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헌법재판관들이 말하는 탄핵심판 7문 7답

입력 2016. 12. 16. 17:58 수정 2017. 1. 1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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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탄핵심판 중 대통령 사퇴 가능” “헌법재판관들 보수적이라도 ‘탄핵 반대’ 의견 쓰긴 쉽지 않을 것”

2부_심판의 시간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의 심판대에 선다. 전직 헌법재판관들을 만나 이번 탄핵심판의 쟁점과 전망을 물었다. 특별검사 수사도 시작됐다. 검찰 출신인 김기춘·우병우, 두 사람을 향한 수사에서 특검의 능력과 역할이 드러날 것이다.

이제 공은 국회에서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의 심판대에 서게 됐다. 국회로 쏠렸던 눈도 이제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헌재)를 향한다.

헌재가 탄핵심판에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최종 결정까지 얼마나 걸릴지, 탄핵심판 절차를 밟는 중에도 대통령이 사퇴할 수 있는지 등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설왕설래다. 헌재는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판한 경험이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심판이 12년 만에 반복되는 일은 불행이지만, 12년 전 사례 덕분에 심판 과정에서 혼란이 덜할 수 있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한겨레21>은 전직 헌법재판관 3명을 만나 이번 탄핵심판 사건의 쟁점과 전망 등을 두루 물었다. 하경철(1999~2004년), 조대현(2005~2011년) 전 헌법재판관은 2004년 탄핵 사건 때 노무현 전 대통령 변호를 맡은 12명의 대리인단에 속해, 탄핵 사건을 누구보다 잘 아는 법률 전문가다. 송두환(2007~2013년) 전 헌법재판관은 가장 최근(2013년 2월)에 퇴임한데다가, 2003년 대북 송금 의혹 사건 특별검사를 맡은 바 있다. 이들과 나눈 이야기, 2004년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탄핵 사건 결정문, 관련 법조항 등을 바탕으로 앞으로 펼쳐질 심판 과정과 벌어질지 모를 논란을 미리 정리해본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변호를 맡은 하경철(왼쪽), 조대현(가운데) 전 헌법재판관과 가장 최근에 퇴임한 송두환(오른쪽) 전 헌법재판관. 박승화 기자,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류우종 기자

① 선고까지 얼마나 걸릴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은 3월12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가 5월14일 탄핵심판 청구를 기각하기까지 63일이 걸렸다. 아무리 신속하게 처리하더라도 최소 두 달은 걸리는 셈이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그때보다 따져야 할 내용이 더 많다. 증인 채택, 헌법재판관 퇴임 등 변수도 있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는 심판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하경철 2004년 헌법재판관 퇴임 직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변호를 맡았다. 워낙 위중한 사건이고 대통령 권한정지가 길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대리인단이나 심판부가 빨리 서둘렀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2004년 사건은 탄핵 사유가 단순했다. 증인도 몇 사람 안 부르고 기록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그리 오래 안 걸렸는데, 이번에는 탄핵 사유로 거론되는 기초사실이 많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관계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박 대통령 쪽에서 증인을 많이 신청한다든지 해서 시간 끄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탄핵소추의결서를 피청구인인 대통령에게 송달하고 나서 대리인단이 답변서를 제출하기까지 20~30일 시간을 준다. 첫 공개변론이 이르면 1월 말, 늦어지면 2월 초쯤 잡힐 거다. 첫 공개변론 기일에 당사자 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으면 재판을 못한다. 그러면 다시 일주일쯤 뒤에 2차 기일이 잡히고, 방대한 기록이 오가고 증인 신청·채택 과정 등을 감안하면 3월 말 또는 4월 초쯤 선고되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정지가 오래되면 좋지 않으니 재판부도 서두를 거다. 그러면 3개월 이내에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80일은 훈시규정이라 반드시 얽매일 필요는 없다.

조대현 2004년에는 언론에 다 공표된 (정당 지지) 사건이라 증거조사가 복잡하지 않았다. 지금은 탄핵소추 사유가 여러 가지라 증거조사에 시간이 많이 걸릴 거다. 박 대통령 쪽이 증인 신청을 많이 해서 시간을 끌려고 할 거다. 검찰이나 특검에서 참고인 신문조서를 증거로 쓰려면 피청구인(대통령) 쪽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하지 않으면 참고인들을 다 증인으로 불러서 판단해야 한다. 형사재판 절차를 준용하기 때문에 그렇다. 헌재가 주 2회 변론기일을 잡아야 할 수도 있다.

송두환 기간을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렵다. 헌법재판관들이 이 사건을 얼마나 중대하고 심각한 사건이라고 판단하는지, 국정 혼란과 헌정 중단 사태를 시급히 종식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상당히 기간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탄핵심판 사건은 ‘필요적 구술 변론’ 사건이므로, 공개변론 기일을 정하고 참고인 진술을 듣는 절차를 거치는데 그것만으로도 서너 달은 걸린다. 하지만 헌재가 서둘러 진행하면 기간을 단축할 여지도 꽤 있다. 헌재에 있을 때 ‘이명박 특검법’이 위헌이란 헌법소원이 들어왔는데, 특검 수사가 시작되는 시기 이전에 서둘러서 20여 일 만에 선고를 내린 적도 있다. 지금 헌정이 심각하게 훼손된 상태이므로, 재판관들이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인식해 조속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겠나 한다.

② 최순실 1심 재판 결과 등이 나올 때까지 헌재가 결정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하경철 헌법재판소법에 형사 절차가 진행 중일 때는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헌법재판소법 제51조 “탄핵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도 있고, 헌재 심판과 법원의 유·무죄 판단이 결론을 달리하면 혼란이 오기 때문에 일반의 경우에는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동안 언론과 검찰 수사에서 워낙 자료 검증이 많이 돼 있어서 법원과 헌재의 판단이 90% 같을 거다. 그런 상황이면 굳이 법원 판단을 안 기다리고 헌재가 독자적인 판단을 할 것이다.

조대현 일반인이 보기엔 비슷할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법원에서 확정하는 사실과 헌재에서 확정하는 사실이 다르다. 법원은 범죄가 되냐 안 되냐를 판단하지만, 헌재는 헌법 위반이 되냐 안 되냐만 판단하면 된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안 나왔더라도 사실관계 확정은 헌재가 하면 된다. 국회에서 탄핵소추 사유로 삼은 사실이 증거로 인정되냐 안 되냐, 그것이 헌법 위반이냐 아니냐를 판단하고, 그래서 헌법 위반 사실이 고위 공직에서 배제할 정도냐 아니냐 이런 순서로 판단해나가는 거다.

송두환 헌재는 법원의 사실 인정에 종속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다. 증거에 의해 독자적으로 심증을 형성하고 사실을 인정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법원 재판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법리상 맞지 않다. 물론 법원에서 확정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서는 헌재가 최대한 존중하는 측면이 있겠지만, 법리상 법원의 선행적 판단이 없으면 헌재가 사실 인정을 할 수 없는 건 전혀 아니다.

③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이정미 헌법재판관 퇴임이 선고 시점에 영향 미칠까?

박한철 소장은 내년 1월, 이정미 재판관은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난다. 헌법재판소법은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 이상 출석해야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심판 정족수’를 정해놨고, 탄핵 결정은 재판관 6명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하경철 헌재 처지에선 사건이 중대하니까 이정미 재판관 퇴임 이전에 끝내려고 서두를 거다. 박한철 헌재소장 후임은 30일 내에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돼 있지만, 국회에서 권한대행 총리가 임명하는 헌재소장을 인정해주겠나. 쉽지 않을 거다.

헌재소장은 행정 업무의 대표이고, 심판 업무에선 소장 궐위시 선임자가 재판장 역할을 하니까 박한철 소장이 퇴임한 뒤에라도 심판 진행에는 큰 차질이 없을 거다. 다만 이정미 재판관 퇴임 뒤로 넘어가면 재판관 7명이 남는데, 정족수 7명을 채우지 못하면 심판기일 자체를 못 연다. 7명 중 누구 하나가 병원에 입원하는 일만 생겨도 재판이 늦어진다.

조대현 대통령이 권한 정지되더라도 대통령 권한대행이 후임 헌재소장을 임명해야 한다고 본다. 재판관 7명 이상 참석해야 심리를 할 수 있는데, 임명을 미룬 채 공석으로 두는 건 직무유기다. 내년 1월 후임 소장이 임명되려면 12월 말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가 후임 소장을 지명해야 할 거다.

송두환가급적 재판관 9명이 다 있을 때 심리 평의가 이뤄지면 제일 좋고, 차선책은 적어도 이정미 재판관 퇴임 전에 재판관 8명 체제하에서라도 평의가 이뤄질 수 있어야 하는데 (선고까지 시일이 오래 걸리는 등)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9명 체제이든, 7명 체제이든 결국 6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해야 인용될 텐데 9명 체제보다는 7명 체제가 굉장히 더 엄격한 조건이 되는 탓이다.

④ 탄핵심판 절차 시작되면 대통령 사퇴 안 되나?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제3차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이 사건은 탄핵소추 의결서 접수부터 결정 선고까지 63일이 걸렸다. 사진공동취재단

국회법 제134조 2항은 “탄핵소추의결서가 (헌법재판소 등에) 송달된 때에 피소추자의 권한행사는 정지되며, 임명권자는 피소추자의 사직원을 접수하거나 해임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 조항을 놓고 탄핵소추안 의결 뒤 대통령 사퇴는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없기 때문에 사퇴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엇갈린다.

하경철 정말 큰 문제다. 해석상 아주 논란이 많다. 탄핵 의결 뒤에는 장관 등 공무원이 사임 못한다는 건 명백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없으니까 사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학계와 법조계의 통설은 안 된다는 거다. 대통령도 탄핵의결서를 통지받은 다음에는 사임할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게 통설이다. 탄핵이란 게 피소추자를 파면함으로써 국민의 공분을 해소하고 국가 기강도 확립하고 후임자에게 경종을 울린다는 여러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탄핵 의결 뒤에도 사임이 허용된다고 하면 탄핵제도의 취지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만약 대통령이 사퇴한다면 법적인 최종 판단은 헌재가 할 거다. 헌법재판소법에 보면, 탄핵 공무원이 파면된 때는 탄핵 신청을 기각한다고 돼 있다. 이를 따르면 이번 사건도 각하 또는 기각할 것이고, 만약 사임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탄핵을 인용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사퇴한다면 헌재 결정 전에 아마 정치적 해석으로 끝날 거다. 민의가 즉각 사임을 요구하고, 탄핵 절차가 길어지면 국정 공백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결국 법적 해석 이전에 민심, 정치적 타협 등으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대현 대통령 퇴진이나 하야는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그걸 국회에서 결정해달라고 한 것 자체가 초헌법적 발상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 의결이 되면 사표를 못 내게 돼 있는데, (대통령 사퇴와 관련해) 그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는 논란이 예상된다.

송두환 국회법 해당 조항이 어떤 취지로 만들어졌는지를 봐야 한다. 대통령 탄핵까지 예상한 조항인지 생각봐야 하는데, 대통령은 임명권자가 없다. 틀림없이 논란거리는 되겠지만, 대통령이 사퇴할 수는 있다고 본다.

만약 국회법 때문에 사퇴 효력 여부가 부담된다면 이런 방식도 가능할 거다. 탄핵소추의결서를 헌재에 제출하고 나서는 소추위원이 임의로 탄핵소추 사유를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회에서 일정한 의결 절차를 밟아 탄핵소추 자체를 취하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통령이 ‘불가역적 사퇴’를 하는 동시에, 국회가 탄핵소추를 취하하는 방식으로 하면 국회법 위반을 따질 필요가 없어진다.

국회법 해석과 관련해선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할 테지만, 그 자체가 구속력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예상도 가능하다. 대통령이 사퇴한 다음에, 사퇴 효력을 부인하고 싶은 누군가가 (국회법을 근거로) 법원이나 헌재에 소송을 제기해서 법원이 이 문제를 판단할 필요가 생길 수도 있다.

⑤ 재판관들의 보수적 성향이 변수 될까?

하경철 언론에 보도된 혐의대로라면 탄핵 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헌법재판소가 최근 보수화한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워낙 국가의 중대한 사안이고, 국민을 위해 어느 쪽이 이익이 되는지 재판관들도 나름대로 다 판단하기 때문에 단순히 ‘보수화 경향’만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재판관은 헌법에 의해 자기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 헌법은 외형이 나와 있어 눈에 보이지만, 양심은 내심에 관한 문제라 보이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재판관들이 ‘탄핵 사유가 된다, 안 된다’ 고민할 때 부딪히는 부분이 바로 양심이다. 과연 탄핵 인용과 기각 어느 쪽이 국가와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게 바로 양심의 문제가 된다.

재판관이 생각하기에, 탄핵 사유가 되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파면까지 하는 건 안 좋다는 양심의 소리가 들리면 탄핵에 반대할 수도 있다. 그 양심의 결정은 본인이 혼자 고민하지만, 과연 국민에게 이익이 되나 안 되나 판단하는 기준의 하나가 국민의 여론, 이른바 민심이다.

촛불 민심이 (재판관의) 양심 형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거다. 2004년과 달리 재판관 소수의견을 공개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민심의 영향을 더 받을 수 있다. (※2004년 헌재는 탄핵심판 사건의 경우 소수의견을 공개하도록 돼 있는 헌법재판소법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찬성과 반대 의견을 따로 밝히지 않았다. 2005년 모든 심판에 재판관 의견을 표시하도록 헌재법이 개정됐다.)

조대현 탄핵은 헌법과 법률을 수호하려는 제도다. 보수적 성향이란 것도 해석하기 나름인데, 헌법과 법률을 중시하는 게 보수적 입장이라면 탄핵을 거부할 성향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검찰에서 99% 입증에 자신 있다고 하니까 대부분의 소추 사유가 인정된다면, 이로 인해 이 사람이 대통령을 더 이상 못하게 하는 게 국법 질서를 수호하는 것인가, 그럴 필요성이 있는가, 그 판단에서 견해가 달라질 수는 있다.

이 판단을 할 때 재판관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영향을 미치는데, 결국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단할 거다. 헌법재판관이 되면 정치인들 눈치 안 본다. 물론 국민들 눈치는 보고, 국민은 중요하게 생각한다. 재판관의 양심은 객관적 양심이다. 많은 국민이 하야와 퇴진을 주장하고 탄핵에 찬성한다면 그게 재판관들한테 영향을 줄 거다. (탄핵 찬성 여론이 70~80%라면) 재판관들도 반대 의견 쓰기 쉽지 않을 거다.

송두환 이번 사건은 보수-진보 또는 좌우의 문제는 아니다. 원칙을 파괴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종류의 사건이다. 촛불집회가 거세다거나 잠잠해졌다거나 하는 것이 재판관들의 판단에 직접적 영향을 주어선 안 된다. 다만 이 모든 사태가 우리 정치·사회 상황의 일부인 것은 틀림없으니, 재판관들이 최종 결정을 내릴 때 참작할 요소 중 하나로 (촛불 민심이) 들어가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 직접적 영향을 받아서 자기 본래의 철학이나 신념에 영향을 끼칠 바는 아니지만, 결론을 내릴 때 감안할 참고 요소로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⑥ 박근혜 대통령의 ‘중대한’ 헌법 위반 행위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판단 기준을 내놓았다. “파면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 어떠한 것인지’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나,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정당화되는 것이다.”

조대현 재벌들한테 돈 걷은 게 가장 큰 헌법 위반 행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해서 통치 권한을 위임받지만, 그 권한은 국민의 뜻에 따라 통치해야 할 권한이다. 국민의 뜻은 바로 헌법과 법률이다. 제왕적 통치권이 아니라는 거다.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이 설사 국가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법률을 만들어서 모금을 하거나 국가예산을 지원했어야지, 법률 근거도 없이 재벌들을 불러다놓고 후원해달라고 얘기했다면 그건 직권남용이다. 만약 재벌들이 몇십억원을 후원하는 대가로 뭔가 혜택을 받았다면 뇌물죄로 연결되고, 공직에서 배제할 필요성이 더 커진다. 사익을 위해 직권을 남용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

송두환 (탄핵소추안에 문제된 죄 중에) 어느 하나 가볍지 않다. ‘경미한’ 헌법·법률 위반까지 다 탄핵 사유로 볼 수는 없다. 그래서 2004년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도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고 한 것이다.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의 법 위반. 헌재가 불명확한 부분을 좀더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한 표현으로 보인다. 지금도 추상적 단어들로 조합돼 있긴 하다.

결국은 재판관들이 자신의 가치관, 지식과 경험, 철학 등 모든 걸 동원해서 최종적으로 ‘이 정도 행위를 한 사람이 대통령직에 그대로 앉아서 국정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지, 안 되는지’로 단순화해 판단할 것이다.

⑦ 헌법에 대한 국민의 관심 그리고 ‘탄핵 의결’ 이후에 대한 생각은?

하경철 국민들 사이에 헌법 지식을 넓혀야겠다는 의식이 많이 확산되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정치에 대한 관심,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거다. 정치는 그만큼 발전되고,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국민을 위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탄핵 의결 전에 대통령이 사퇴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빠른 결심이 최선책인데 그게 안 되니 차선책은 탄핵 이후에 사퇴하는 방안이다. 사퇴가 가능하냐 가능하지 않냐는 법적 논쟁은 차치하고, 국정 안정을 위해서 정치적 타결을 빨리 모색해야 한다.

송두환 일반 시민들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등 헌법 조항을 친근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헌법이 장식장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에 친근한 존재로 동행하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돼 반갑다.

거의 외길 수순으로 탄핵까지 왔다. 탄핵 의결이 되었으니 이제 문제가 해결됐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을 거다. 대다수 국민은 ‘탄핵 의결 이후 과정도 정말 중요하다’ ‘설마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될 리야 있겠느냐’ 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하는 우려를 갖고 있을 거다. 헌재 결정까지는 국민이 계속 기대와 우려를 갖고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겠나.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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