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밖 청년들 '시국선언기'.."이런 망신 처음"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입력 2016. 12. 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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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촉구하는 7차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폭죽을 터트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광장에 불어닥친 영하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도 촛불의 열기를 식힐 수는 없었다. 대통령 박근혜 탄핵소추안의 국회 가결 이후 첫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저녁, 서울 광화문 일대에만 80만 명, 전국 104만여 명의 시민들이 운집해 한목소리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치며 체제 변혁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이어갔다.

이날 저녁 본행사가 시작된 광화문광장에서는 싱가포르 한인 유학생 시국선언단 대표로 4명의 청년이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번갈아 가며 나라 밖에서 벌이고 있는 시국선언 경과를 시민들에게 전했다.

먼저 자신을 강원도 춘천 출신이라고 밝힌 한 청년은 "저는 10년 전 누나와 함께 유학을 떠나 지금까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외국 생활을 해 왔습니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오래 전부터 싱가포르에서는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매우 좋았습니다. 많은 친구들이 항상 한국에 대해 궁금해 했고 감탄했습니다. 저는 한국인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요즘 외국 생활을 하면서 이처럼 부끄러운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제 외국 친구들은 저에게 '청와대가 서울에서 가장 이용자 평점이 좋은 호텔이라고, 각종 마약성 약품과 미용 관련 서비스가 무료라고 하던데 사실이냐'고 하면서 저를 조롱하기에 바쁩니다.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제가 공자의 논어를 읽고 있으면 저에게 다가와 '한국에서는 주술을 배워야 출세하지 않느냐'면서 놀리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이렇게 망신 당하기는 처음입니다."

청년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학업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저희는 시국선언단 모집에 나섰습니다"라고 전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시국선언을 포함한 모든 정치적 활동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습니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 싱가포르 국립대 등 여러 대학에서 15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였고, 총 48명의 학생들이 지난 11월 13일 시국선언에 참여했습니다."

마이크를 이어받은 두 번째 청년은 "정치적 압박이 심한 싱가포르에서도 저희의 울부짖음은 이렇게 컸습니다"라고 역설했다.

"이것은 우리 모두 하나가 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 싶은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방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남녀노소 상관 없이 이념 차이를 극복하고 장소를 막론하며 힘을 모아 탄핵안 가결이라는 역사의 숙원을 이뤄냈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던 우리 모두의 노고에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 줍시다."

그는 "그러나 우리의 행진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 촛불은 지금 꺼져서는 안 됩니다"라고 호소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뤄낸 모든 것은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대통령 한 명을 직무정지시킨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뿌리깊이 박혀 있던 부패한 역사를 청산해야 합니다. 먼저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박근혜 탄핵 예정자에게 우리 목소리를 한데 모아 국민의 뜻은 아직도 변함없이 즉각 퇴진임을 밝혀야 합니다."

이 청년은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안이 전달됐지만 박근혜 탄핵 예정자는 아직 하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야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라며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 당시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낱낱이 국민 앞에 밝히고 직무유기 책임을 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꼬집었다.

◇ "불 꺼져도 펄펄 끓는 뚝배기처럼 우리의 촛불은 아직 꺼질 수 없어"

주최 측이 규정한 자유발언 제한시간 3분이 훌쩍 넘었음에도 광장의 시민들은 나라 밖에서 어렵게 촛불을 든 청년들의 발언을 끊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그들의 말에 귀기울였다.

세 번째로 발언을 이어간 청년은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곁에서 온갖 권력 남용을 행사해 온 김기춘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최순실 전 비선실세 등 부당한 권력을 남용해온 모든 이에게 엄격한 법의 심판을 내려야 합니다"라며 "이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리기에는 아직 이릅니다"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이들의 국정농권을 방치한다면 역사의 비극은 우리의 후손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 기회를 교훈 삼아서 우리 국민 역시 정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정치 참여는 국가의 주권을 갖고 있는 국민으로서 우리의 기본권이 돼야 합니다. 생활적 여유를 갖고 정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더 늘려야 할 것이며, 우리 모두 깨어 있는 국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정치 의식이 성숙할수록 그에 걸맞은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다고 저희는 굳게 믿습니다."

특히 그는 "흔히 우리 국민들을 개돼지라 부르고 냄비 근성이라는 표현으로 대한민국 국민을 폄하하는 일부 정치 세력이 있습니다"라며 "저는 우리 국민은 냄비의 민족이 아닌 '뚝배기의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역설했다.

"냄비는 쉽게 끓고 불이 꺼지면 빠르게 식지만, 뚝배기는 서서히 달궈지고 열기는 오래 갑니다. 어제 탄핵안 가결로 급한 불은 꺼졌지만 아직 우리의 뚝배기는 식지 않았습니다. 특검조사, 정경유착, 탄핵안 통과, 세월호 7시간 진실 규명 및 재벌 개혁까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불이 꺼져도 펄펄 끓고 있는 뚝배기처럼 우리의 촛불은 아직 꺼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뚝배기의 민족입니다."

끝으로 발언권을 넘겨 받은 청년은 "저희를 놀리던 외국인 친구들은 232만 명이 모인 촛불 시위의 모습을 보면서, 성숙한 시민의식과 평화로운 집회 방식을 목격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민주주의 정신에 끝없는 감탄을 쏟아냈습니다"라고 전했다.

"싱가포르는 1년 365일 매일 따뜻하다 못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집니다. 열대 기후에 익숙해지고 겨울 옷도 별로 없는 저희는 매년 겨울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 추위 때문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번 겨울은 또 유난히 매섭게 추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슴 속에 올해 겨울은 잊을 수 없는 가장 따뜻했던 겨울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두가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모인 따뜻한 촛불 하나하나가 있으니까요."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jinu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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