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학생 인권에 투표한 대학가.. '커밍아웃' 총학생회장을 뽑다

전현석 기자 2016. 12. 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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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서울대 등 동성애자 밝히고 당선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 한국 사회서 점점 높아져
총학에 관심 줄어들며 진출 쉬워졌다는 분석도

지난 12일 카이스트 총학생회 선거에서 부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한성진(23·화학과)씨는 성소수자다. 그는 입후보할 때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 이력을 공개하는 등 이른바 '커밍아웃'을 했다. 한씨는 총학생회장 후보인 조영득(21·생명과학과)씨와 팀을 이뤄 단독 출마해 82.9%의 찬성표를 받았다. 지난달 연세대 총여학생회장에 당선된 마태영(22·신학과)씨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선거 과정에서 드러냈다. 마씨도 단독 출마해 86.9%의 지지를 얻었다. 이번에 계원예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장혜민(여·20·융합예술과)씨도 성소수자다. 연세대와 계원예대는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라서 이들의 당선이 더 화제였다.

작년 11월 서울대 김보미(여·24·소비자아동학부)씨가 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공개하고 총학생회장에 뽑힌 이후 성소수자의 대학 총학생회 진출이 늘고 있다. 아주대 노명우 교수(사회학)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같은 추세가 대학 사회에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홍석천 등 연예인들이 TV 등 미디어에서 동성애 사실을 공개하고 활동하는 걸 보고 자란 세대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생겨난 변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연세대생 류희지(20·아동가족학과)씨는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총학생회 일을 하는 데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준호 서울대 학생처장은 "대학에서 폭언·폭력이나 성추행·성폭행 등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데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며 "성소수자 후보는 학생 인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학생들에게 어필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한성진 부총학생회장은 "선거 당시 페이스북에 공약을 밝혔을 때 반(反)성폭력 규정 및 인권 가이드라인 제정, 장애인·여성 등 학내 소수자를 위한 권리 보장에 '좋아요'를 표시한 학생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계원예대 장혜민 총학생회장은 '장애인 수강 과목 제한에 대한 학칙 수정 검토' '혐오성 발언을 방지하는 강의 평가 방식'을 약속했었다.

대학생들이 총학생회에 무관심해지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총학생회는 1970~80년대 대학 학생운동의 중추였지만 1990년대 민주화 바람이 불고 비운동권의 총학생회장 당선이 늘면서 위세와 활동이 쪼그라들었다. 2000년대 들어 취업난 때문에 학생회 일을 하려는 학생이 크게 줄었고, 총학생회장·부총학생회장에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는 경우도 자주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성소수자들의 총학생회 진출이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작년 서울대의 김보미 총학생회장과 이번에 당선된 연세대 총여학생회장,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모두 경쟁 후보 없이 단독 출마했었다. 서울대생 정모(25·경영학과)씨는 "동성애자가 총학생회장이 되든 말든 학교 생활에 큰 변화가 없다"며 "총학생회는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학생의 총학생회 진출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준호 서울대 학생처장은 "김보미 전 총학생회장이 총학생회를 잘 이끌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페미니즘 활동에 다소 치우쳤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관계자는 "정서적으로 민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학생회가 나서서 동성애를 조장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기독교를 건학 이념으로 하는 대학에서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힌 총학생회 임원이 나왔을 때 학교 당국과 갈등도 예상된다. 총신대 관계자는 "동성애는 성경에 위배되는 행위이므로 학칙과 학사 내규에 명시적 언급이 없더라도 제적 사유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보미 전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학교는 종교의 공간이 아니라 교육의 공간"이라며 "커밍아웃하고 당선된 총학생회장, 부총학생회장이 책임있는 언행을 해서 학내외에서 신뢰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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