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말한 신부님, 성당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안호용 2016. 12. 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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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에서 시국 비판한 신부님, 종교의 역할을 생각한다

[오마이뉴스 글:안호용, 편집: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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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퇴진' 및 '세월호 7시간 밝혀라' 3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밝히자는 의미로 7시에 맞춰 소등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권이 처음 직면한 논란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다. 어릴 때 홍역을 치르는 것처럼, 이명박 정권도 정권 초기 광우병 논란으로 한바탕 곤욕을 겪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초기부터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으로 거센 광풍을 맞은 것이다.

그 무렵 성당 주보에는 국정원 사태를 다룬 날선 비판의 글이 연일 실렸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명백한 민주주의의 파괴이며 그 불의에 가톨릭은 분연히 반기를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톨릭의 사회교리에 따른 주교회의의 주장이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미사 때였다. 주임신부가 교구청 일로 출타 중이어서 휴식년을 보내고 있는 친구 신부가 그 날 미사를 집전했다. 주임신부와 절친인 그 친구 신부는 성당 사제관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으며 여유가 되면 주임신부와 번갈아가며 미사를 집전했다.

그 날 미사가 끝날 무렵, 친구 신부는 주보에 실린 국정원 사태의 문제점을 다룬 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드물다. 가톨릭 주교회의를 거쳐 실리는 내용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확보한 글이지만 막상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이를 드러내고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종교와 이념의 충돌이 뻔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였다. 긴장감이 감도는 순간, 친구 신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그만 합시다"라는 노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렸다는 듯, 친구 신부는 "이 말을 듣기 싫으면 여기서 나가세요"라고 맞받아쳤다.

"지금 제가 하는 이 말은 바로 주교회의에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가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 노인은 실제로 성당 밖으로 나갔고, 친구 신부는 못다한 말을 이어갔다. 분위기가 냉랭했지만 그는 흥분하지 않고 미사를 마무리했다. 이런 돌출적이며 극단적인 충돌은 여느 미사에서 볼 수 없는 대단히 희귀한 광경이었다. 그 노인은 밖으로 나가며 이렇게 중얼 거렸을지 모른다. "빨갱이 같은 신부..."

그리고, 지난 일요일 주일미사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물론 그 친구 신부는 아니고 당시 주임 신부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3년 전 새로 부임해 온 주임신부였다.

그날 미사는 대림 제2주일이면서 인권주일과 사회교리 주간이었다. 독서1, 2와 세레자 요한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온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을 내쫓는 유명한 장면이 있는 마태오 복음이었다. 한마디로 그날 미사의 주제는 '정의'였다.

그렇게 독서가 끝나고 복음을 다 읽은 주임 신부는 작심한 듯 강론 초반에 생각지도 않은 단어를 꺼내며 사자후를 토해냈다. 그 단어는 바로 '빨갱이'였다. 성당 안의 분위기는 온기가 가득하고 다소 나른했는데, 무언가 한방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알기로 주임신부는 정의구현사제단 회원이 아니었고,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정치적인 담론에 대해 논하지도 않았다. 그저 정치 이념적으로 표나지 않는 평범한 사제였다. 미루어 짐작해볼 때, 그런 주임신부가 평상시 쓰지 않던 '빨갱이'란 단어를 발설한 데는 배경이 있는 듯했다. 최근 어수선한 현 정국에 대해 논하다 어떤 신도와 의견 충돌이 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한다.

하여튼, 강론 내용은 요약하면 이렇다. 사무엘과 예레미아 등의 예언자들과 세레자 요한과 예수는 그 당시 기득권자와 부패한 권력자들에게 가열찬 비판을 했다. 그런 행위는 예언자적 위치에서의 정치 참여이고, 이 바탕에는 성경이 있으며,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는 개인의 구원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사제가 정치 이야기를 하고 불의를 논하면 '빨갱이'라고 불러대는 이 대한민국이 과연 정상적인가 질문했다.

강론 중간 무렵 주임신부가 "사제는 정치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렇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을 들으세요"라고 물었다. 고조된 분위기에 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정말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이에 주임신부는 더욱 격정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성경구절을 인용하며 정치를 얘기하는 사제가 왜 빨갱이라고 매도 당해야 하는지 반문했다.

주임신부가 '빨갱이'면 예수는 무엇일까

 천주교정의구현부산교구사제단이 마련한 '국기문란, 부쟁부패 척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미사'가 지난 11월 28일 저녁 천주교부산교구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열렸다.
ⓒ 정민규
'빨갱이'라고 언급되는 가톨릭 사제의 대표적인 예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들 수 있다. 그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붉은 교황(Red Pope)'라 불려질 정도로 가진 자들과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 '정치란 가장 높은 형태의 자선'이고 불의에 대해 분연히 저항해야 하며, '삶의 발코니에서 관망하지 말고 거리로 나오라'고 설파한다. 이러한 행위들은 '종교의 사회적 사명'이므로, 성직자와 신도들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고 독려한다.

유럽의 보수적인 사제들은 그를 사회주의자이며 해방신학 신봉자라고 비판하는데, 그 말을 조금 세게 표현하면 바로 '빨갱이'란 뜻이 된다. 물론 여기서 '빨갱이'란 위에서 말한 대한민국에서의 빨갱이와는 차원이 좀 다르다. 부정적인 의미로는 같지만, 주임신부가 말하는 '빨갱이'는 교황의 '빨갱이'보다 더 엄혹하고 색이 진하다. 의미와 뉘앙스가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이다.

손석희가 인용을 해서 유명해진 돔 헬더 까마라 브라질 대주교의 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돕자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성자라고 한다. 하지만 가난을 낳는 구조를 바꾸고자 하면 사람들은 나를 빨갱이라 한다." 

대한민국의 어떤 보수 언론인은 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 '사악한 무리'라고 거침없이 일갈하기도 하는데, 가톨릭 사제는 세계 어딜 가나 정치 이념적으로 매도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주임신부가 '빨갱이'고 교황이 '빨갱이'면 예수는 무엇인가? 복음을 문학적으로 보면 예수는 낭만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보면 혁명가이고, 이념적으로 보면 사회주의자이며, 그리고 한국적 색깔론으로 보면 붉은 예수(Red Jesus)인지 모른다.

하여튼, 주임신부는 강론의 대부분을 사제와 '빨갱이'에 대해 할애한 후 마침내 다음 순서인 세례성사 의식으로 넘어갔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은 듯 그의 얼굴에서 홍조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성당 안에 팽배했던 긴장감이 가시면서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단 뒤에 있는 예수가 빙그레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빨갱이입니까? 빨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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