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朴 대통령 탄핵소추, 이제 대한민국의 나침반은 法治다

입력 2016. 12. 10. 03:11 수정 2016. 12. 12.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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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34표로 가결 정족수(재적 3분의 2·200명)를 훨씬 넘겨 통과됐다. 야 3당과 무소속 전체가 찬성했다 쳐도 그보다 60여명이 많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절반 가까이가 대통령 탄핵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오후 7시 3분 직무가 정지됐고 국군통수권 등 대통령 권한은 황교안 총리에게 넘어갔다. 박 대통령은 길게는 6개월이 걸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직무 정지 직전 소집한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헌재 심판과 특검 수사에 담담한 마음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난 두 달여 동안 초유의 국정 농락 사태로 혼돈에 빠져 있었다. 최순실 등은 대통령을 이용해 정부 장·차관 자리를 주무르고 기업으로부터 돈을 갈취했다. 국회는 탄핵안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국민이 부여한 신임을 배반한 헌법 위반'이라고 했다. 검찰 공소장에도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의 공범으로 적시됐다.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해 대통령 지지율이 국정 운영이 불가능한 수준인 4~5% 선까지 떨어졌다. 대통령도 세 번이나 담화를 통해 사과하거나 조기 하야까지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로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헌정사에 기록될 오점이자 비극이다.

그러나 탄핵까지의 과정에서 확인된 국민들의 역량은 우리가 스스로를 다시 쳐다보게 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집회 때마다 과격 발언이 나오거나 폭력 조짐이 보이면 평범한 시민들이 제지했다. 아무런 불상사 없이 결국 헌법 절차대로 매듭지어질 수 있게 된 것은 그 덕분이다. 나라와 국민이 그만큼 성숙했다. 이것을 '2016년 국민의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다.

하지만 나라 사정을 보면 지금 아무도 자찬(自讚)에 빠져 있을 수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경제·안보 위기가 눈앞에 와 있다. 이 상황에 대통령 탄핵소추로 국가 최고 리더십이 대행 체제로 운영돼야 하는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탄핵소추가 혼란의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끝이 돼야만 하는 것은 자명(自明)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즉각 하야' 요구를 되풀이했다. 다른 야권 대선 주자들도 마찬가지다. 탄핵은 헌법 절차로서 문 전 대표 등 야당이 요구한 것이다. 책임 정당이라면 자신들이 요구한 법 절차가 시작됐으면 그에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고 법을 넘어서자고 하는 것은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군중에게 영합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법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관철한 야당은 법을 지켜달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무거운 책무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권한대행은 현상 유지적 권한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안보와 경제에 예상치 못한 긴급 사태가 터질 경우 대처해야 할 책임은 황 대행이 질 수밖에 없다. 황 대행이 야권과 소통하면서 탄핵 정국이 일단락될 때까지 국정을 지켜주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의 역량 전체가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대통령 없는 국정을 안정시켜야 하고, 국회는 국가 리더십 공백 상황에서 협치(協治) 역량을 보여야 한다. 사법부는 탄핵 절차를 논란 없이 매듭지어야 한다. 모두가 난제 중의 난제다. 이 난국을 풀어 나가는 데 실패하면 국민 '명예혁명'이 분열과 불안으로 바뀔 수 있다.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결과다.

리더십 없이 어둡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게 됐다면 의지할 것은 나침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의 나침반은 법치(法治)뿐이다. 정부, 여야, 사법부 모두 법만 바라보면서 법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면 길이 나온다. '명예혁명'은 국민이 눈을 부릅뜬 채 법치를 지켜 누구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을 때 완성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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