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세상]촛불혁명과 '국정 안정'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입력 2016. 12. 11. 14:35 수정 2016. 12. 1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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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우리는 지금 세계사의 한 장을 쓰고 있다. 촛불혁명이다. 2016년 10월 29일 첫 촛불부터 12월 3일 제6차 촛불집회까지 연인원 650만명이 ‘민주공화국’의 깊어가는 밤을 여울여울 밝혔다. 그 결과다. 민중이 만들어 준 ‘여소야대 국회’는 12월9일 대통령 박근혜를 탄핵했다.

10일 서울 청운.효자동사무소 앞에 모인 제 7차 촛불 문화제 참가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며 하늘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다. / 이준헌 기자 ifwedont@

촛불의 열기는 ‘조중동’으로 비판 받아온 미디어들까지 움직였다. 더러는 현직 주필이 망신을 당하고 쫓겨난 분풀이로 보지만, 조선일보조차 촛불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박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음은 물론, 촛불 직전까지 권력 감시를 모르쇠 해온 언론들의 ‘변신’을 평가하는데 굳이 인색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 탄핵 직후, 저들의 ‘발톱’이 드러나고 있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탄핵 바로 다음날 사설에서 한 목소리로 ‘국정 안정’을 들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탄핵이 혼란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끝이 돼야만 하는 것은 ‘자명’하다며 야당 대선후보들을 콕콕 집어 무책임하다고 비난했다. 근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경제·안보 위기”다. 또 다른 사설에선 야당이 국정 수습 방안을 놓고 “계속 입장을 바꾸며 오히려 혼란을 키워왔다”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이제 정국 수습이 중요하다”며 헌법과 법률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무리한 정치적 주장은 국정 안정을 해치는 발상이란다. 심지어 박근혜 하야 요구는 대선 날짜를 하루라도 빨리 당겨 자신이 유리한 고지에서 선거를 치르겠다는 계산이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 사설도 “이제는 국정의 안정이 우선”이라고 못박았다. “대권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믿는 야당의 대선 주자들이 지금까지 집행돼 온 정당한 정부의 정책을 뒤집거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번복 등 안보와 체제를 뒤흔드는 주장을 밀어붙인다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신문들의 논조는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박근혜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황교안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박근혜는 탄핵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경제 운용과 안보를 비롯한 ‘국정 공백의 최소화’를 지시했다. 한 언론은 이를 “주요 국정과제 추진에 차질을 빚게 된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고 스스로 안타까워했다. 권한대행 황교안도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가신인도 유지와 국정의 안정을 다짐했다. 심지어 “국정 운영에 한치의 흔들림도 없도록”하겠다는 결기도 보였다.

어떤가. 박근혜와 황교안, 시장독과점 언론사들의 일치된 언행은 촛불이 방심할 수 없는 이유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박근혜도, 황교안도 성찰이 전혀 없다. 불통의 대명사 박근혜는 접어두자. 적어도 황교안은 박근혜의 총애를 받아온 만큼 탄핵 앞에 뼈저린 사과부터 해야 옳았다. 하지만 대국민담화에서 그의 유감은 요식행위로 지나갔다. ‘국정 안정’에 맞장구를 친 조선·중앙·동아일보 또한 성찰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과 세 신문에 묻는다. 대체 당신들이 부르대는 ‘국정 안정’은 어떤 ‘국정’인가? 재벌의 숙원인 ‘일반해고’ 따위를 지침으로 내려 보내고 수백억원의 검은 돈을 챙겨온 국정인가. 역대 최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민생경제를 망가트린 국정인가. 언론자유 지수와 노동권리 지수를 끝없이 추락시킨 국정인가. ‘통일 대박’을 부르대다가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며 남북관계를 파탄 낸 국정인가.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이라는 반민주적 범죄를 은폐해온 국정인가. 민생은 엉망인데 해외순방을 즐기며 퇴임 뒤 군림할 재단 만들기에 나선 국정인가.

명토박아 둔다. 그 따위 국정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도록 하겠다는 황교안의 결기와 세 신문의 국정안정론은 촛불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민생경제와 안보를 내세운 기득권 지키기에 더는 기만당할 촛불이 아니다. 미사여구는 이미 박근혜로부터, 아니 최순실로부터 숱하게 들어왔다.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 최순실의 미사여구를 바로 세 신문과 방송사들로부터 귀 따갑도록 들어오지 않았던가.

손석춘 건국대 교수

정계와 언론계의 부라퀴들조차 지금은 언죽번죽 ‘혁명’이라 부르는 민중의 촛불혁명은 새로운 국정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거꾸로 만일 저들의 주장처럼 ‘국정 안정’을 이룰 때 촛불혁명은 1960년 사월이 그랬듯이, 1980년 오월이 그랬듯이, 1987년 유월이 그랬듯이 ‘미완의 혁명’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더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촛불의 뜻도 결연하다. 탄핵 뒤에도 100만이 넘는 촛불이 한겨울 밤을 밝혔다. 촛불이 숙지근해지길 바라며 마치 자신들만 국정을 걱정하는 듯이 우쭐대는 정계·언론계·학계의 윤똑똑이들에게 충정으로 권한다. 잇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국정안정론은 그만 접어라. 참으로 국정안정을 바란다면, 민생과 안보 위기를 하루라도 빨리 넘어서야 한다면, 박근혜 퇴진 여론에 동참하라. 최소한 헌법재판소가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라고 촉구하라. 우리는 지금 세계사의 한 장을 쓰고 있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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