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이제 시작, 낡은 질서의 개혁이 온다

윤호우 선임기자 2016. 12. 1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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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새누리당 운명, 대통령 거취, 개헌 등은 향후 어떤 상황 맞게 될까
정세균 국회의장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안이 찬성 234표로 가결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그동안 정치권은 탄핵소추안 가결과 반대라는 각각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을 뿐 막상 표결 후의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직무정지로 또 한 번의 격랑 속으로 들어간 정치권은 향후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될까.

1 새누리당의 운명은
새누리당 비박의 나경원 의원은 탄핵소추안 표결 하루 전인 8일 “가결표가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며 “230표가 앞으로 당의 운명을 가르는 마지노선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친박 대 비박의 당내 대결에서 비박이 친박을 압도하는 바로미터를 230표로 본 것이다.

국회 본회의에서 나온 탄핵안 가결 표수는 비박의 주장이 새누리당 내에서 다수였음을 말해준다. 가결 234표에서 야권 성향의 표인 172표를 빼면 새누리당에서 62표의 탄핵 찬성표가 나왔다고 추산할 수 있다. 친박의 탄핵 반대표가 56표(기권·무효표 미포함)임를 감안하면 62대 56이라는 구도로 비박이 친박을 넘어선 표수가 나온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새누리당 128명 중 56명만이 반대표를 던졌다는 것은 새누리당의 세력구도가 비박으로 재편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9일 아침 비상시국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인원은 33명이다. 이들 핵심 비박 의원 외에도 중립적인 입장의 의원 또는 심지어 친박 성향 의원까지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국회 본회의의 탄핵 폭풍은 곧바로 새누리당에 밀어닥칠 것으로 보인다. 비박의 정병국 의원은 “탄핵안 가결 이후 새누리당 지도부의 조기 퇴진과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의 이정현 대표는 ‘12월 21일 사퇴-1월 21일 전당대회’를 공언해 왔다. 비박은 탄핵안 가결 직후 친박을 중심으로 한 현 지도부가 조기에 퇴진할 것과 전당대회 체제가 아닌 비대위 체제가 곧바로 들어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박은 ‘친박 지도부 교체→비대위 구성→새누리당 해체 및 재창당→친박 의원 출당조치’라는 시나리오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박의 정병국 의원은 “우리(비박)는 지금 보수를 개혁해 새누리당이 재탄생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친박은 기득권 유지에 골몰하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한다면 모두가 같이 가기는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특단의 경우에는 새로운 비박 지도부가 친박 일부 의원을 출당하는 경우까지를 암시한 것이다. 비박의 중심에 선 유승민 의원 역시 11월 말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하고 홍위병, 내시 노릇을 했던 사람들을 당에서 몰아내야 한다”며 인적 청산을 주장한 바 있다.

일단 62대 56의 팽팽한 대립구도 속에 향후 어떤 계파가 주도권을 잡을지 주목된다. 나경원 의원은 탄핵안 표결 전에 “비박 의원이 아직 친박 의원보다 적다”면서 “만약 비박 의원의 찬성표와 친박 의원의 반대표가 동수로 나온다면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내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지금 친박 대 비박의 숫자 대결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촛불민심의 분노가 새누리당으로 향하고, 특히 탄핵안을 반대한 새누리당 친박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비박이 당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 대통령 조기퇴진 문제는 어떻게 되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안 표결 전인 6일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탄핵 의결 이후에 박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는 ‘선 탄핵 후 퇴진’을 주장했다.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 전 대표의 발언은 탄핵안 표결 여부를 놓고 여야 지도부가 팽팽한 기싸움을 하는 가운데 터졌기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청와대는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은 6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탄핵안 가결 이후에도 퇴진하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주장에 맞서 민주당 문 전 대표가 즉시 물러나라는 주장을 한 셈이다.

새누리당은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이미 대통령이 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비박계 역시 문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 되기 놀음에 빠졌다’고 표현하며 반발했다. 문 전 대표의 발언은 야권 내부에서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조기퇴진은 촛불민심을 반영한 것인데, 큰 무리가 없다고 본다”면서 “그런데 이 발언을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가 했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발언자의 문제라는 것이다. 국민의당의 한 관계자는 “지금 촛불민심은 이미 논리 국면을 지나 강경 국면인데, 이를 문 전 대표가 받아들인 형국”이라면서 “하지만 여기에 권력욕이 들어갔다는 점이 논란을 촉발시켰다”고 해석했다.

문 전 대표는 9일 탄핵안이 표결된 후에도 성명을 통해 “지금은 불안한 상황과 국가 리더십의 부재를 하루빨리 끝내야 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걸 내려놓고 국민과 국회의 뜻을 받드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기퇴진을 재촉구한 것이다. 탄핵안 표결 이후 대통령 퇴진 주장은 더 이상 야권에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탄핵안 가결이라는 목표가 달성된 이상 촛불민심이 박 대통령 즉각 퇴진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야권 역시 이 민심을 거스를 수 없게 된 것이다.

탄핵안 가결 직후 여권과 야권의 전선은 ‘대통령 조기퇴진’ 찬성과 반대에서 그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비박의 유승민 의원은 6일 문 전 대표의 ‘선 탄핵 후 조기퇴진’ 주장에 대해 “탄핵표결 직후 대통령 사임이라는 표현은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헌법 절차를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은 조기퇴진 주장을 조기대선으로 연결해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전략으로 치부하면서 야권과 맞서고 있다. 비박의 한 관계자는 “비박의 전체 의견이 조기퇴진 반대로 못박아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나 전체적인 정서가 탄핵안 가결 후 조기퇴진에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의 뜻과 관련 없이 박 대통령은 끝까지 헌재 판결 결과에 한가닥 희망을 걸 것으로 보인다. 탄핵국면에서도 박 대통령은 ‘끝까지 간다’는 강경한 입장을 줄곧 보여왔기 때문이다. 결국 대통령의 퇴진 여부는 촛불민심·특검수사·국정조사와는 아무 관계 없이 헌재의 판결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조기퇴진 주장과 함께 황교안 대통령 대행체제 역시 여야의 쟁점이 된 바 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내각 총사퇴를 주장해 여당은 물론 야권의 반발을 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내각 총사퇴는 그냥 실언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행체제는 야권 내부에서도 논란거리였다. 일부에서는 새로운 대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그냥 그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역시 탄핵안 가결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황교안 대행체제’에 대해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친문의 한 관계자는 “그대로 가야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 강윤중 기자
3 정계개편과 개헌은 동력을 얻을 것인가
탄핵안 가결 이후 정치권은 바로 대선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새로운 국면은 그동안 탄핵안에만 몰두해온 정치권에 새로운 의제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일단 촛불민심은 ‘대통령 조기퇴진’으로 주장이 옮겨졌지만, 정치권은 어떤 새로운 이슈가 등장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것이 정계개편 또는 개헌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개헌의 출발선은 새누리당이 그었다. 이철우 의원은 9일 오전 국회에서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회의’를 공식 출범시켰다.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의 정계개편이 촉발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제3지대에서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당 의원, 새누리당 탈당파, 새누리당 비박계, 민주당 비문(非文)이 개헌을 매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표 230석은 정계개편의 동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탄핵안 가결에 비박 의원들의 역할이 컸다는 점, 비박이 친박 대신 새누리당 지도부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비박이 제3지대로 나갈 가능성은 줄어들게 되고, 여권 내부가 스스로 개혁의 동력을 가동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야권 역시 개헌이나 정계개편의 동력이 미미한 상황이다.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탄핵안이 표결된다고 해서 지금 바로 개헌을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촛불민심이 활활 불붙고 있는 상황에서 개헌을 논의하는 것이 힘들다고 본 것이다. 민주당 내 개헌 추진 측 한 인사는 “의원들이 모임을 갖고 조만간 입장을 발표할 것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동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계개편과 개헌은 새누리당의 친박·비박 간 헤게모니 싸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택,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등 수많은 변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반 총장의 1월 중순 귀국과 국회 내 개헌특위 구성 제의가 정계개편과 개헌에 작은 불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안 가결 후 새로운 국면에 대해서는 야권의 유력한 후보인 문 전 대표의 성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 전 대표는 탄핵안 가결 후 성명에서 “대통령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면서 “우리가 넘어야 할 마지막 능선은 국가 대청소를 통해 국가 대개조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표가 새로운 탄핵안 가결 이후 새로운 어젠다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친문의 한 관계자는 “아직 뚜렷한 방향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에서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이슈를 내걸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앞으로 해야 할 과제로 ‘재벌개혁’과 ‘검찰개혁’ 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계파에 관계없이 탄핵안 표결 후 야권의 어젠다 설정이 결국 전면적인 사회개혁으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문 전 대표의 국가개조 어젠다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문에 속하는 민병두 의원은 “재벌의 특권을 없애고 검찰 제도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 역시 한 종편과의 인터뷰에서 향후 과제로 재벌개혁과 검찰개혁을 언급했다. 심 대표는 이를 ‘낡은 질서의 개혁’이라고 표현했다.

여권이 새누리당의 해체 및 재창당으로 보수의 혁신을 주장하게 되면 야당은 낡은 질서의 개혁으로 맞서는 구도를 그려볼 수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개혁·경제민주화 외에도 경색된 남북관계의 개선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야권의 새로운 이슈 제기에 대해 “야권이 구체제인 앙시앙 레짐의 개혁을 내걸었다고 볼 수 있다”면서 “친문 쪽에서는 개헌을 하지 않고 이 같은 개혁을 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고, 비문 쪽에서는 낡은 질서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 단계를 개헌으로 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결국 친문 측은 박 대통령의 비리의혹에 초점을 맞춰 낡은 질서의 개혁에 나서고, 비문과 국민의당은 제도와 헌법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춰 낡은 질서를 개혁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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