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고려대 여성주의 소모임 해체 왜? '난파' 이름 때문에 갈등.. 결국 난파

이가현 기자 2016. 12. 10.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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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학원생, 이름 문제제기.. 모임 회원들은 반박 대자보, 누리꾼에게까지 논쟁 번져

우리 사회에 여성혐오 현상이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고려대의 한 여성주의 소모임 이름을 놓고 다시 여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고려대 지리교육과 학부생 9명은 여성주의를 공부하는 소모임을 만들고 이름을 ‘난파’라고 붙였다. 소모임 페이스북 계정에 “난파는 ‘난교파티’의 줄임말이자 ‘어지러운 물결’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난교는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성해방을 상징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공개 세미나, 혐오 발언 모니터링, 문집 만들기 등의 활동을 할 계획이었다.

논란은 대학원생 A씨가 지난달 28일 학과 이름과 난파란 명칭을 나란히 쓴 것을 문제 삼으며 시작됐다. A씨는 소모임 회원이자 지리교육학과 학생대표인 B씨를 만나 “학교와 학과 이름을 소모임 이름과 병기하지 말거나 소모임의 이름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학과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소모임 회원들은 반발했다. “난파는 남성 중심의 섹스 정상성에서 벗어난 여성해방의 표현일 뿐”이라고 반박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이들은 “학과의 명예를 실추시킬 만한 일을 하지 않았으며 단지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주장했다.

A씨도 페이스북에 반박글을 올렸다. 그는 “민감한 명칭을 쓰면서 처음부터 충분한 설명이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소모임 앞에 학교와 과 이름을 붙이면 같은 과 학생들도 유무형의 영향을 받게 된다”며 구성원으로서 문제 제기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A씨와 소모임 사이의 논쟁이 알려지면서 고대생들은 물론, 누리꾼들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졌다. 모욕과 조롱 등 남성·여성혐오 댓글이 달리며 상호 비방전으로 이어졌다. 결국 지난달 30일 과대표 B씨는 사과문을 썼고 소모임은 해체됐다.

논란은 식지 않았다. 지난 2일 학과생들이 임시총회를 열었다. 소모임 회원들에게 사과와 책임을 촉구하고 과대표 B씨의 탄핵을 논의하자는 안건이 상정됐다. 5일에는 ‘난파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려졌다. 이 과정에서 학과장 교수가 소모임에 속한 여학생들을 면담했다. A씨가 학교에 신고해 징계를 위한 조사위가 꾸려져 다시 반발이 나오고 있다.

명칭을 옹호하는 이들은 여성주의를 공부하기 위한 모임이었을 뿐, 이름은 상징에 불과해 이를 비난하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아무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착한’ 여성주의 운동은 존재할 수 없다는데 이름을 문제 삼는 게 억압이라는 항변이다.

반대편에선 난교를 상징하는 이름이 여성해방과 무슨 상관이냐고 비판한다. 무분별한 성관계를 의미하는 이름은 오히려 여성해방이나 양성평등을 위한 생산적인 논쟁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학과 내에서 시작된 논쟁이 온라인에 알려지면서 외부인들도 온라인상에서 인신공격성 글을 쓰는 등 감정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이현재 교수는 “여성주의 운동은 기존의 성차별적인 체계를 뒤흔들기 때문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급진적인 방식이 불필요한 오해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면 전략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며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SNS보다는 세미나 등 진지하게 페미니즘을 논의하는 오프라인의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여성주의 소모임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여성들이 성적주체로서 발언하려는데 남성들이 무의식적으로 불쾌감을 느낀 것”이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의 성문화를 방증한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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