서 시작됐어요. 제 작품은 디지털이에요. 컴퓨터로 봤을 때 최고로 아름답죠. 저는 제 작품이 인터넷에서 소비되도록 열심히 SNS에 올렸어요. 인스타, 페북 등 제 팔로워는 10만 명이 넘고, 그들은 제 작품과 제 라이프스타일을 흥미롭게 구경하고 있어요. 일례로 저는 TV 출연을 하지 않는데도, 사람들은 제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요. 제 작품도 친근하게 생각하죠.”

-앤디워홀 시절부터 팝아티스트가 셀러브러티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까요?

“저 자신, 팝아티스트라고 저를 규정한 적이 없어요. 처음에 그림을 들고 한국에 왔을 때도 단맛에 길든 사람들은 제 그림을 거들떠도 안 봤어요. 초기에 제가 그린 아이돌 그림은 뱀파이어에 유혈이 낭자한 다소 어둡고 괴기스러운 느낌이었죠. 신맛, 쓴맛, 매운맛이 적절하게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 감정의 맛을 느끼고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Mari Kim(Self Portrait)>

2012년부터 그녀는 클리오의 화장품 브랜드 페리페라와도 협업했다. ‘아이돌 시리즈'가 그려진 페리페라는 제품명 대신 ‘마리킴 틴트'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마리킴 틴트'는 스타를 닮고 싶은 갈망과 스타를 소유하고 싶은 애완의 욕구를 날개 삼아 불티나게 팔렸다.

팝아트의 전파 속도는 초대형 컴퓨터에서 아이폰이 탄생한 속도만큼이나 빨랐다. 앤디 워홀이 마릴린 먼로를 실크스크린에 프린트했던 시절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달려온 것일까.

어느새 전시장이 문닫을 시간이 되어, 우리는 그녀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작업실은 쇼윈도와 레스토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압구정동 한복판에 있었다. 딸칵! 불을 켜자 미완성의 그림과 물감, 이젤이 분방한 모습을 드러냈다. ‘Hello, Stranger’라는 액자 속 네온사인이 우리를 반겼다.

-그림을 팔아서 돈은 좀 많이 벌었나요?

“(웃음)저에게 투자하는 게 가장 훌륭한 재테크라고 생각해요. 아끼지 않고 여행을 떠나고, 강남 한복판에 작업실을 마련한 게 일종의 재테크죠. 저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자요. 나머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면 집과 작업실의 거리가 가까워야죠.”

-외모를 연예인처럼 가꾸는 건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인가요?

“아니요. 저는 콘텐츠가 되는 건 싫어요. 소모되거나 흉내 내는 걸 안 좋아하죠. 제 몫은 콘텐츠를 창조하는 일이에요. 저는 자아가 강해서 누군가에게 사용되는 걸 못 견뎌 해요. 제가 만든 영화에 어쩔 수 없이 배우로 출연하는 정도죠.”

-자신의 신체를 직접 소재로 사용하는 신디 셔먼이나 니키 리 같은 여성 작가에 대해선 어떤 의견을 갖고 있나요?

학창 시절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성스러운 피'를 보고 컬트적 상상력을 자극받았다는 마리킴. 지금도 영화와 웹툰 등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고./사진=고운호 기자

“신디 셔먼을 정말 좋아합니다. 스스로 롤 플레이를 한다는 점이 존경스러워요.”

신디 셔먼은 자신의 몸을 변형시켜 사진으로 기록한 여성 예술가다. 메이크업, 의치, 가발 등을 통해 백인 할머니부터 여고생에 이르기까지 셔먼은 천의 얼굴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다른 인물이 되어보려는 그녀의 충격적인 의지’에 감동받았다. 그리고 1970년대 말 이후로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신디 셔먼의 가장행렬은 분명 마리킴의 ‘아이돌' 시리즈에 영향을 미쳤다. 신디 셔먼이 TV 시대의 원숙한 여배우라면 마리킴은 인터넷 시대의 위악적인 아역 배우쯤 될까.

-마리킴의 ‘아이돌’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실크스크린과는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요?

“복제와 변형이 같지요. 앤디 워홀은 마릴린 먼로의 색깔을 바꿔 여러 형태로 프린트했지만, 저는 유니크하게 옷을 갈아입혔죠. 먼로는 실존 인물이고, 아이돌은 가상의 인물이라는 점도 다릅니다.”

-사람들은 당신 그림에서 일본 네오팝의 선두주자인 요시토모 나라의 심통 난 어린이를 떠올리더군요. 여자판 요시토모 나라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요시토모는 과거를 그리워합니다. 노스탤지아죠. 저의 아이돌은 미래지향적이에요. 디스토피아에 가깝죠.”

-당신이 창조한 ‘아이돌'의 심리 상태는 어떤가요?

“막 잠에서 깬 상태. 사이코패스적인 면이 있어요(웃음). 기자님이 김기덕 감독을 평하면서 죄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두려움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고 쓰셨더군요. 깊이 공감했어요(웃음). 상상의 세계에선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지요.”

<Margaret Thatcher>.

-염세주의자인가요?

“낙관적 염세주의자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유전자를 보존시키는 일 따위는 하지 않으려고 해요. 언젠가 비극적으로 끝날 것을 알기에 현실을 즐겁게 살자는 주의죠. 인간은 몇 만 년 후면 99% 없어질 거예요. 과학자들의 설득력 있는 예견에 따르면요. AI가 지구에 해로운 인간을 남겨둘 리가 없거든요.”

-당신이 느끼는 세상의 밝기는 어느 정도인가요?

“저는 불빛이 없는 검고 깊은 바다에 서 있어요. 하지만 제 눈은 어스름한 달빛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밝은 곳을 쳐다보고 있지요.”

-고상함과 천박함, 귀여움과 무시무시함의 공존이야말로 ‘팝'의 대표 정서죠. 아이돌 이외의 작품은 없습니까?

“없어요. 전부 아이돌과 연관이 있어요.”

-아이돌 이외는 못 그립니까?

“아이돌을 피해갈 수는 없어요. 일종의 바이러스거든요. 피라미드 삼각형 안에 아이돌의 눈동자를 넣는 기하학적 추상이나 우주 초기 빅뱅 추상화도 있지만, 모두 아이돌의 분신이죠. ”

<Future Baby>.

-주로 디지털로 작업하는데 아날로그적인 페인팅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충분히 표현할 수 있어요. 감히 말하자면 최상급입니다. 간혹 제 그림을 보고 구도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어요. 가령 마리 퀴리 앞의 실험 도구가 쏟아질 것 같다는 거죠. 그런 분들은 피카소의 그림도 다시 봐야 합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 중 하나는 르누아르의 ‘두 자매' 그림을 디지털 페인팅으로 재현했어요. 질감을 잘 살려서 진짜 회화 느낌이 나죠.”

-당신이 느끼는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구 온난화와 동물 학대 문제예요. 저는 인간이 지구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반대해요. 인간 중심의 효율적인 진화론이 ‘절대악'을 만들죠. 얼마 전엔 보신탕을 반대하는 캠페인으로 ‘Friend! Not Food’라는 작업도 했어요.”

-영감을 주는 사람은 누군가요?

“과학자와 사회심리학자들이요. 마릴린 먼로가 아인슈타인을 좋아하듯 저는 과학자를 좋아합니다.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나 천문학자인 이명헌 선생님에게도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상처는?

“2004년에 엄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병원에 갔을 땐 의식이 있었는데, 저를 본 후 의식을 잃었죠. 열흘 만에 눈을 감으셨어요. 만약 제가 마법을 써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Mother Robot>.

-어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까

“아버지는 평범한 보험사무소 소장이셨어요. 어머니는 특별했어요. 이불에 사마귀 모양의 추상을 수놓기도 했죠. 제가 공부를 못해서 호주로 도피 유학을 떠났을 때도, 어머니는 IQ를 근거로 제가 영재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매일매일 전화로 통화했고 교감했어요.”

-과학자가 인과 관계를 찾는 회의주의자라면 아티스트는 어떤 존재인가요?

“저는 아티스트가 아니었다면 과학자가 됐을 거예요. 지금은 과학자 곁에 있는 아티스트죠.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하면 예술적 작업이 좀 더 정돈됩니다. 회의주의자라는 결론은 같지만요.”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동지애를 느끼나요?

“로봇공학자인 데니스 홍 박사입니다. 그는 나의 멘토이고 롤모델이죠. 저 또한 그분처럼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마리킴의 지성과 독창성은 어디에서 옵니까?

“지금도 영화, 만화, 웹툰, 철학과 과학책을 쉬지 않고 보고 읽고 있어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저 자신을 노출시키고 이상야릇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웃음).”

압구정동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한 다세포 소녀 마리킴. 그녀는 신디 셔먼과 요시토모 나라의 중간쯤 어딘가에 떠있다./사진=고운호 기자

-가장 큰 욕심이 있다면?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것. 좋은 작가로 영향을 미치려면 먼저 명성을 얻어야죠. 그래야 세상을 바꿀 힘이 생길 테니까요.”

-아이돌은 왜 계속 만들고 있지요?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거죠. 현재 제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고요.”

-아이돌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인간이 죽을 때 함께 죽겠지요. 저의 아이돌은 창세기부터 존재합니다. 외모가 그대로인듯하지만, 눈을 보면 나이가 보이지요. 말투도 생각도 계속 진화합니다.”

때로는 변태적이고 역겹게, 때로는 팬시하고 탐스럽게. 지금까지 마리킴은 인류의 의심과 불안을 극단까지 밀어붙이고 대담하게 표현했다. 고백건데 나도 그런 용기를 갖고 싶다. 그것은 디지털로 표현된 내 영혼의 엑스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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