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잠금해제] 쇼윈도 정치 / 박정훈

2016. 12. 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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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탄 국민이 가라앉을 때, 박근혜는 머리카락을 올리고 있었다.

재벌들이 만든 쇼윈도에 재벌들이 전시한 정치상품을 고르는 소비자를 주권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국민이 정치시장의 창업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일상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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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박정훈
알바노조 위원장

세월호에 탄 국민이 가라앉을 때, 박근혜는 머리카락을 올리고 있었다. 오후 중앙대책본부로 자리를 옮길 때는 애써 만든 머리를 헝클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어떻게 연출할지가 정치의 과제다. 청문회에는 이번 사태의 ‘몸통’ 이재용이 나와 어리바리한 모습을 연출했다. 스타가 되기 위해 고함과 호통을 치는 국회의원도 등장했다. 우리는 여기서 쾌감을 얻었지만, 재벌들은 한 번의 송구스러움으로 사면을 얻었다. 박근혜와 달리 이재용은 탄핵할 방법조차 없지만 우리는 그를 어리숙하다 생각한다.

재벌들이 만든 쇼윈도에 재벌들이 전시한 정치상품을 고르는 소비자를 주권자라 부르기는 어렵다. 소비자에게는 구매의 순간에만 권력이 주어진다. 선거에서의 투표만이 우리가 쥔 현찰이다. 불량상품에 대한 환불과 교환은 투표날 한 장의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4년에서 5년마다 돌아오는 구매 날을 기다리거나, 권력자들이 아무런 위협을 느끼지 않는 집회를 개최하거나, 아니면 수십 년에 한 번씩 오는 사상 초유의 촛불집회라는 예외적인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을 거꾸러트린 이 순간에도 헌법재판소의 절차를 기다려야 한다.

애초 법치를 통해 지배자를 견제하려고 했지만, 법치가 통치의 수단이 됐다. 법조문과 절차가 길고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사람, 긴 절차를 기다릴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 법을 만드는 입법자들을 소유한 사람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우리가 기존에 전시된 정치인들 중에서 차악을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겐 직접 정치를 할 시간도 경제적 여유도 없으니 권력을 맡길 뿐이다. 국민이 정치시장의 창업자가 될 수 없는 이유, ‘일상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이 무서운 이유다. 지배자들도 우리도 안다. 주말을 반납하고 야근과 특근을 밥 먹듯이 하고 나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마트에서 낑낑대며 장을 보고 나서, 기말고사와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 24시간 장사를 하면서 40일 넘게 촛불을 든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일상으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는 ‘일상을 바꾸자’로 전환돼야 한다. 만약 하루 6시간 주5일 노동을 해도 충분한 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떨까?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을 하는 나라라면, 야간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아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나라라면, 양육과 가사노동을 평등하게 사회와 가족이 나눌 수 있는 나라라면, 모든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있고 잘못된 국정운영에 정치파업을 하는 것이 상식이 되는 나라라면, 우리는 이 나라를 지배하는 주권자다.

행복해지길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지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재벌들은 우리가 죽도록 일해서 만든 돈을 정치인들에게 쥐여주고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 답이 있다. 국민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제대로 권력을 행사하려면, 재벌들에게 빼앗긴 시간과 부를 되찾아와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1만원, 기본소득, 그리고 노동조합과 각종 결사조직들이 바로 재벌이 만든 쇼윈도를 깨버릴 수 있는 망치다.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했다면 이제 촛불을 계속 들 수 있는 일상을 만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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