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셰익스피어도 무대를 위한 극본 썼을 것"

조기원 2016. 12. 1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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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불참하고 한림원에 편지 보내
노벨상 가능성? "달에 서 있는 것과 같아"
"내 노래 문학이냐는 질문 한 적 없다"

[한겨레]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밥 딜런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편지를 보냈다. 딜런은 편지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달에 서 있다는 것”과 같은 정도의 이야기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아지타 라지 스웨덴 주재 미국 대사는 10일(현지시각)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딜런의 연설문을 대독했다. 딜런은 지난달 13일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지난달 28일에야 수상 수락 의사를 밝혔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에도 “선약이 있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딜런은 자신이 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불거진 ‘노래는 문학이 아니다”라는 논란에 관련해,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들며 우회적으로 ‘어디까지 문학인가’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딜런은 “셰익스피어는 자신을 극작가로 생각했지 문학 작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햄릿>을 썼을 때도 ‘역에 맞는 배우는 누구지?’라는 일상적 고민을 했을 것”이라고 했다. 딜런은 자신도 “내 노래들이 문학일까?”라는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고 궁극적으로 멋진 답을 준 스웨덴 한림원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아래는 딜런이 스웨덴 한림원에 보낸 편지 전문.

밥 딜런이 스웨덴 한림원에 보낸 편지 전문안녕하세요. 여러분. 저의 가장 따뜻한 인사를 스웨덴 한림원 회원들과 오늘밤 참석해주신 기품있는 참석자들에게 보냅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과 함께 있지 못해 유감입니다. 하지만, 제가 정신적으로는 여러분과 분명히 함께 있으며 이런 권위 있는 상을 받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노벨문학상 수상은 제가 전혀 상상해본 적이 없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디어드 키플링, 버나드 쇼, 토마스 만, 펄 벅, 알베르 카뮈 같은 빼어난 가치가 있는 이들의 작품을 흡수하고 읽는 것에 친숙했습니다. 세계 곳곳 도서관에 소장되고 학교에서 가르치며 존경어린 어조로 말해지는 작품을 쓴 문학의 거장들에 언제나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런 이름들과 함께 같은 명단에 오른다는 것은 진정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들이 노벨상 (수상)에 대해서 생각해봤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책과 시 그리고 극본을 쓰는 세계 누구라도 안쪽 깊숙한 곳에서 비밀스러운 꿈을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도 너무 깊이 묻어뒀기 때문에 거기 있는지를 자신들도 모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노벨상을 받을 아주 적은 기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면, 달에 서 있다고 하는 이야기와 똑같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내가 태어나고 그리고 몇 년 뒤까지는, 세상 누구도 이 노벨상을 받을 만큼 훌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매우 드문 대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이 놀라운 뉴스를 들었을 때 저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 정확히 의미를 깨닫는데 몇 분 이상 걸렸습니다. 위대한 문학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가 자신을 극작가로 생각했다고 봅니다. 문학 작품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무대를 위한 말을 썼습니다.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해지기 위해서 (대본을) 썼다는 뜻입니다. 그가 <햄릿>을 썼을 때, 저는 그가 여러 다른 생각을 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 역에 맞는 배우는 누구지?” “어떻게 무대에 올리지?” “이 작품 (배경을) 덴마크로 설정하는 게 맞나?” 그의 창조적 비전과 야망은 그의 마음 전면에 있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루고 고려해야 할 일상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자금 조달이 제대로 될까?” “후원자들을 위한 좋은 자리가 충분할까?” “해골을 어디에 가져다 놓아야 할까?” 저는 셰익스피어의 마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질문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문학인가?”

저는 10대 때부터 곡을 쓰기 시작했고 제 능력으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기 시작한 이후에도, 노래들에 대한 제 열망은 그 정도 거리까지만 그쳤습니다. 커피숍이나 바, 나중에는 카네기홀이나 런던 팰라디움 (극장)에서 제 노래가 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정말 크게 꿈을 꾼 게 있다면, 노래를 녹음해서 제 노래를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기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녹음을 해서 라디오에서 자기 노래가 나온다는 뜻은 많은 청중이 있다는 뜻이고 시작하고자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저는 제가 하고자 한 일을 지금까지 오랫동안 계속해왔습니다. 수십여번 녹음을 했고 전 세계에서 수천번의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모든 일의 필수적 중심에는 제 노래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다른 문화에 속한 많은 사람의 인생에서 제 노래들은 공간을 찾아낸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를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말해야만 하는 게 한 가지 있습니다. 5만명 앞에서 그리고 50명 앞에서 공연해본 공연자로서 전 50명 앞에서 공연하는 게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만명은 한가지 페르소나이지만 50명과 함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각자 모두 개인이고 다른 정체성과 세계가 있습니다. 더 명확히 사물을 인식합니다. 정직함과 그것이 재능의 깊이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시험 됩니다. 노벨 위원회 (위원이) 소수라는 사실이 제게는 효과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처럼, 저는 자주 창조를 위한 노력에 대한 추구와 일상의 문제들의 모든 측면을 다루는 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 노래들에 적합한 최상의 음악가는 누구지?” “맞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있는 걸까?” “이 노래 조성이 맞나?” 어떤 것(고민)들은 4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도 저 자신에게 “내 노래가 문학일까?”라고 질문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스웨덴 한림원에 바로 그 질문(자신의 노래가 문학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이런 멋진 답을 주었다는 점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럼 모두 안녕히 계세요, 밥 딜런.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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