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에게 생명의 기적을"

최기영 기자 입력 2016. 12. 1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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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숭교회 '워터풀 크리스마스트리' &'워터풀 콘서트' 주인공 홍원기
국내 유일의 소아 조로증 환자인 홍원기군(오른쪽 세 번째)과 가족들이 10일 서울 종로구 동숭교회 마당에 세워진 ‘워터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이 교회 서정오 담임목사(왼쪽 첫 번째)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김보연 인턴기자
수도관 기둥과 물방울 모양 아크릴로 꾸며진 워터풀 크리스마스트리 전경. 김보연 인턴기자

어스름하게 해가 저문 10일 저녁. 젊음과 문화의 거리인 서울 대학로 한편에 세워진 특별한 크리스마스트리 앞엔 수많은 사람이 걸음을 멈춘 채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동숭교회가 설치한 '워터풀(Waterful) 크리스마스트리'다.

트리엔 초록빛 전나무도, 흔한 방울 장식도 없었다. 대신 땅 속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수도관과 수도관 끝에 부착된 각양각색 전구, 물방울 모양의 아크릴 조각들이 삼각뿔을 이루고 있었다. 동숭교회가 세속화된 성탄절의 의미를 회복하고 물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지구촌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2008년부터 매년 12월 교회 마당에 세워온 '워터풀 크리스마스 트리'의 올해 모습이다.

올해로 9년째. 교회는 그동안 생수병에 물부족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적어 매달기도 하고, 영화 상영, 사랑나눔 콘서트, 나눔을 주제로 한 문화아카데미 등을 개최하며 모금 활동을 펼쳐왔다. 이를 통해 에티오피아 콩고 수단 탄자니아 르완다 등 세계 7개 지역에 20여개의 우물, 식수시설, 맑은 물 연구시설을 건립했다. 지난해부터는 식수 지원뿐만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워터풀 인(in) 워터풀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날 특별한 트리 앞에서 올해 콘서트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었다. 국내 유일의 소아 조로증(Progeria) 환자이자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시간을 달리는 소년’으로 알려진 홍원기(11)군이었다. 400만분의 1의 확률로 발병하는 소아 조로증은 유전자 변이로 인해 일찍 노화가 찾아오는 희귀질환. 전 세계에 약 100명, 평균수명은 13세에 불과하다.

원기는 성인용 야구모자를 쓴 아이의 모습처럼 아동용 모자를 귀에 걸친 채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1m 남짓한 키에 몸무게 14㎏, 실핏줄을 드러낸 벗겨진 머리, 신체나이는 80세. 하지만 뭘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최신 유행 게임과 캐릭터를 술술 쏟아냈다. 영락없는 어린이였다.

아버지 홍성원(39·서울 서강교회 부교역자) 목사는 “현존하는 모든 치료를 다 받아봤지만 빠르기만 한 원기의 노화속도를 늦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2014년엔 수소문 끝에 미국 보스턴 조로증연구센터에서 임상실험용 약을 받아 복용해봤지만 헛수고였다. 홍 목사는 “그나마 효과를 봤던 ‘지방 줄기세포 치료’는 치료비만 수천만원이 들어 엄두를 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원기네 가족은 누구보다 활기차게 생활하는 원기의 모습에 행복하기만 하다. 어머니 이주은(37) 사모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체력이 훨씬 떨어지는데도 조퇴하거나 의무실에서 쉬려하지 않고 함께 농구·축구도 하며 어울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절로 웃음이 난다”며 아들을 바라봤다.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온 아들을 지켜봐 온 이 사모는 원기와 같은 환경의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는 애착인형을 제작·판매하고 있다. 인형 디자인도 원기가 직접 그린 그림을 토대로 만들어진다(mischu-mitchu.com).

홍 목사는 “국내엔 원기가 유일한 소아 조로증 환자이지만 아시아 지역엔 더 많은 환자들이 남 모르게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며 “같은 병을 앓는 아이들을 위한 구호단체를 만들어 치료정보를 공유하고 위로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콘서트엔 SBS오케스트라(단장 김정택), 소프라노 김희정, 여성 팝페라 앙상블 ‘벨라디바’, 크로스오버 앙상블 ‘인치엘로’가 무대에 올라 원기를 위한 희망의 선율을 펼쳐보였다. 무대에서 인사를 전한 서정오 동숭교회 담임목사는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릴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처럼 이 시대의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하다”며 “생명을 향한 더 많은 기적이 펼쳐질 수 있도록 온기를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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