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은 결혼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 모두 이룬 여성"
정옥자 명예교수 '사임당전'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손가락 밑에서 표현된 것으로도 오히려 능히 혼연히 자연을 이루어 사람의 힘을 빌려 된 것이 아닌 듯하다."
노론의 영수로 유교적 가치를 강조한 우암 송시열이 신사임당이 그렸다는 난초 그림을 감상하고 남긴 평이다. 그는 화폭 속의 난초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인간의 작품으로 보기 어렵다고 극찬했다.
그런데 송시열은 흔히 사임당을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이미지로 고착화한 인물로 일컬어진다. 그가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은 은폐하고 현숙한 부인,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로서의 면모만 부각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사임당을 바라보는 시각과 연관돼 있다. 남녀 불평등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여성이 과연 현모양처의 역할과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동시에 이루는 것이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조선시대 문화사의 권위자인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는 신간 '사임당전'에서 조선을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로 보는 인식과 이분법적 사고 때문에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가 온당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사임당은 1504년 강릉에서 신명화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당시는 훈구파와 사림파가 극렬하게 대립하던 시기였는데, 사림파였던 신명화는 유교 경전을 가르칠 정도로 사임당을 아꼈다.
열여덟 살에 이원수와 결혼한 사임당은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생활했으나, 주로 강릉에 있는 친정에 머물렀다. 이원수는 양반이었으나, 말년에야 겨우 '수운판관'이라는 말단 관직을 얻은 한량이었다. 사임당은 남편이 벼슬에 오른 이듬해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 명예교수는 사임당의 아들인 이이가 남긴 '선비행장'을 비롯해 다양한 문헌을 통해 사임당의 생애를 복원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임당에 얽힌 각종 오해를 분석해 바로잡는다.
먼저 송시열과 노론이 사임당을 현모양처로만 조명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노론은 서인(西人)의 분파로, 서인의 사상적 토대를 쌓은 인물이 바로 이이다. 율곡학파를 모집단으로 한 정치 집단이 사임당을 존경하고 사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정 명예교수는 사임당이 1522년부터 약 20년간 친정살이를 한 이유가 육아 부담에서 벗어나 예술혼을 불태우기 위해서였다는 의견도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사임당은 남편이 돈을 벌지 못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다 보니 강릉에서 거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정 명예교수는 이원수가 성격이 호탕했기 때문에 아내의 섬세한 감성과 예술 활동, 오랜 친정살이를 포용했다는 데는 동의한다. 이이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뜻이 크고 기개가 높았지만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신사임당의 삶을 살펴본 저자는 그녀가 남긴 예술 작품의 의의도 설명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임당의 글씨와 그림은 모두 그녀가 그렸다고 전하는 작품으로 작자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정 명예교수는 그중 사임당이 그렸을 가능성이 큰 작품들을 소개한 뒤 그녀가 자수를 놓기 위한 밑그림으로 초충도나 화초도를 완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어 신사임당보다 200여년 늦게 출생한 문인 화가인 심사정(1707∼1769)의 화초도와 비교했을 때 사임당의 그림이 훨씬 생동감 있고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색감, 구도, 묘사 기법 등이 독창적이어서 조선 후기 그림의 전범이 됐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사임당이 고단한 생을 살았지만 타고난 천재성과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예술가로서 대성했다고 평한다. 그는 "사임당은 결혼생활의 성공과 자아실현을 모두 이룬 여성"이라며 "여권이 신장한 오늘날에도 어려운 일을 전통적인 유교 사회에서 이뤄냈다"고 말한다.
민음사. 420쪽. 2만2천원.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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