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민주주의 향한 고난의 길

최원형 2016. 12. 1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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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지도자·사회운동가 이희호
정치인 김대중 평생의 '동역자'로
부부의 삶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

[한겨레]

1997년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뒤 승리가 확정되고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김대중과 이희호. 한겨레출판 제공

이희호 평전-고난의 길, 신념의 길
고명섭 지음/한겨레출판·3만2000원

“우스갯소리로 나는 늘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내 자신의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스개가 아닌 나의 진심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내인 이희호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1980년 서슬 퍼렇던 신군부가 그를 찾아와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다. “협력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상황”에서, “한순간 흔들리던 마음은 아내를 생각하며 올곧게 바로잡혔다”고 한다. 두 사람이 즐겨 쓰던 표현대로 이들 부부의 관계가 ‘동역자’의 관계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기에 이희호가 없는 김대중, 김대중이 없는 이희호는 생각하기 힘들다. 남편이 집안의 주인이라 생각하던 시절에, 이들은 동교동 집에 ‘김대중’과 ‘이희호’ 명패를 나란히 걸었다.

<이희호 평전>은 2015년 4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한겨레>에 80차례 장기 연재된 글을 가다듬고 묶은 책이다. 지은이인 고명섭 한겨레 기자는 “이희호의 부드러움 속에는 부러지지 않는 철심이 들어 있었다. 그 철심이 남편의 민주주의 신념이 가혹한 탄압에 흔들리는 것을 막아주었다”고 썼다. 지은이는 이희호의 삶을 통해 김대중과 이희호를, 또 이들 부부를 통해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갖은 고난을 치러야 했던 우리 민중의 현대사를 빼곡하게 다시 썼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전과 서울대 사범대에서 공부했던 이희호는 주목받는 여성 지도자, 사회운동가였다. 한국전쟁 통에 여성문제연구회 창립에 주도적 구실을 했고, 그가 씨앗을 뿌린 차별철폐 운동은 먼 훗날인 1989년 가족법 개정이란 결실을 거두기도 했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대한와이더블유시에이(YWCA) 연합회 초대 총무로도 활약했다. 당시 김대중은 전 부인과 사별한 아픔을 딛고 민의원에 당선됐으나, 5·16 군사쿠데타 세력의 정치활동 금지 조처로 좌절을 겪고 있었다. 이 시기 김대중과 급격히 가까워진 이희호는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마음으로 그와 결혼하게 된다.

2008년 11월 이희호의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출판기념회에서 이희호에게 감사를 표하는 김대중. 한겨레출판 제공

부부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영구집권을 노리던 박정희에게, 이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젊은 정치 지도자 김대중은 눈엣가시였다. 김대중은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로 나서는 등 박정희와 대립각을 세웠으나 박정희는 수족처럼 움직이는 국가조직과 막대한 돈을 들여 그를 저지했고, 끝내 유신 쿠데타까지 일으켰다. 가택연금, 수감, 살인미수와 다름없는 납치 등 고초가 사라질 날이 없었다. 박정희가 죽은 뒤에는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이 김대중을 옥죄었고, 그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뒤집어씌워 사형까지 선고했다. 감형을 받은 뒤에는 반강제적으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이희호는 김대중과 함께 서로 버팀목이 되어 모든 고난을 함께 겪었다. 이들은 고난을 이겨낼 힘을, 민중 모두가 갈구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에서 찾았다. 신앙이란 바탕도 있었다. 김대중은 가톨릭, 이희호는 감리교 신도로 각자 교회는 달랐지만, “행동하는 양심”을 하느님의 뜻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서로 같았다. 내란음모죄로 감옥에 갇혔던 시절,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인은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두 가지 사명을 띠고 있다”고 하자, 이희호는 답장에서 “일방적으로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죽은 신앙’”이라고 동조한다. 지은이는 “이희호에게 신앙은 자유, 정의,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싸움의 보이지 않는, 최후의 무기였다”고 평가한다.

1997년 김대중은 끝내 대통령에 당선돼, 헌정사상 최초로 평화적·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책은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어렵사리 이뤄냈던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가 다시금 후퇴해온 최근의 상황까지도 다룬다. 후임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의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급격히 쇠약해진 김대중도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이희호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하는 등 ‘동역자’와 함께 세웠던 뜻을 계속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여성의 인권을 존중하고 높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 사람으로, 남편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한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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