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TK 적자' 경쟁..'劉 정의' vs '崔 의리'
최경환, 비난 무릅쓰고 홀로 표결 불참..친박색채 더 뚜렷해져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이후 새누리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 지역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TK는 보수 정당의 명맥을 이어 온 새누리당에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다. 박 대통령 역시 TK 출신 정치인이다.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 여권이 '진공 상태'에 빠졌지만, 당을 추스르고 차기 대권을 준비하려면 TK의 지지를 얻지 않고선 불가능한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대구의 유승민과 경북의 최경환, 두 4선 의원의 최근 행보는 마치 'TK의 적자(嫡子)'를 가리는 듯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탄핵은 유승민에 날개 달까, 발목 잡을까 = 유 의원은 박 대통령 탄핵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박 대통령 탄핵 문제에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왔다. 검찰 수사나 대통령 대국민 담화 등 고비마다 비주류의 탄핵대오 유지에 앞장섰다.
유 의원이 탄핵안 표결을 하루 앞두고 낸 입장문 제목은 '정의로운 공화국을 위한 전진'이다. '정의'와 '공화'는 유 의원이 내세우는 핵심 가치다.
비주류뿐 아니라 일부 주류 의원까지 탄핵에 찬성하면서 새누리당 62표를 더한 234표의 '압도적 가결'이 나온 만큼, 유 의원은 당내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정작 자신은 "아직 생각을 못 해봤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당 지도부 개편에서도 그의 걸음걸이가 한결 묵직해질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럼에도 유 의원은 지난 9일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결을 하고 나서 "가장 고통스러운 표결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고통스러웠던' 이유는 일단 박 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 의원으로서, 특히 과거 박 대통령의 핵심 참모로서 정권 창출을 일궜다는 인연 때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을 용납할 수 없는 게 자신의 신념이지만, 신념에 따르자니 일종의 '자기 부정'을 할 수밖에 없는 갈등 상황에 놓였던 셈이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유 의원의 정치적 기반이 TK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탄핵 국면에서 TK의 여론은 박 대통령에 적대적이었지만, 여전히 보수 성향이 짙었다.
한국갤럽이 표결 당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TK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8%(전국 평균 5%), 탄핵 찬성률은 69%(전국 평균 81%)로 집계됐다.
일각에선 유 의원이 한사코 "당에 남겠다"며 탈당 가능성을 일축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간적으로 차마 못 하겠다"며 본회의장 박차고 나온 최경환 = 최 의원은 300명의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박 대통령 탄핵안 표결에 불참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그는 2013∼2014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지내고 지난해까지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잘 나가는' 정치인이었다.
언제나 '친박(친박근혜)계 핵심' 또는 '실세'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박 대통령이 현역 의원 가운데 가장 신뢰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따라서 정치적 사형 집행인 탄핵 표결이 최 의원에게는 "인간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 측근은 11일 전했다. 그는 표결 시작 5분 만에 자리를 떴다.
최 의원은 표결을 앞두고 배포한 입장문에서 "탄핵은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그리고 인간적으로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온갖 비판과 음해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탄핵은 혼란의 시작'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겠다는 의미다.
탄핵 저지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고, 최 의원은 큰 타격도 입었다. 지난 4·13 총선 참패 이후와 마찬가지로 한동안 '잠복기'에 들어갈 수도 있다.
다만 대권 도전을 위해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 의원과 달리, 최 의원은 주류 측을 대표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하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특히 당의 원심력이 커지면서 주류와 비주류의 갈등이 격화하면 최 의원이 TK의 기반을 토대로 새로운 '진지 구축'을 모색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새누리당 의원 약 절반이 찬성표를 던진 이번 표결에서 TK 의원 23명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대여섯에 불과했으리라는 추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당이 수습 또는 분열되는 가운데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TK의 주도권을 둘러싼 최 의원과 유 의원의 한판대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zhe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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