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이후, 대통령의 단어는 어떻게 변했을까

김유진 기자 2016. 12. 10. 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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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따끈 새책] '단어의 사생활'.."우리는 모두 언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따끈따끈 새책] '단어의 사생활'…"우리는 모두 언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많은 국민이 절망했지만, 이 사람만큼 회의감을 느낀 사람이 또 있을까. 사태 이후 많은 이들의 위로를 받은, 페이스북에 이른바 '박근혜 번역기'를 만든 사람이다. 페이지 개설자는 태블릿 PC 보도 이후 "박근혜 번역기 개발자로서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고 올려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대한민국 최고존엄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번역해드리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페이지입니다"라는 문패를 내걸며 등장했던 이 번역기는 한번 들어서는 이해가 쉽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마치 해설을 하듯 풀어서 설명했다.

'혼이 비정상' '우주의 기운' 등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문제였지만, 박근혜 번역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사실은 대통령의 문장이 대부분 주술관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핵심 목표는~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습관적인 표현도 있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처럼 자신감 없는 표현, 관형사 '그런'의 빈번한 사용, "~해가지고" 같이 공식어보다는 비 공식어에 가까운 표현들이 그렇다.

미국 텍사스대학교의 심리학과 교수인 제임스 W. 페니베이커의 새 책 '단어의 사생활'은 대통령의 언어습관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자주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개인의 사생활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근거는 무엇일까. 그는 미국의 대중가수, 배우, 정치인과 전 대통령, 작가 등 유명인들의 발언부터 수많은 일상적 대화, 블로그, 댓글 등을 분석해 이 모든 말과 글에 포함된 단어들을 분석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단어 사용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언어 지문'이라고 명명한다. 사용하는 단어 속에 그들의 심리 상태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특히 명사나 동사, 형용사처럼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어와 달리 내용어를 연결하는 데 쓰이는 기능어에 '언어 지문'이 많이 묻어있다는 설명이다.

나, 우리와 같은 인칭 대명사부터 그러나, 왜냐하면 같은 접속어까지. 이런 기능어들은 매우 자주 쓰이고 단어의 길이가 짧으며, 감지하기 어렵고 뇌에서 내용어와 다르게 처리된다는 특징이 있다. 뇌의 전두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이 내용어를 관장하는데, 이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은 "음…아아…그래요, 그거." 이런 식으로 말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매우 사회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기능어가 갖는 사회적 특징은, 대통령의 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790년대부터 최근까지 미국 대통령 모두의 담화를 분석한 뒤 "언어 분석은 역사적 사건들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도록 한다"고 결론 내린 저자의 말처럼 말이다. 저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했던 닉슨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 "워터게이트 사건 전후 닉슨 대통령의 달라진 단어 사용을 통해 내부의 정치 싸움을 엿볼 수 있다"고도 설명한다.

그렇다면 최순실 사태로 시끄러워지기 이전과 이후의 박근혜 대통령의 단어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저자는 "단어 분석은 정치와 역사 연구에 흥미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며 "답을 찾을 수 있는 역사적 문제들은 사용 가능한 언어 표본과 연구자들의 상상력이 허용되는 한 얼마든지 연구될 수 있고, 이제 당신의 차례"라고 제안한다.

◇단어의 사생활=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사이 펴냄. 384쪽/1만7500원.

김유진 기자 yoo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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