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박근혜 정책] (1)대통령 방어막 사라진 '비정상적 국정화'..폐기 1순위

장은교 기자 2016. 12. 1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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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국정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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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역사교과서는 박근혜 정부 불통 정책의 상징이다. 역사학계는 물론, 교육현장과 시민사회 모두가 국정화에 부정적이었지만 정부는 민심을 역주행해 일방 강행했다. 국정화의 명분도 내용도 절차도 ‘비정상’으로 점철돼 있다. 기존 교과서의 좌편향, 부정적 기술이 문제라면 검정교과서의 틀에서 고치도록 하면 됐다. 국민통합을 위해 국정화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결국은 국민을 갈가리 분열시켰다. 누구를 위해 왜 하는지 모르는 국정화였다.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며 가장 먼저 함께 탄핵되어야 할 정책 1호로 국정교과서가 꼽힌다. 내년 3월 현장 배포를 막아야 한다는 민심이 폭발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도 촛불이 모인 광장에선 “국정교과서 폐기” 구호가 울려퍼졌다.

대통령이라는 방어막이 사라지며 폭발하는 민심과 직접 마주한 교육부의 입장은 미묘하게 변하고 있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출석해 “국정화 철회는 아니지만, 내년 3월부터 적용할지는 현장검토본 공개 후 12월23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7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와 면담을 갖고 “모든 가능성을 열고 12월 중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철회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여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과 1년여 전 교육부는 여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학계, 교육계, 시민사회계에서 “권력이 하나의 국가관을 독점하고 강요하는 것은 독재정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반대했으나 강행했다. 국정화 행정예고 마지막 날 밤인 지난해 11월2일 교육부 정부세종청사 앞에선 ‘국정화 여론조사 찬성 답안지’가 트럭째 배달되는 모습이 목격됐다. 동일한 필체, 복사된 답안지, 인쇄소의 증언 등 찬성 여론을 조작하고 ‘차떼기’ 했다는 물증이 나왔지만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음날 황교안 국무총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를 발표했다.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취임 첫해인 2013년 7월 박 대통령은 “역사과목을 학생들 평가기준에 넣어서 반영하라”며 직접 국정화의 불을 지피기 시작했고, 교육부는 한 달 만에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뉴라이트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펴낸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 심사는 통과했지만, 채택률이 저조하자 교육부와 청와대는 2014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국정교과서 체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2014년 9월24일 ‘국사교과서 국정전환-신념’이라는 메모가 발견됐다. 국정화 고시 직후인 11월10일 박 대통령은 지금은 유행어가 돼버린 말로 국정교과서를 두둔했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2015 개정교육과정의 다른 과목과는 달리 역사교과서만큼은 2018년이 아닌 2017년 3월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박정희 탄생 100년을 기념한 ‘효도 프로젝트’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달 28일 현장검토본이 공개된 후 비판은 더욱 커졌다. 박정희 정권의 서술은 지나치게 상세했고 유신체제는 안보와 경제성장을 위한 선택으로 미화돼 ‘효도 교과서’임이 입증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류 최초의 금속도구, 인류 최초의 법전도 틀렸고, 고려시대 탐라국(제주도)은 일본 땅으로 채색되는 등 오류도 쏟아졌다. 상명대 주진오 교수는 “교과서를 집필할 땐 지겹다 싶을 정도로 회의를 많이 하고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원고 수정을 많이 한다”며 “학생들이 공부할 책이다 보니 문체부터 톤까지 맞추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주 교수는 “국정교과서는 시대별로 문체가 다르다. 교과서로서 기본도 지키지 않은 함량 미달”이라고 비판했다.

여론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다 보니 과정도 비정상적이었다. 지난해 국정화 고시 발표 때는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하겠다고 했으나 집필진 31명은 현장검토본 공개 때까지 정체를 꽁꽁 숨겼다. 국정교과서의 마지막 필자가 될 편찬심의위원들의 명단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추진비용은 예산심사를 받지 않는 예비비로 44억원을 끌어다 썼고 그중 홍보비로만 26억원을 썼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부총리의 행정고시로 발표된 만큼 부총리가 고시를 취소하면 당장 무효화된다. 485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지난 9일 탄핵안 가결 후 “국정교과서 정책을 즉각 폐기하라”는 성명을 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13일 전체회의를 연다. 이 자리에서 이 부총리의 발언이 국정화의 1차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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