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회의 리더의 언어] '연쇄사과범' 시대, 분노 키우는 '독사과' 말고 약이 되는 '진짜 사과'하라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 소장 2016. 12. 1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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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사과 행태…마음 풀어주는 ‘약사과’ 아닌 분노 키우는 ‘독사과’“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송구하지만" 감성팔이 사과는 공분(公憤)만 살뿐고도, 속도, 밀도, 순도 사과의 4원칙...‘청자 중심’ 사과만이 용서받는다

진정한 사과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 속도, 밀도, 순도라는 ‘4도’를 지켜야 한다./Pixabay 제공

바야흐로 사과(謝過) 범람의 시대다. 눈뜨고 일어나면 여기저기서 사과가 넘친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들이 손편지등 각종 방법을 통해 사과를 해온 것은 이미 오래다. 그뿐인가. 급기야 국가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한번도 아닌 4차례나 사과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청문회에선 평소 육성조차 접하기 힘들었던 기업인들이 90도로 몸을 꺾어가며 ‘송구하지만...’을 남발한다. 강도 높은 부끄러움을 표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그들의 모습에 오히려 보는 사람의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다. 이들의 과잉 사과퍼레이드를 보며 ‘과공(過恭)은 비례(非禮)’(지나친 공손은 예절이 아니다)’란 말이 떠오른다.

사과가 남발되지만 진정한 사과는 드물다. 한번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속편 사과가 나오는 이유다. 정서적으로는 책임을 인정하지만 법리에선 ’모르쇠‘로 빠져나가거나, 고장난 레코드처럼 준비된 답만을 달달 외우는 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눈물과 무릎꿇기, 기름장어같은 둔사로 실수를 덮으려는 것은 짝퉁 사과다.

◆ 앙금 남기는 ‘독사과’가 더 많아…진정한 사과 위해선 리더가 나서야한다

‘미안(未安)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는 것이다. 이는 영어의 sorry도 다르지 않다. sore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프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말그대로 편안치 않다는 말이다. 송구(悚懼)는 이보다 더 강도센 표현으로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하다는 표현이다.

이처럼 두렵고 거북하고 부끄럽다며 몸을 낮추는 이들을 보며 ’사과‘에 마음이 풀리기보다 앙금이 남는 것은 왜일까. 약사과보다 독사과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신뢰를 주는 사과, 즉 약이 되는 사과는 4도를 갖추고 있다. 4도란 고도, 속도, 밀도, 순도를 가리킨다. 이중 하나라도 부족할 때 독사과가 된다.

지난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1분 40초의 짧은 분량인데다가 사전 녹화 형태로 진행해 오히려 더 큰 공분을 샀다./사진=뉴시스

첫째, 고도(高度)이다. 최고 책임자가 직접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홈페이지에 달랑 올린 사과문, 대타를 시킨 대리사과는 안한만도 못할 수 있다. ‘몸통을 놔둔채 깃털에 불과한 현장실무자, 주변인을 거명하며 물귀신작전을 펼치는 사과, 홈페이지에 달랑 사과문 올려놓는 작자미상의 사과는 진정성을 훼손한다. 그런 사과를 넘어 리더십을 추락시킨다. 핑계대지 말라. 팔로워는 자신이 한 일에만 책임을 지면 되지만, 리더는 자기조직이 한 일을 책임져야 한다. ’공은 여기서 멈춘다’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말을 명심하라.

◆ ‘사과는 타이밍’ 빠르게 이실직고할수록 오해·분노 누그러져

두 번째, 속도는 신속한 대응이다. ‘쇠는 뜨거울 때 쳐야 한다’는 속담은 사과에도 적용된다. ‘대충 끓어오른 냄비가 식을 때쯤’을 기다리는 ‘잔머리’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기 십상’이다. 사과는 신속할수록 좋다. 무조건 덤터기를 쓰라는 것이 아니다.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둥’ ‘때를 봐서 나중에’ 미루며 수수방관하다 피해를 본 기업사례가 적지 않다.

2000년 있었던 일본의 유제품 업체 유키 지루시의 사례를 보라. ‘아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우리 책임 아니다’란 식으로 수수방관 늑장대책으로 결국 문을 닫는 사례에 이르렀다.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해명이든, 전폭적 수용이든 속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세 번째는 밀도이다. 밀도는 진정으로 잘못을 인정하는가이다. 사과의 사(謝)는 말씀 언(言)과 화살 쏠 사(射)다. 화살 쏘기 직전 가다듬는 마음과 태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적시해 쿨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고백과 실제 감정이 합치되어야 한다. 미안, 즉 편치 않다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누가 무엇을 저질러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법과 정서를 분리, 총론과 각론으로 이원사과하면 진정성은 급락한다. 시늉으로 대충 하는 사과는 안한 만 못하다.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는 오해와 분노를 사기 쉽다. ‘이실직고’의 사과에는 반성과 분석, 용기와 공감이 필요하다.

2007년 미국 장난감업체 마텔의 CEO인 밥 에케트의 사과는 진정성어린 사과의 전범이다. 그는 중국 하청업체에서 제작한 장난감에서 독극성물질이 검출되자 “CEO를 넘어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당신들의 분노에 공감한다. 부모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성”이라며 독극성 검출에 대한 사과를 표했다. 피아(彼我) 구분없이 같은 입장이란 것을 강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감성팔이 용서는 하소연일 뿐…최악의 예는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 했나”

넷째, 순도다. 반짝거린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란 말이 있듯 폴더형으로 90도 인사를 한다고 상처난 마음에 약이 발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복적 사과는 피곤을 유발한다. 사후 방지를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후회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재발방지를 위한 행동을 약속해야 한다. 대책 없는 사과는 앙코없는 찐빵과 같다.

순도는 진정성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차 대국민 담화에서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라고 말한 것은 공감을 사려 한 감성팔이 멘트다. 구체적 대책을 동반하지 않은 감성팔이는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소연일 뿐이다.

요컨대 진정한 사과는 화자 중심이 아니라 청자 중심이다. “그간 몇 번이나 했는데, 이정도면 됐지‘의 ’적당한‘의 기준은 없다. 축소-연기-은폐의 사과 거부도 문제지만 구렁이 담넘어가듯 은근슬쩍 사이비사과로 문제를 넘기려는 것은 더 문제다. 넘기려다 넘어지기 쉽다. 실수를 저지른 당사자의 고통과 사과의 진정성은 비례한다. 진정으로 아파하지 않으면 사과가 아니다.

◆ 리더십 스토리텔러 김성회는 ‘CEO 리더십 연구소’ 소장이다. 연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언론인 출신으로 각 분야 리더와 CEO를 인터뷰했다. 인문학과 경영학, 이론과 현장을 두루 섭렵한 ‘통섭 스펙’을 바탕으로 동양 고전과 오늘날의 현장을 생생한 이야기로 엮어 글로 쓰고 강의로 전달해왔다. 저서로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 ‘성공하는 CEO의 습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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