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學졸업 3년 지나면.. 입사 서류통과 확률 10% 안돼

손장훈 기자 2016. 12. 15.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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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대 기업 인사 담당자, 졸업시점·평점·전공·출신학교 順 중시]
'졸업한 지 3년' '학점 3.0 미만' '직무 무관한 전공' 중 하나라면 다른 스펙 좋아도 상쇄 어려워
직능원 "지원서에 졸업 시점 표기 않는 등 제도 개선 필요"

서울 명문 사립대를 나온 A(30)씨는 졸업 후 3년 넘게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올해 처음 대기업 취업 문을 두드렸다. 학점 3.8(4.5 만점), 토익 점수 910점으로 기본 '스펙'이 좋은 편이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면접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삼성, 현대, LG, 주요 시중은행 등 대기업 50개 정도에 지원서를 냈는데 모두 서류 전형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는 "내년부터 다시 고시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학벌과 학점, 어학 성적 등 스펙이 뛰어나도 졸업 후 공백이 길면 대기업과 공기업 등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다는 정부 연구 기관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직능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의 청년 채용 시장' 보고서를 14일 발표했다. 조사는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100군데 인사 담당자를 설문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500대 기업은 한 해 10만명가량 대졸 신입 사원을 뽑는다.

◇서류 통과는 4대 스펙이 관건

이 대기업들의 인사 담당자들이 서류 전형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중요도 점수(항목 총합 100점)에서 19.6점을 차지한 '졸업 시점'이었다. 이어 '졸업 평점'(16.2점), '전공의 직무 적합성'(14.7점), '출신 학교'(14.5점) 등 순이었다〈그래픽〉. 이 조사를 총괄한 직능원 채창균 선임 연구위원은 "이 네 가지 스펙 중 어느 하나라도 좋지 않으면 다른 스펙이 아무리 좋더라도 서류 통과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졸업 시점과 관련, 인사 담당자들은 졸업 예정자(68.6점·80점 만점)를 가장 선호했다. 졸업 후 1년 이내(62.0점)와 졸업 후 1~3년 사이(48.1점) 지원자는 졸업 예정자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졸업 후 3년 이상인 경우엔 1.4점에 그쳤다. 졸업한 지 3년이 넘으면 학점이 4.0을 넘더라도 서류 통과율이 7.8%에 불과했다. 직능원은 "지원서에 졸업 시점을 명기하지 않는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벌과 학점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서류 전형 통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상위 10개 대학에 대한 선호도가 48.8점, 서울 소재 대학이 39.3점, 지방 국립대가 37.2점으로 비슷했다. 졸업 평점은 4.0 이상이 57.1점, 3.5 이상~4.0 미만이 51.7점, 3.0 이상~3.5 미만이 45.7점이었다. 다만 3.0 미만일 경우 0.7점으로 뚝 떨어졌다. 다른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3.0 미만 학점은 서류 통과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방 사립대 출신은 학점이 4.0이 넘더라도 서류 합격률이 10.7%에 불과했다.

◇"전공 중요도는 면접에서 크게 하락"

지원자가 대학 때 익힌 '직업 능력'은 서류와 면접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서류 전형에서 '전공의 직무 적합성'은 중요도 순위에서 셋째였지만 면접 단계에선 '직무 관련 기초 지식'이 최하위(6.2점)였다. 양정승 직능원 부연구위원은 "인사 담당자들은 대학 전공 교육 자체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 회사 직무와 전공이 어느 정도 맞기만 하면 괜찮다고 보는 것"이라며 "NCS(국가직무능력표준) 등을 활용해 대학 직업 교육을 기업 맞춤형으로 내실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튀는' 지원자는 면접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면접 시 '열정과 도전 정신'은 중요도 점수 10.3을 받아 1위인 도덕성·인성(23.5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도덕성·인성이 지원자 가운데 하위 25%에 속하면 다른 능력이 뛰어나도 면접 합격률은 13.4%에 그쳤다. 보고서는 "조직에 잘 융화되는 사람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기업 문화가 반영된 것"이라며 "도전 정신을 소홀히 할 경우 창의적인 인재를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설문 조사는 인사 담당자들에게 각기 다른 8개 스펙(서류)과 8개의 직업 기초 능력(면접)을 가진 가상의 지원자 수십명을 제시한 뒤 뽑을지 말지를 정하게 하는 '선택형 컨조인트(choice-based conjoint)' 방식으로 진행됐다. 채창균 선임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마케팅 조사를 할 때 주로 쓰는 기법"이라며 "단순히 개별 스펙과 직업 기초 능력을 제시한 뒤 중요한 항목을 고르라고 하면 인사 담당자들이 속내를 드러내는 선택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 방식으로 조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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