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탄핵이후 한∙중관계 뉴노멀의 조건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2016. 12. 10.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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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중국 언론들도 이를 긴급 타전했다.관영 환구망은 “박근혜 18년 정치 하루아침에 파산”이라고 전했고, 대표 뉴스채널인 CCTV 13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표결 결과와 담화를 발표하는 현장의 모습을 동시통역까지 동원하며 생중계했다.

CCTV13은 박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거의 매일 매시간마다 ‘친신간정(亲信干政, 측근의 국정 개입)’이라며 진행 상황을 전해왔다. 중국은 “탄핵안 통과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한반도 배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정체될 것”(환구시보)이라는 기대도 숨기지 않는다.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한 중국내 반응은 엇갈린다. 탄핵안 표결 하루전 만난 중국 IT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겉으론 혼란이었지만 대단한 민주주의”라며 “안정을 최우선시 하는 중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선 “대통령도 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민주주의의 힘은 크다” 는 글도 보인다.

사드 반대를 정당화하거나 박 대통령을 조롱하고 중국의 정치체제를 찬양하는 글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박근혜, 한국 국민에 사과할 뿐 아니라 중국에도 사드 배치 결정 사과해야” “미∙일에 기대니 좋은 결과 나올 수 없지” “(드라마)소재가 그렇게 좋은데 한류 드라마가 경쟁력이 있을 수 밖에” “역시 중국 사회주의 민주가 선진” 등등.

중요한 건 중국의 평가가 아니라 한중 관계의 리셋(재설정)이다. 7월 주한미군의 사드배치 결정 이후 중국은 한류 콘텐츠와 중국인 한국관광 제한에 나선데 이어 사드 배치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의 모든 중국 사업장을 상대로 세무조사 등 전방위조사에 상황이다.

김장수 주중대사가 리진자오(李金早) 국가여유(旅遊)국장과 녜천시(聶辰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장 등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한 달째 만나지 못할만큼 한중 외교는 정체된 상태다. 최순실 게이트가 만든 국정공백 영향도 컸다.

이날 루캉(陸慷)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이웃으로 한국의 정국이 빨리 안정되고 회복하길 바라며 한중 관계도 사이 좋게 발전하길 원한다"면서도 사드에 대해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사드 배치하는 것을 결연히 반대한다. 이는 중국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다"는 말을 반복했다. 사드배치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한중 관계 회복은 없다는 경고로 들린다.

사드배치를 철회하면 중국이 한국에 가한 경제보복이 철회되고, 예전의 일상적인 한중관계로 돌아가게될까. 결과적으로 사드배치 결정은 한국의 안보라는 핵심이익이 중국의 핵심이익과 충돌할 때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한국이 체험하는 또 하나의 경험을 제공했다.

중∙일간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열도)분쟁으로 중국에서 일본 자동차가 공격을 받을 때 한국에선 시원해하는 한켠 언제든 우리를 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사드배치 결정은 그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중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지 1년도 안된 나라에도 경제압박을 가하고, 강대국 미국에는 외교적 경고만 하면서 이웃 한국을 상대로 경제보복을 하는 민낯도 보여줬다.

사드배치를 논외로 치더라도 앞으로도 한중 관계에서 핵심이익이 충돌할 개연성은 작지 않다. 부부도 싸우는데 국가간 이익충돌은 불가피하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해결하나이다. 중국의 자발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티베트의 독립을 주장하는 달라이라마의 방문을 허용한 몽골에 최근 통관비 징수 등의 조치를 취한 중국이다.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가족과 사업을 함께 해온 것으로 알려진 대만의 식품업체 하이바왕그룹은 중국에서 세무조사를 받은 뒤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담은 광고까지 내야했다.

한중관계의 리셋을 위해 우리의 차기 정부가 해야할 첫째 과제는 핵심이익이 충돌할 때 중국에 내밀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하는 것이다. 주중한국대사관의 외교관들은 지난해 9월 박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한국의 민원을 일사천리로 해결해주던 중국이 지금은 만남 자체를 꺼린다며 중국의 경제보복에 마땅한 대응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미∙중이 수교한 1979년 이후 37년간의 금기를 깬 대만 총통과의 통화로 중국을 압박할 ‘대만 카드’를 부각시켰다. 트럼프는 동시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30년지기인 테리 브랜스태드 아이오와 주지사를 주중대사로 내정했다. 전자가 ‘채찍의 카드’라면,후자는 ‘당근의 카드’인 셈이다.

한국도 중국에 던질 수 있는 카드를 발굴하고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쉽지 않다. 한 외교소식통은 “우리는 요청하는데, 중국은 요구하는 자세”라고 전한다.

둘째는 우리 핵심이익의 공감대 형성이다. 촛불시위는 하나됨의 힘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하나 됨의 힘이 중국을 향한다면 그만한 억지력을 갖는 ‘무기’도 없을 듯하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 핵심이익은 하나됨의 힘을 얻을 수 없다.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해 우선 국내 소통이 선행돼야하는 이유다.

셋째는 한∙중 서로의 신뢰수준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가 이뤄져야한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중국의 전승절에 참석하자 중국은 “역사상 최고의 한중관계”(환구시보)라는 평가를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이 사드배치에 대한 신호를 주지 않자 중국은 사드배치는 없을 것으로 오판했다.

시 주석이 6월 방중한 황교안 총리에게 사드배치 반대를 공개적으로 강조한 뒤에는 이같은 상황오판이 일부 작용했다. 시 주석은 한달 뒤 우리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발표로 국가지도자로서 체면을 구기게됐다. 중국의 반응이 거친 이유이기도 하다.

네째는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개혁해야한다.사드배치 결정이후 중국을 최대 교역대상이자 투자대상국으로 삼는 경제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 물론 중국은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2위 규모이면서도 6% 이상 성장하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하지만 사드배치가 철회된다고 한류와 싸구려 쇼핑관광이 예전과 같은 특수를 누리게 될까. 사드배치 이전부터 시 주석의 사회주의 가치 중시는 한류 콘텐츠에 대한 규제강화로 이어져왔고, 저가 관광은 중국내에서도 폐해가 심각해 철퇴를 맞고 있다. 사드배치는 이를 가속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중국만 바라보는 한류,질 낮은 관광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탄핵이후 재설정해야하는 건 한∙중 관계만이 아닐 것이다. 촛불집회가 진화를 위한 진통이었음을,민주주의의 가치를 각인시켰음을 증거하기 위해서라도 과거 일상으로의 회귀가 아닌 ‘뉴노멀’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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