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색] 이력서에 사진 꼭 부착해야 하나

정지혜 2016. 12. 11.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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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확인 절차상 불가피" vs "외모차별 문제 개선 계기"/'채용절차 공정화' 법률 개정안 국회 환노위 통과
우리나라도 사진 없는 이력서를 내는 일이 자연스러워질까. 지난달 28일 ‘채용지원 시 사진 부착, 신체정보 요구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다수당인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라 본회의 통과 가능성도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채용과정에서 구직자들이 체감해 온 외모차별 등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채용 관련 부당 청탁·압력·강요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3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 구인자가 구직자에게 사진 부착을 포함해 용모, 키, 체중 및 출신지역 등 직무수행과 무관한 정보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올바른 조치” vs “법적 제한 지나쳐” 갑론을박

이 같은 개정안에 구직자 대부분은 환영한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한 기업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많은 구직자들은 개정안이 시행되면 “외모에 대한 차별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취업준비생 이모(25·여)씨는 “합격기준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 지원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올바른 조치라 생각한다”며 “떨어진 이유를 돌이켜보다 혹시 사진 문제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실제로 사진만 바꿨는데 서류합격이 됐다는 사례를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이모씨도 “직무와 무관한 개인정보는 면접 때 암묵적으로 영향을 주더라도 서류전형부터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흔히 서비스업에는 외모 정보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도 편견”이라고 밝혔다.

이와 달리 기업 측은 ‘사진의 경우 본인확인 절차상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경총은 해당 법안이 국회 환노위를 통과하자 “우리 기업의 채용 현실을 고려해 재고해 달라”는 내용의 자료를 냈다. 기업이 기초심사자료에 사진을 요구하는 것은 많은 인원이 동시 지원하는 공개채용 과정에서 신원을 정확히 확인해 대리시험을 방지하는 등 공정하고 투명한 채용절차와 관련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gettyimagesbank
경총은 “개정안이 최종 통과된다면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기업의 행정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고, 비용 증가로 인해 채용조건이 까다로워지거나 규모가 오히려 축소돼 청년 구직자의 지원 기회도 크게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학병원 인사담당자 이모(28)씨도 “이력서 사진은 기업이 부정응시를 막기 위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기본정보”라며 “현 채용 환경에서는 주민등록증을 위조하고 다른 사람이 와도 체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초 국민권익위에서 사진란을 없애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사진이 없으면 본인 확인이 힘들어진다는 판단에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씨는 또 “일부 사기업에서는 일반 사무직인데 서류전형에서 사진만 보고 떨어뜨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들었다”며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생각으로 사진이 좋으면 어쩔 수 없이 호감이 더 생긴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대기업 관계자는 “미국 등은 백그라운드 체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반면 우리는 아직 사진 대조 말고는 본인확인 과정 등이 미흡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합격 보장” 수만원대 ‘취업사진 패키지’도

본지가 구직자 928명, 인사담당자 366명을 대상으로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구직자 10명 중 7명이 ‘채용 과정에서 외모 차별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사진이나 신체정보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답변이 35.6%에 달했고, 신체정보를 요구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구직자도 67.8%나 됐다. 채용 공정화법 개정안이 ‘바람직하다’는 답변은 구직자는 51.4%인 반면 인사담당자는 절반 수준인 25.4%에 그쳤다. 법안이 시행되면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54.9%)이라는 기업 측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외모 중시 풍토가 존재하는 한 법안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도 많았다. 구직자 25.6%, 인사담당자 28.1%가 ‘어차피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구직자 이모씨는 “면접을 거치며 지원자 신체정보는 자동적으로 수집되는데 면접관들이 이를 주요 판단잣대로 여기는 한 법이 있다고 이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의 채용 현실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는 게 구직자들과 인사담당자 공통의 생각이다. 이를 반영하듯 “합격을 위한 필수코스”라며 취업에 유리한 이미지메이킹과 화장을 포함해 근사한 취업용 사진을 제작하는 수만원대의 ‘취업패키지’도 등장했다. 포털사이트에 취업사진을 검색하면 평균 6만∼7만원대에 이들 취업패키지 상품이 추천되며, 취업사진만 연구해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전용 스튜디오들도 생겨났다.

구직자 입장에서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가격에도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취업사진 스튜디오는 늘 예약이 가득 찬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이모씨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취업용 사진 촬영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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