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문화뉴스 톱5 ①공연] 청탁금지법 '혹한' 견디며 '광장 언어' 담다

박정환 기자 2016. 12. 11.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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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검열언어의 정치학' 공연장면 (사진=드림시어터테제21)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2016년 공연계는 지난해보다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최대의 수확을 거뒀다는 평가다. 올해 공연계 동향을 요약하면 이렇게 된다.

'기업들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을 염려해 지갑을 닫아버렸고, 국가 예산은 정부와 정치 성향이 같은 일부 '화이트리스트'에게만 국한된다는 풍문이 무성했다. 공연계는 이에 맞서며 자구책을 마련했다.'

우선 클래식계는 '청탁방지법' 여파로 공연 제작·홍보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전 좌석 3만원인 일명 '김영란 티켓' 등으로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했다. 28년 만에 서울에 세워진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롯데콘서트홀'은 시름에 빠진 클래식계에 큰 위로가 됐다.

또 연극계는 '정치검열'에 맞서 21개 극단이 합심해 대규모 프로젝트 '권리장정 2016 검열각하' 대장정을 완주했다. 뮤지컬계에선 '마타하리' '도리안그레이' 등 대형 창작뮤지컬을 꾸준히 발표했다.

올해 공연계는 '극장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하게 묻고 답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대답은 '지금, 바로, 여기가 극장'이었다. 뮤지컬 배우들은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팀을 꾸려 광화문 광장에서 자발적으로 노래했으며, 기존의 극장에서는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광장의 언어'를 가져온 수작들을 배출해냈다.

'검열언어의 정치학', '괴벨스 극장', '씨씨아이지케이'(CCIG-K), '이반검열', '썬샤인의 전사들', '파란나라' 등은 정치적 사건에 함몰되지 않고 예술적 성취를 이뤄냈다.

한편,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국공립단체를 중심으로 기념 공연이 풍성했으나 '속 빈 강정'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셰익스피어 열풍 속에서도 막상 손꼽을만한 작품이 없어서 국공립단체 기획공연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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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파란나라' 공연장면 © News1

1. 시대에 맞는 예술을 찾아서...'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프로젝트 등

공연계가 우리 시대에 맞는 예술 형식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이하 '권리장전')는 여러 극단이 '검열'을 소재로 한 연극을 매주 1편씩 총 22편을 지난 6월9일부터 10월30일까지 서울 대학로 연우소극장 무대에 올린 프로젝트다.

권리장전은 한국 연극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사건이다. 규모나 내용 면에서 해방 이후 공연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21개 극단이 제작한 연극 22편에 공연자 332명이 참여했으며 관객 6671명이 관람했다. 또한, 110회차 공연 중 40회차가 매진됐기도 했다.

22편 중에는 올해를 대표하는 화제작들을 다수 배출했다. 국정감사 속기록을 바탕으로 한 '검열언어의 정치학', 독일 나치 정권에서 선전장관을 지낸 괴벨스의 삶을 다룬 '괴벨스 극장', 해방 이후 미 군정에서 민간인 우편물을 검열한 상황을 다룬 '씨씨아이쥐케이'(CCIG-K), 성소수자 청소년 문제를 다룬 '이반검열' 등이 그것이다.

올해 공연계는 '권리장전' 프로젝트의 화제작을 비롯해 세월호 참사를 간접적으로 다룬 '썬샤인의 전사들'과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고등학교 특별활동 수업으로 풀어낸 '파란나라' 등 꼼꼼하 사전 취재를 바탕으로 하는 '버바팀'(Verbatim) 연극에 가깝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버바팀 연극은 2000년대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사회·정치 이슈를 신속하게 다루면서 주목을 받은 연극 사조다. 실제 사건의 영상물, 신문기사, 판결문 등 기록물을 취재해 출연배우가 실제 발언을 무대에서 재연하는 형식을 취한다.

공연계는 지난해까지 '세월호 참사',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정치검열' 등을 차례로 겪으면서도 시국선언이나 1인 시위 등의 공연 외적인 방식으로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소재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은 피상적 인식 수준에 머물러야 했으며 이마저도 국가기관의 지원을 받는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권리장전 2016 검열각하' 걸개 포스터 © News1

2.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국정농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

비록 실체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른바 '블랙리스트' 논란이 올 한해 내내 공연계를 달궜다. 지난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특정 정치인을 공개 지지한 예술인들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예술인들을 취합해놓았다는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됐다. 정부는 "사실이 아니다"며 즉각 부인했지만,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잇달아 나왔다.

문화예술인들은 시국선언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를 지난 11월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최했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예술검열, 블랙리스트, 문화행정 파괴의 실체는 박근혜 대통령"이라며 朴대통령 퇴진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특히, 해방 이후 사회문제에 침묵했던 클래식 음악인들조차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2014년에 시작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과 이후에 지금까지 벌어진 수많은 예술검열 사례들 그리고 최순실, 차은택의 사적인 인맥으로 분탕질 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치욕적인 인사 조치와 주요 문화정책사업의 예산 몰아주기는 매우 체계적으로 진행됐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이들은 朴대통령 퇴진할 때까지 이순신 동상 밑에서 노숙하겠다며 1인 텐트를 설치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제지하는 경찰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고, 텐트 15동을 모두 압수당했다. 이들은 대리석 바닥에 박스를 깔고 침낭을 덮고 버텼다. 다음날인 5일 제2차 촛불집회부터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가세해 '광화문 캠핑촌'이 탄생해 지금까지 노숙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신진 연극인들의 모임 대학로X포럼에 따르면 문화연대·서울연극협회·예술인소셜유니온·한국독립영화협회·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등 문화예술단체는 오는 12일 직권남용 및 업무방해죄 혐의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국정농단 부역자 총 6명을 특검에 고발할 예정이다.

문화예술인들이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날 문화예술인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철저한 수사와 차은택,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의 구속수사 집행, 예술계를 검열하는 블랙리스트를 만든 책임자들을 처벌하라고 주장했다. 2016.11.4/뉴스1 © News1 최현규 기자

3. 이럴려고 만든 법이 아닌데…'청탁금지법' 여파

'다 죽는다'는 곡소리가 지난 9월 공연계에서 넘쳐났다. 청탁금지법이 지난 9월28일 시행되자 공연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선물로 제공하는 티켓 값이 5만원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공연계는 제작 현실을 무시한 법안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공연 홍보와 기업협찬 부분 양 부분에 모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클래식은 연극, 무용 등 타 장르보다도 타격이 컸다. 클래식 관계자들은 청탁방지법이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에 닥친 최대 위기라고도 했다.

클래식 업계는 청탁방지법을 대응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티켓 가격을 5만원 밑으로 낮춘 일명 '김영란 티켓'을 마련하거나 초대권 배포 방식을 바꾸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클래식 공연장 및 공연기획사 등 업계 종사자들은 "이런 대응이 임시방편일 뿐이며, 내년부터 클래식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공연계에 따르면 클래식 공연은 제작비에서 기업 협찬·후원의 비율이 50%를 넘길 만큼 절대적이다. 기업협찬이 끊기면 클래식 공연의 제작 구조가 바뀌어야 생존할 수 있다. 세계적 수준의 오케스트라 공연이나 소규모 독주회가 기업협찬을 구하지 못해 기획 단계부터 추진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여론을 반영해 청탁금지법의 제한 내용이 상당 부분 개선되는 움직임도 나온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시행 한 달이 지난 10월28일부터 지금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관계부처 합동 '청탁금지법 해석지원 태크스포스'(TF)를 개최해 국정감사 등에서 지적받은 사항을 개선해왔다.

권익위에 따르면 Δ취재기자의 프레스티켓 Δ기업이 사회적 공헌 등의 목적에 따른 특정 직종 종사자 전체에 대한 기업 상품 할인 혜택 Δ언론사와 업체가 공연을 공동주최하면서 해당 공연 티켓을 판매하는 행위 등을 청탁방지법 예외사항으로 허용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6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카톨릭 청년회관에서 창비 책읽는당, 라디오책다방 주최로 열린 저자와의 대담에서 최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16.10.6/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4. 28년만에 서울에 세워진 클래식 전용 공연장…롯데콘서트홀 개관

롯데콘서트홀이 지난 8월19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롯데월드몰 8~10층에 정식 개관했다. 국내 최초로 '빈야드' 구조로 설계된 롯데콘서트홀은 28년만에 서울에 들어선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빈야드 구조는 공연장 2층 발코니의 돌출을 최소화해 객석 배치를 포도밭처럼 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홀이 1963년 빈야드 구조로 설계되면서 이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일본 산토리홀 등 대표적 공연장에 채택됐다.

클래식 전문가들은 부채꼴과 직사각형 구조의 국내 공연장에 익숙했다가 포도밭 구조인 롯데콘서트홀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클래식 전문가들은 기존 공연장과 다르게 퍼지는 롯데콘서트홀의 소리를 놓고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천장에서 '소리 공'이 떨어진다" "평소에 들리지 않던 소리가 객석까지 들린다" "바이올린 등 현악기 소리가 뭉개진다" "고음과 중저음이 따로 들린다" "소리가 나를 뚫고 지나간다" 등이다.

클래식 공연장의 음향 수준은 '잔향'(殘響) 처리와 방음 시설로 성패가 갈린다. 잔향 처리는 반사판 등으로 목욕탕 메아리처럼 소리를 오래 남기는 것을 뜻하며, 방음 시설은 조명 기기나 환기 장치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등을 최대한 억제하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롯데콘서트홀은 잔향을 위해 다양한 재질을 반사판으로 사용했다. 또한, '에어 체임버' 구조로 환기 시스템을 설계하는 등 공연장 내부 구조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분리하는 '박스인 박스'를 도입했다. '에어 체임버'는 공연장 바닥에 전체 면적과 동일한 공간을 높이 1~3m로 설계해 환풍기나 난방 소음을 없앤 환기 시스템이다. 일정 온도로 맞춰진 신선한 공기가 '에어 체임버'를 거쳐 극장으로 들어온다.

4958개의 파이프로 구성된 대규모 파이프오르간도 눈길을 끈다. 디자인 개발부터 설치까지 2년 이상 소요됐다. 국내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다목적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설치돼 있다. 대규모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2000석 이상) 사상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롯데월드타워 건설 근로자들과 가족들을 위한 '작은 영웅들의 땀과 열정에 보내는 음악회'가 열렸다. 현재까지 롯데월드타워 공사에 참여한 인원은 연인원 기준으로 500만명이 넘었으며, 2017년 초 완공을 앞두고 지금도 하루 평균 3500여 명에 달하는 건설 근로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롯데물산 제공) 2016.9.22/뉴스1 © News1 추연화 기자

5. 풍요 속 빈곤…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기념공연 홍수

올 한 해 공연계는 셰익스피어로 시작해 셰익스피어로 끝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 서거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매달 그의 작품이 쉴 새 없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뿐만이 아니라 오페라·무용·뮤지컬·창극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돼 극장을 채웠다.

왜 셰익스피어일까. 단순히 '00'으로 떨어지는 '서거 400주기' 때문이라면 명분이 빈약하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영원한 현재적 작가'라고 평가했다. 현대 공연 양식에서 예측가능한 모든 요소들을 셰익스피어가 400여 전에 이미 실현했다는 것이다.

연극에선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이 포문을 열었다. 지난 1월에는 '겨울 이야기'(연출 로버트 알폴디)를, 4월에는 중국국가화극원의 '리처드 3세'(연출 왕시아오잉) 내한공연을, 12월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실수연발'(공동연출 서충식·남긍호)이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서울시극단도 '템페스트', '헨리4세', '함익' 등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중심으로 올해 정기 공연 라인업을 꾸렸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연극뿐만 아니라 오페라·무용·뮤지컬·창극 등 다른 장르도 풍성하게 무대에 올라왔다. 예를 들어, 비극적 사랑을 담은 '로미오와 줄리엣'은 국립오페라단(예술감독 김학민)에서 프랑스 오페라로, 유니버셜발레단(예술감독 문훈숙)이 케네스 맥밀란 안무의 발레로, '김수로 프로젝트'가 시공간을 핵전쟁 이후로 옮긴 뮤지컬등으로 변주됐다.

공연계에선 그러나 셰익스피어 열풍 속에서 막상 손꼽을만한 작품이 없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공연 평론가 A씨는 "주요 국공립단체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앞다투며 올렸지만 관객에게 감동을 줄 만한 공연은 드물었다"며 "예술성을 운운하면서도 우리시대 상황을 외면한 기획공연들의 한계"라고 꼬집었다. 다른 평론가 B씨는 "서울시극단이 햄릿을 한국사회 속에서 재해석한 '함익' 정도가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고 덧붙였다.

셰익스피어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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