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촛불, 노동자는 어디에" 이 사람 얘기 들어주세요

이은정 입력 2016. 12. 10. 23:28 수정 2016. 12. 1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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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쌍용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씨 "노동자 얘기 들어주는 사회, 함께 만드는 게 인권"

[오마이뉴스이은정 기자]

"우리는 또 싸울 수 있으니까!"

2013년 박근혜 정권이 시작된 때부터 지난 3년간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만들어온 프로젝트 <그날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공통의 기억으로, 그리고 인권의 기억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떤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듬으면서 왜 그 일을 '인권'으로 불러들여 기억하려고 하고, 잊지 말아야할 기록으로 모아두고 싶은지 차곡차곡 적었다.

그렇게 3년째. 올해는 궁금해졌다. 광장을 채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사드 배치, 백남기 농민 사망과 국가 폭력, 깔창 생리대, 병역거부 항소심에서도 무죄와 같은 사건들이 인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이 이야기들을 함께 채워온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것은 '글'을 받고 싶었지만, '말'을 나누게 된 누군가와의 이야기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었던 사람

탁월한 이야기꾼. 변화무쌍한 표정, 말투, 유머, 그와 인터뷰를 하고나서, 그리고 녹취를 풀면서 나는 그 점이 제일 안타까웠다. 전혀 즐겁지 않은 상황을 이야기하면서도 내내 흐르던 그의 유머가 사람들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는데, 내 필력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1시간 30분. 그는 묻고 싶었던 것들을 묻기도 전에 이야기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2009년 전까지는 그냥 뭐랄까 '깨시민'도 아니고, 그냥 좀 좋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고. 열심히 일해서 집도 하나 장만하고, 아이들이 제가 물려받은 가난 때문에 겪은 여러 가지 아픔들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살던 사람이었어요."

좋은 아빠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해고 됐을 때 비정규직은 정규직 '방패막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사실 조금 화가 났었어요. 그치만 나서지 못했어요. 속만 상하고."

"제가 일하던 데가 계속 정규직이 일하던 라인이었는데 엄청 힘든 일이었어요. 신입은 그 라인에서 제일 힘든 걸 시키거든요. 그런데 너무 근골격계 질환이 많이 생기고, 힘드니까 그 일을 비정규직이 하게 한 거죠. 노조는 거기에 합의를 했고."

2008년 '민주파' 한상균 집행부가 당선되기 전까지 노동조합은 교섭하기 전에 파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무쟁의 선언' 같은 것을 하고, 임원들은 중국 가서 접대도 받고, 돈 얼마를 챙겼다느니 하는 소문도 흉흉하게 뒤따르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는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들어온 친구가 복기성이에요."

77일간의 파업이 남긴 것

"제가 사수고, 부사수가 복기성. 이 친구랑 술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방도 같이 가고. 그랬는데, 이 친구가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무 말도 없이 쫓겨나는 거죠. 한 500만 원? 터무니없는 돈을 주면서 하루아침에 나가라고. 화가 나고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2008년, 한상균을 필두로 그가 좋아하는 '형'들, 김득중, 이창근, 김정욱이 모여서 선거운동본부를 꾸렸다.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고, 사람들은 이에 맞서 싸울 사람을 원했다. '2등'할 것 같다는 예상을 깨고 한상균이 지부장으로 당선되었다.

"77일 파업이 정말 힘들고, 더럽고, 어려웠는데,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물이 끊기니 씻지도 못하고. 저는 간부랍시고 양치도 안 하겠다! 했었는데. 전기까지 끊기니까 밥도 다 쉬고, 쉰내 풀풀 나고. 부식창고 열쇠가 저에게 있으니까 저는 막 먹어도 되는데, 처음 간부 같은 걸 해보니까 '견결'해지는 거예요, 마음이."

그는 몇 번이나 '견결해진다'라는 표현을 썼다. 정확한 뜻을 알기 위해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의지나 태도가 굳세다'였다. 그렇게 부식창고를 마음대로 여는 법 없이, 조합원들의 모범이 되려고 노력했다.

"어쨌든 되게 힘들었지만, 물론 졌지만, 그 싸움이 졌지만… 저에게는 굉장한, 제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된 거죠. 그러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니 우리가 파업하는데, 왜 경찰 1만 명이 오고, 특공대가 오고, 헬기가 최루액을 쏟아 붓고. 왜 우리를 몰아내려고 하나. 우린 잘못한 게 없는데. 일만 열심히 했는데. 국가에 대한 불신과 노동자 파업에 대한 확신이 생기면서 균형이 안 맞고. 그 때 굉장히 경도 되었던 것 같아요."

서로를 살리는 이야기

77일 파업으로 6개월 복역하면서 '이제 그만 해야겠다'고 다짐한 그를 다시 대한문으로 끌어올린 건 동료들과 그 가족들의 죽음이었다.

"되게 슬펐어요. 진짜로.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밥도 못 먹고, 잠도 안 오고. 왜냐면 대한문 올라오기 직전 돌아가신 이윤형 동지랑은 77일동안 같이 싸웠거든. 77일, 그렇게 드럽고 힘든 투쟁을 같이 했던 사람이 왜 죽어? 도저히 그걸 감당할 수가 없고, 아무리 싸워도 안 되나보다, 생각했어요.

도망갔었어요. 3일 동안, 광주로.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전화도 엄청 많이 왔는데, 아무 전화도 안 받았죠. 그 때 김정우 형한테 문자 하나가 왔어요. '야, 이 개O끼야.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나도 힘들어. 개O끼야." 정말 딱 이렇게 왔어요. 그런데 이게 위안이 되더라고요.'나도 힘들다'는 게."

나도 힘들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다. 욕이 섞인 투박한 위로는 이상하게도 힘이 됐다고 한다.

"대한문에 왔는데. 기주 형이 상복 입고, 얼굴 없는 영정, 청 테이프로 붙여놓고 종이컵에 향초 꽂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서글펐어요."

그는 서글프다는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목이 메어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흘렸다. 쉽게 옅어지지 않을 슬픔이겠다, 조심스레 예상은 했지만 여전히 불쑥 눈물 흘리게 만드는 일일 줄 몰랐다. '해고'의 여파가 이렇게나 컸다. 굵은 눈물 뚝뚝 흘리며 말을 이었다.

"기륭, 코오롱, 콜트콜텍… 형, 누나들이 맨날 왔어요. 맨날 와서 같이 싸우고. 김소연 선배는 와서 경찰이랑 싸우다가 발목이 부러졌는데, 깁스하고 또 왔어요.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니 정말 힘이 됐어요. 어느 날은 분향소 앞 나무에서 한 삼십분을 우는 여자 분을 봤어요. 혹시 우리 때문에 우는건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때문에 왜 삼십분을 우나 싶으면서도 우리 때문인 것 같았어요.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위로가 됐어요. 아, 나만 슬퍼하는 게 아니구나."

이게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구나, 싶었다. 프로젝트 <그날들>에 실린 사건들 사이사이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엉켜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나도 힘들어, 나도 슬퍼, 그래서 나도 울어'때로는 낯선 이들에게서 시작되는 묵묵한 동조가 누군가를 살리는구나.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가 되고, 100만, 200만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 때에도 변함없이 '그동안 계속 해왔던 것들을 계속 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구나.

촛불이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

대화는 자연스레 촛불과 광장으로 흘러갔다.

"촛불. 경이로웠거든요. 2008년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내 판이 아닌거야. 내가 낄 데가 없어,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노동자들 이야기가 안 나와요. 박근혜 때문에 제일 피해 보는 사람들인데, 박근혜 지 스스로 만들어낸 판이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들이 '무임승차'하는 느낌인 것 같아요.

100만이 모이니까 청와대 앞이 열린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여전히 그 앞을 막아선 '경찰버스'가 열려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제대로 보일 거예요. 난 그 때만을 기다리고 있지."

누군가는 꽃 스티커를 붙이고, 누군가는 그 스티커를 뗀다. 평화는 고분고분, 법을 지키는 한도 안에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닐테다. 똑같은 행동도 합법이 되기도 하고, 불법이 되기도 한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대사처럼 '법은 힘 있는 사람은 패지 않는다'.

"제가 뽑는 10대 뉴스는 한상균이죠. 가까운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에요. 노동자, 노동자들 중 1명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고. 지금과 똑같은 구호를 외치고, 똑같은 행진 코스로 진행된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는 왜 한상균에게 5년의 실형을 선고했는가. 법원의 판결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건지 잘 모르겠어요. 만약에 박근혜가 구속이 된다면 검찰은 몇 년을 구형할 것이며, 법원은 몇 년을 선고할 것인지 정말 궁금해요. 노동자들 대표한테 했던 것만큼 할 수 있는지."

그래. 여기 또 하나 더 있다. 우리가 끝까지 지켜봐야 하고, 촛불을 놓지 말아야할 이유. 두고 보겠다. 국회, 검찰, 법원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국민들이 살려달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머리 손질하느라 90분을 보낸 대통령에게 어떻게 하는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노동자에게 보상금이랍시고 500만 원 달랑 던져줘 놓고, 최순실-정유라에게 300억을 헌납한 삼성에게 어떻게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회를 함께 만드는 거, 그게 인권 아니에요?"

숨겨진 인권뉴스로도 역시 노동문제를 꼽았다. 유성, 동양시멘트, 아사히글라스, 하이디스, 세종호텔… 이런 조그만 사업장들의 투쟁을 사람들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속상해했다.

"이야기 들어보면 하나같이 다 억울하거든요. 억울하니까 싸우는 거예요. 신념이 있어서 싸우는 게 아니거든요. 억울해서 싸우다보니까 신념이 생기는 거죠. 신념은 뒤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요.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으면, 이런 이야기들을 충분히 관심 있게 들어주는 사회, 다만 법에 보장되어 있는 거라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더라도, 우리는 또 싸울 수 있으니까. 또 싸울 수 있으니까, 우리는. 또 싸워야 하니까. 그런 사회를 함께 만드는 거, 그게 인권 아니에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의 눈물을 떠올렸기를 바란다. 100만, 200만이 모이는 광장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해 맴도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바로 지금 당신 옆 그 자리, 내어주기를.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그리고 "인권 10대 뉴스와 숨겨진 인권 뉴스" 후보들을 들여다 봐주기를 부탁드린다. 후보로 선정된 사건들을 설명하는 짧은 글속에 이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품고 있음을 헤아려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더듬더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 찾아가는 길 어딘가에 당신이 꿈꾸는 세상과 내가 꿈꾸는 세상이 만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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