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모성 잔혹사 <미씽; 사라진 여자>

이정희 입력 2016. 12. 10.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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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모성에 대한 사회고발, <비밀은 없다> 와 <미씽> 의 차이

[오마이뉴스이정희 기자]

'출산 장려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자!' 한 지역신문 기사 제목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 자체가 국가 경쟁력이 되는 현실. 그리고 '아이를 낳게 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예산을 짤 때마다 지하철의 임부 보호용 분홍빛 좌석처럼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출산과 관련된 정책들, 그리고 어떤 시와 군이 '우수'한 정책을 펼쳤고, 출산율이 1위를 했다는 홍보성 기사 뒤로, <미씽; 사라진 여자>는 실제 대한민국 모성의 현실을 그려낸다.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 스틸 사진
ⓒ 메가박스 플러스엠
"우리 아가, 항상 고운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듣게 엄마가 지켜줄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가로 만들어 줄게. 엄마가 그렇게 할 거야"
- 극 중 한매(공효진 분)의 자장가

엄마가 지켜줄게

집에 뛰어들어와 허겁지겁 컴퓨터를 켜고 못다 한 작업을 마저 하는 지선(엄지원 분), 이혼 후 아이 양육과 생계를 위한 그녀의 일때문에 정작 자신의 아이 다은이와 눈조차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 아이를 돌보는 건 전적으로 조선족 유모 한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돌아오는 건 아이를 시댁으로 보내라는 법원의 명령.

법원의 명령이 아니더라도 관객은 지선의 정신없는 생활을 보며, '얘가 니가 엄마인 줄은 아니?'라는 남편의 다그침이 아니더라도 지선의 모성 자격에 의문이 간다. 과연 저렇게 바쁜데 아이를 돌볼 수가 있어? 라고. 그리고 그런 관객의 의혹에 답이라도 하듯, 지선은 아이가 없어지고 난 그 밤이 지나서야 아이와 보모 한매의 부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관객의 냉정한 시선처럼 지선에게 전혀 호의적이지 않은 법과 사회를 상대로 한 엄마 지선의 아이찾기 추격전.

지선이 다인과 한매를 찾아나선 그 순간부터 드러나는 한매의 진짜 모습, 이름부터 알 수 없는 조선족 여인, 아파트 단지에서 알게된 한매는 의문의 여인이며, 조선족 거리에서 찾아낸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희생한 어수룩한 조선족 여자, 그리고 충청도 시골에서 돈을 받고 팔려와 씨받이가 된 보호받지 못한 이주 여성이다.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 스틸 사진
ⓒ 메가박스 플러스엠
보호받지 못하는 모성, 그래서 무모해지는 모성

지선은 엘리트 여성이다. 방송국 외주업체에서 일하는, 남보기에는 그럴 듯한 직업을 가진. 하지만 그녀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이혼'이라는 제도로 통과하는 순간, 그녀의 모성은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무관심한 남편과 핏줄에 집착하는 시어머니는 아이를 보살필 수 없는 그녀의 경제적 능력과 현실적 상황을 들어 아이를 빼앗아 오려고 할 뿐이다.

그녀는 '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 무배려의 사회적 조건에서 맹목적으로 그래서 더더욱 모성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궁색하게 만들면서 지선은 아이를 지키려 말 그대로 '애쓴다'.

끊일 듯 끊어지지 않는 한매의 자장가처럼, 사회 속 그럴싸한 직업군의 여성이든,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들여지지 않는 이주 여성이든 그들이 '모성'으로만 존재할 때, 사회는 그녀들에게 냉혹하다. 그러기에 그들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상관없이, '모성'이라는 존재만으로 호모 사케르(인간 사회내에 있지만 인간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즉 사회는 '출산'을 위해 모성을 장려하지만, 정작 모성으로서의 그들의 존재나, 모성으로서 그들이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는데 있어 전혀 배려하거나 보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심지어 그 '모성'이 어떤 사회적 위치에 있든 '가정'이라는 울타리조차 허울뿐인 것을 고발한다.

결국 21세기의 대한민국, 국가 경쟁력을 위해 출산이 장려되고, 해마다 출산율이 늘었네 어떻네 하며 홍보성 기사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모성은 모성으로서의 자신의 숙명과 자신이 낳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법의 경계를 넘으며 무모해질 수밖에 없음을 영화는 증명한다.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 스틸 사진
ⓒ 메가박스 플러스엠
영화 내내 한매와 자신의 아이를 맹목적으로 찾아 나섰던 지선은 한매의 행적 속에서 자신과 같은 모성을 발견하고 흔들린다. 지선은 한매를 향해 손을 내밀지만, 사회적 보호가 기능하지 않는 상황에서 모성의 연대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실, 영화는 서로 다른 사회적 조건이 낳은 모성성의 결과를 처연하게 보여준다.

여성 감독에 의한 맹목적 모성, 그리고 주연 배우의 헌신적 열연이라는 점에서 <미씽; 사라진 여자>는 올해 개봉한 손예진 주연의 <비밀은 없다>를 떠올리게 한다. 두 영화 모두 모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배려가 없는가를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영화 속 모성들은 스스로 아이를 살려내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다. 덕분에 두 영화 속 손예진, 엄지원, 공효진은 이 영화를 통해 모성을 열연하여 배우로서의 영역을 확장해 낸다. 다만 <비밀은 없다>가 감독의 스타일로 인해 주제 의식이 산화된 반면, <미씽; 사라진 여자>가 보다 익숙한 설정과 상황에의 집중으로 관객들이 주제에 익숙하게 공감하는 대중적 작품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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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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