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로 쓴 헌법, 노래처럼 부르니 입에 '착착'

조혜원 2016. 12. 1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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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의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

[오마이뉴스 글:조혜원, 편집:최은경]

방송인 김제동씨가 나온 어느 영상을 보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헌법 몇 조는 어쩌고, 또 몇 조 몇 조는 어쩌고.' 헌법 조항을 조목조목 들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너무나 쉽고 타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감탄과 감동이 밀려왔다. 말 잘하는 김제동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말을 위해 또 이 세상의 정의를 위해 끊임없이, 정성껏 공부하는 그이가 진심으로 존경스러웠다.

그동안 다른 영상들을 보면서 이미 충분히 김제동씨한테 감동받은 터였다. 사랑, 배려, 믿음, 정성, 지식, 유머가 맛깔나게 어우러져서 스스로도 웃고 듣는 사람들도 웃게 만드는 사람. 그러면서도 촌철살인으로 시대의 핵심을 시원하고 짜릿하게 콕 찌르는 사람, 김제동. 그 사람의 정성과 노력을 조금이나마 본받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일어났다. 그래서 헌법을 읽기 시작했다. 무척이나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이 남긴,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이오덕 우리말 바로 쓰기>(이오덕 씀, 고인돌, 2012) 책으로.

 김제동 씨 덕분에 헌법을 읽기 시작했다. 한자 가득한 헌법이 아닌,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이다. 우리말 살리기에 평생 힘쓰시다 지금은 하늘에 계신 이오덕 선생님이 남긴 책이다.
ⓒ 조혜원
"법은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법을 지키고, 법이 바로 서고, 사회가 밝아집니다. 쉬운 우리말로 누구든지 읽을 수 있게 모든 법률의 조문을 다시 써야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됩니다. 더구나 헌법은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 되는 틀을 짜놓은 법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습니까?"

책 머리말에 나오는 이오덕 선생님 말씀을 따라 읽자니, 마음이 몹시도 뜨거워지면서 하늘에 계신 선생님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헌법을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지난 시간들이 부끄러워졌다. 갑자기 선생님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을 하나하나 외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주 예전에, 이오덕 선생님이 쓴 <우리글 바로 쓰기> 책에 있는 글을 종이에 쓰고, 입으로 읊으면서 나쁜 머리로 어떡하든 외워 보려고 애썼던 그때처럼. 눈길 가는 대로 헌법 책 이곳저곳을 들춘다. 꼭 순서대로 볼 필요는 없을 테지? 그러다 헌법 제11조를 만났다.

나를 울린 헌법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 신분을 따라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사회의 특수 계급 제도는 인정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이 글을 눈으로 먼저 보고 입으로 읊는데, 그만 눈물이 나버렸다. 한 번도, 한 번도, 이 나라는 모든 국민이 평등해 본 적이 없는데. 그 평등함에서 밀려나 고통 받고 죽어간, 죽어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헌법 11조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이 글자들만 읽고 또 읽었다. 눈물이 잦아들자 문득, 이 내용을 기타 선율에 실어 보고픈 마음이 일었다. 딱딱한 헌법 글귀가 오늘만큼은 그 어느 노랫말보다 내겐 시리도록 아름답게 다가왔기에.

노래와 이어진 일이라면 마음이 동할 때 바로 실천하는 것이 내 장점이자 특기. 바로 해 봤다. 기타 반주에 맞춰 헌법 외우기, 아니 불러 보기. 이 헌법과 어울리는 노래로 '아침이슬'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헌법 책 앞에 두고, 기타를 치면서 헌법 11조를 읊었다. 몇 번 더 연습하고 싶기도 했으나 딱 한 번으로 마무리한다.

어수룩함 속에 헌법을 노래처럼 외우고 싶던 첫 마음이 오히려 더 잘 담기지 않을까 싶어서.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무척이나 좋아하는 노래, 아침이슬을 부를 때처럼 뜨거운 마음으로 헌법 11조를 외웠으니 아마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다(영상에 책이 거꾸로 찍혔다. 영상에서 책은 배경 노릇이고 입으로 읊은 소리와 기타 선율이 주인공이니 거꾸로 뒤집힌 책 모양을 그대로 두었다).

내친김에 헌법 10조도 외웠다. 우리말로 살려놓은 글이라 읽기에 어렵지 않고 외우기도 한결 쉽다. 이번에는 목소리로만 녹음했다. 마땅한 노래가 바로 떠오르지 않더라니. 음악이 없으니 살짝 밋밋하다. 그래도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는 소리 내서 읽어야 더 잘 외울 수 있고 재미도 있다. 물론 기타랑 함께 외울 때가 훨씬 신이 나지만. 자, 기타랑 섞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헌법을 찾아 다시 책 속으로.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사람으로서 존엄함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침범할 수 없는 기본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은 ‘유구한’을 ‘오랜’으로, ‘사회적 폐습’을 ‘사회의 나쁜 버릇’으로 바꾼 것처럼 쉬운 우리말로 헌법을 적어 놓아서 읽기도, 외우기도 한결 쉽다.
ⓒ 조혜원
촛불 들 때 꼭 알아 둘 헌법, "모든 국민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그렇지, 이거야!' 퍼뜩 눈에 들어오는 내용, '집회, 결사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 광장에서 언제까지 평화시위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 죄 없는 사람들 잡고 가두는 데 능통한 저들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 촛불을 들 때 꼭 알아 둘 헌법이다. 나부터 외워 본다. 기타랑 함께. 이번 노래는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로 마무리되는 '광야에서'로. 집회, 결사와 왠지 통하는 느낌이 팍팍 나니까.

(이오덕 선생님은 '집회, 결사'를 우리말로 살리고자 '모임, 단체 만들기'로 바꾸었지만 이것만은 원문 그대로 외웠다. 집회, 결사라는 말이 뼛속 깊이 박혀서 도저히 못 바꾸겠더라. 선생님도 이런 내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시겠지?)

<헌법 제21조>
1.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 언론, 출판의 자유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한 허가는 인정하지 아니한다.

<헌법 제12조>
1.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을 따르지 아니하고는 체포, 구속, 압수, 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법에 맞는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면 처벌, 보안 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2.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다음엔 뭘 외워 볼까?' 뷔페식당에서 여러 음식 가운데 먹고 싶은 것을 고르듯, 마음에 담고 싶은 헌법을 찾으려고 이쪽 저쪽 살핀다. '찾았다, '탄핵'이란 글자!' 내 마음이야 탄핵이 아닌, 끌어내리는 것을 바라고 있으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탄핵 조항도 알아 둬야 할 것 같다. 

찾았다, '탄핵'이란 글자!

사안이 중요한 만큼, 이 헌법도 기타 선율에 실어 보기로 했다. 뭔가 힘찬 기운을 느껴보고 싶다. 이 노래 저 노래 생각하다 '인터내셔날가' 당첨!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 노랫말이 팍팍 와 닿는 게 촛불 광장에서 부르면 딱 좋을 듯하다. 인터내셔날가를 기타로 치면서 헌법 65조를 읊는데 힘차고 벅찬 느낌이 밀려온다. 조금 긴 헌법도 잘 외워지는 걸 보니 역시 음악의 힘은 대단해! 

<헌법 제 65조>
1.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행정 각부의 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법관, 감사위원, 그밖에 법률이 정하는 공무원이 그 직무 집행 시에 헌법이나 법률을 어긴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2.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삼분의 일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 재적 의원 삼분의 이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3. 탄핵 소추의 의결을 받은 사람은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를 멈춘다.
4. 탄핵 결정은 공직에서 파면함에 그친다. 그러나, 이에 따라서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지는 아니한다.

탄핵 헌법까지 외웠으니 다음 순서는 자연스럽게 대통령 선거 조항. 이번엔 손으로만 써 본다. 굳이 기타 반주까지 얹고 싶지는 않다. 

<헌법 제68조>
1.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때에는 임기가 끝나기 70일에서 40일 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2. 대통령 자리가 비었을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죽거나 판결 그밖의 일로 그 자격을 잃었을 때는 60일 안에 후임자를 선거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헌법을 읊는다, 외친다!

기타랑 함께 헌법을 외우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다. 요 며칠 세상 돌아가는 꼴이, 대통령이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헌법 따위 쳐다보기도 싫게 만든다. 첫 마음이 자꾸 흐려지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헌법을 놓을 때가 아니지, 이오덕 선생님을 생각해서라도. 숨을 가다듬고 책을 다시 펼친다.

심드렁하게 몇 장 넘기다가 눈이 번쩍 뜨인다. '공무원의 불법 행위와 배상 행위'에 대한 헌법 29조다. 문득 페이스북 친구가 최근에 남긴 글이 생각났다. 촛불 시위로 국민들이 시간 쓰고 돈 쓰고 스트레스까지 받고 있는데, 이 과정을 전부 돈으로 환산해서 대통령한테 국민 보상청구를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래, 이거야! 대통령한테, 이 나라한테 국민들은 보상을 청구해야 해. 이것 또한 헌법이 보장한 국민들의 권리!'

이런 생각이 들면서 침울하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다. 흥분마저 된다. '이럴 때야말로 기타가 필요해!' 얼른 기타를 들고 헌법 29조를 읊는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치는 노래, '타는 목마름으로'가 이럴 때 딱 어울린다. 노랫말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기타를 치면서 헌법을 읊는다, 외친다!

<헌법 제29조>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손해를 받은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대로 국가 또는 사회 일반 단체에 정당한 갚음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공무원 자신의 책임은 면제되지 아니한다. 

"헌법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습니까?"

"헌법을 모두가 읽어서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의 틀을 어떻게 짜 놓았는가, 나라의 바탕을 어떻게 다져야 하겠는가를 생각하고, (…) 그리고 쉬운 말로 생각을 서로 주고받아서 모든 문제를 결정하고 풀어나간다면, 우리나라는 그제야 참된 민주 나라가 될 것이고, 통일도 저절로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말을 살리는데 달려 있고, 우리말을 살리는 일보다 더 크고 급한 일이 없습니다."(이오덕, 머리말에서)

책 머리말로 돌아가 본다. 다른 때 같으면 이오덕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에, "네, 맞아요, 꼭 그렇게 할게요." 하면서 진심어린 대답을 드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러지 못하겠다. 이오덕 선생님께 그 까닭을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당장은 우리말을 살리는 일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이 있어요. 헌법이 정한 대로 대통령이 물러나고, 정당하게 죗값을 치르는 일이요. 지금은 우리말이 살아나는 일보다 그 일이 더 크고 급해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을 볼 수 있었기에, 저부터 참된 민주 국가를 만들어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쉽게 읽을 수 있는 선생님 책이 아니었다면 제 아무리 김제동 씨한테 감동을 받았어도 아직 헌법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도 같아요. 그래서 우리말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일어났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요즘 대통령을 두고 '하야'라는 말이 정말 자주 나와요. 저요, 이 말 대신 '물러남' '내려옴' 같은 말을 쓰려고 무지 애썼어요. '하야하라'는 말이 입에 착착 붙어서 다른 사람들처럼 마구 쓰고 싶긴 한데도 꾹 참았답니다. 다 선생님 때문이고, 선생님 덕분이에요!

마지막으로, '헌법을 모르는 국민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하겠습니까?' 하셨던 선생님의 간절한 외침, 마음 깊이 새길게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야기할게요. 실은, 이 글도 그런 마음이 간절하게 들어서 쓰기 시작했답니다. 선생님께서 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라고, 남겨야 한다고 알려주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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