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개혁이냐 독립성이냐.. 美 금리 인상 앞두고 공격받는 연준

스탠퍼드(미국)=김남희 기자 2016. 12. 10.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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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중앙은행 권한 축소 말하는 트럼프.. 통화정책 석학 2人의 생각은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가 흔들리고 있다.

그래픽=김현지 기자

트럼프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거론됐던 젭 헨설링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은 "연준이 권한을 넘어서 자유 재량에 따른 통화정책을 추구해 중앙은행의 의도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고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비대해진 연준의 권한을 줄이고, 지금부터 연준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닛 옐런 연준 의장과 스탠리 피셔 부의장 등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옐런 의장은 "(이런 시도가) 경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해가 될 것"이라며 "연준의 독립성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8년 옐런 의장과 피셔 부의장의 임기가 끝날 경우 연준의 개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벤 버냉키 전 의장 때부터 옐런 현 의장까지 연준은 어떤 형태로 운영돼 온 것일까. 공화당이 생각하는 연준의 문제와 개혁 방안은 무엇일까.

위클리비즈는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는 존 테일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만나 연준 개혁의 이유를 들었다. 그는 "연준이 시행한 비전통적 통화정책들은 효과적이지 않았다"며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버냉키 전 의장 시절 연준 이사를 지낸 랜달 크로즈너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 위기 당시 연준은 대공황이 반복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했다"며 "연준은 현재 데이터 분석에 기반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 주〉

"비전통적 통화정책 효과적이지 않았다… 룰 따라야"

차기 연준 의장 거론되는 존 테일러
벤 버냉키 전(前)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은 작년 4월 자신의 블로그에 ‘왜 테일러 룰(준칙)이 통화정책의 기준이 돼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버냉키 전 의장은 “테일러 룰은 단순한 기계적 수식일 뿐인데, (테일러 룰 창시자인) 존 테일러(Taylor·69) 스탠퍼드대 교수는 통화정책이 정해진 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한다”고 썼다. 그는 “룰에 기반한 결정은 정책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다양한 요인을 포함하지 않는다”며 “통화정책 결정자들의 판단은 룰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테일러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을 통해 “룰을 따르는 정책이 버냉키 전 의장이 주장한 ‘제한된 재량’보다 더 효과적이다”라고 응수했다. ‘제한된 재량’은 버냉키 전 의장이 연준 이사 재직 시절인 2003년 제시한 개념으로, ‘경제 상황이 급변할 때 물가 안정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재량에 따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테일러 교수는 “‘제한된 재량’과 달리, 룰에 기반한 정책은 예측 가능하고 분명한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보다 며칠 전 워싱턴DC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차 총회에서도 논쟁을 벌였다. 테일러 교수는 “테일러 룰을 포함해 정해진 준칙에 따라 금리를 결정할 때 국제 공조도 강화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버냉키 전 의장은 “공식에 묶여서 금리를 결정하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복잡한 경제에선 효과가 없다”고 반박했다.

테일러 교수는 통화정책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미 연준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그가 만든 통화 이론인 테일러 룰을 참고한다. 최근 찾아간 그의 스탠퍼드대 연구실 한쪽 벽면엔 외국 지폐들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룰을 따르는 통화정책이 왜 중요한가.

“1980~1990년대는 룰이 작동하던 시기였다. 연준은 2003년부터 룰에서 벗어난 정책을 시행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디플레이션 발생 우려를 강조하며 너무 오래 초저금리를 유지했다. 이는 주택 시장에 거품을 만들었다.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연준이 최후의 대부자로서 유동성을 공급한 것은 옳았다. 그러나 이후 연준이 시행한 비전통적 통화정책들은 효과적이지 않았다.”

존 테일러 교수는 1993년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반영해 적정 금리를 정해야 한다는 통화 이론을 발표했다. 물가 상승률이 목표 물가 상승률보다 높거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을 경우,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높여 물가와 경기를 안정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그의 이름을 따 ‘테일러 룰’이라고 부른다. 테일러 교수는 여러 행정부에서 일하며 정책 수립에 참여했다. 1976~1977년에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했다. 당시 경제자문위원장이 앨런 그린스펀이었다. 테일러 교수는 “그린스펀은 자신이 연준 의장으로 재임한 기간(1987~2006년) 중 연준이 한 일의 80%가 테일러 룰로 설명된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자문위원,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는 재무부 국제 담당 차관보로 활동했다.

―연준의 금융 위기 대응 조치에 비판적 입장이다.

“금융 위기가 발생하기 전부터 미국 통화정책은 궤도를 벗어났다. 2003~2005년 금리는 과거 비슷한 상황에서보다 훨씬 낮았다. 사람들은 더 높은 금리를 찾아다녔고 은행은 과도한 위험도 감수했다. 집값은 치솟았고 금융 부문에 왜곡이 생겼다. 2006년 초부터 위험신호가 보였으나, 연준은 잘못 판단했다. 구제금융 정책도 일관성이 없었고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패닉(심리적 공황)이 이어졌다. 연준은 긴급 대출 등으로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신용 경색을 해소한 후에 바로 대차대조표의 자산을 줄였어야 했다. 그러나 오히려 채권을 매입하고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정책 안내)를 도입하는 등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정책 효과는 작았고 연준의 독립성과 신뢰도가 훼손되는 결과만 낳았다. 통화정책을 다시 정상화해야 한다.”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유럽과 일본의 중앙은행이 시행 중인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금융시장을 왜곡하고 불확실성을 키운다”고 말했다. / 스탠퍼드(미국)=김남희 기자

―정상화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나.

“1980~1990년대에는 경제성장이 탄탄했고 큰 침체도 없었다. 룰이 잘 지켜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정책 방향을 예측할 수 있었고 연준이 뭘 하고 있는지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당시처럼 룰을 지키도록 통화정책을 개혁하는 것이다. 임시적이고 단기 목표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영구적이고 예견 가능한 정책을 펴야 한다.”

―현재 미국 경제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아직 성장 잠재력에 다다르지 않았다. 경제성장률은 겨우 2% 수준이다. 아직 위기에서 제대로 회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용이 늘고 있긴 하지만, 고용률이 오를 정도는 아니다. 고용 시장에서 빠져나간 사람이 많은데, 이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보다 상황이 더 안 좋은 국가들도 있지만, 미국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2~3% 성장률에 만족하나.”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가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많은데.

“이번에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리 인상은 통화정책 정상화의 일부다. 1990년대에 경제가 지금 같은 상태였다면 지금보다 금리 수준이 더 높았을 것이다. 더 일찍 금리를 인상했으면 미국과 세계경제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을 것이다. 점진적, 전략적으로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 이미 꽤 지연됐기 때문에 더는 금리 인상을 미뤄서는 안 된다.”

―금리 인상 폭이나 속도의 적정 수준은.

“지금은 금리가 0.25%포인트씩 조정된다. 과거에는 변동 폭이 더 자유로웠다. 나는 장기 명목 균형 금리는 4%, 물가 상승률 2%를 반영한 실질 균형 금리는 2%로 제시해왔다. 최근 FOMC 위원들이 생각하는 평균 명목 금리는 3%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명목 균형 금리가 4%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제로 금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 1년 반 정도에 걸쳐 금리 인상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좋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테일러 룰과 같은 가이드라인에 구속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테일러 룰은 여전히 유효한가.

“물론이다. 가이드라인은 룰이나 전략이 있다는 의미다. 어떤 하나를 사용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걸 이용할 수 있다. 세상은 변하고 언제나 똑같은 것을 쓸 필요는 없다. 최근 잭슨홀 미팅(각국 중앙은행 총재가 모이는 연례 금융 심포지엄) 연설에서 옐런 의장의 발언을 보면, 사실상 연준이 정책 룰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옐런 의장은 원래 테일러 룰을 가장 지지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다만 연준 의장직은 다른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자리다. 외국 중앙은행들도 테일러 룰을 이야기한다. 테일러 룰은 가이드라인이나 벤치마크(기준)로 계속 의미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올해 2월 자신의 트위터에 “연준에 대한 회계감사를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글을 남겼다. 올해 1월 상원에서 부결된 ‘연준 회계감사’ 법안에 대한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이 법안은 공화당 소속 랜드 폴 상원의원이 발의한 것으로, 의회 소속 회계감사원이 연준의 모든 결정을 감사해 투명성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미 미 의회에서는 연준 개혁 법안이 여럿 만들어졌다. 작년 11월에는 연준 감사와 함께 연준이 정책 룰에 따라 금리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연준 감독개혁·현대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당시 테일러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라스 피터 핸슨 시카고대 교수 등 경제학자 20여명과 함께 이 법안에 찬성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옐런 의장은 “연준 개혁 법안은 연준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미국 경제와 미국인에게 해를 입히는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연준 개혁 법안은 추진력을 얻게 됐다.

―연준 개혁은 왜 필요한가.

“연준이 더 명확한 전략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룰대로 통화정책을 시행할 때 효과가 극대화되고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연준은 통화정책으로서는 적절하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갔다. 예를 들어 모기지담보증권 매입 같은 것이다. 연준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연준이 제한된 목적을 수행하길 원한다. 하원에서 통과된 개혁 법안은 연준에 전략이 무엇인지 보고하도록 했다. 물론 연준은 이 법안에 반대한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이 법안의 내용은 다소 약하다. 연준의 예산 구조나 FOMC 투표권 등 더 논의해야 할 부분이 많다.”

―연준은 독립성 훼손을 우려한다.

“연준은 금융 위기 때 스스로 독립성을 망가뜨리는 정책들을 시행했다. 당시 연준은 재무부와 긴밀히 협력했다. 연준이 자발적으로 재정정책에 관여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연준의 행동은 ‘그렇다면 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독립적인 중앙은행이 필요한가’ 의문을 갖게 했다. 단지 경제가 부진하다고 해서 연준이 계속 개입하는 건 옳지 않다. 헬리콥터 머니(돈을 헬리콥터에서 뿌리듯 풀어서 경기를 회복시키는 것) 정책은 책임감 있는 중앙은행이라면 시행할 것이 아니다. 중앙은행은 통화 공급을 통제할 임무를 갖고 있는 것이지, 마음대로 재정정책에 관여할 수는 없다.”

―트럼프 취임 후 경제는 어떻게 될까.

“우선 누가 대통령인가와 상관없이 미국 정부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세금·규제·재정·통화 개혁이다. 세금 개혁과 관련해선 법인세를 낮춰야 한다는 제안이 있다. 미국의 법인세는 35% 정도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고 기업 확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법인세를 15~25%까지 낮춰 기업과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인 소득세 인하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규제 비용도 상당히 증가했다. 새로운 규제가 생기면 혜택보다 비용이 더 크다는 것에 명확한 의견 일치가 있어야 규제 개혁을 이룰 수 있다.

미국 정부 재정은 여전히 큰 적자 상태다. 특히 메디케어(노인 의료 지원 제도),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지원 제도) 등 재정 지원 혜택 지출 급증을 통제해 재정을 개혁해야 한다. 재정 지원 혜택 지출 규모는 경제성장 속도와 궤를 같이해야 하는데, 현재 이 부문의 지출이 지나치게 빠르게 늘고 있다. 트럼프는 대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보다 공약에 정책 개혁 요소를 더 많이 갖고 있었다. 현재 트럼프와 의회 사이에 정책 개혁에 대한 공감대도 있다. 결국 어떤 정책을 시행하는지가 관건이다. 대선으로 갈라진 정국을 빨리 수습하고 정책에 더 폭넓은 합의를 이뤄야 한다. 4대 개혁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늘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개혁을 추진하지 않거나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전 세계 상황 고려하는 옐런 합리적" 지금의 연준 지지

연준 이사 지낸 랜달 크로즈너
랜달 크로즈너(Kroszner·54) 시카고대 부스경영대학원 교수는 벤 버냉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으로 있었고, 재닛 옐런 의장이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로 있던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연준에서 이사를 지냈다. 금융 위기가 발발했던 2008년부터는 은행감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고, 이에 앞서 2001~2003년에는 미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을 지냈다.

크로즈너 교수를 부스경영대학원 내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의 방에는 연준 이사로 근무하던 당시 12명의 연은 총재가 1달러 지폐에 한 서명과 명함, 버냉키 전 의장 등의 명함이 들어 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액자 속 이름에는 옐런뿐 아니라 티머시 가이트너 당시 뉴욕 연은 총재(전 재무부 장관)도 있었다.

―다음 주(현지 시각 13~14일)로 예정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어떤 선택을 할 것으로 보는가.

“최근 FOMC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이전 투표 결과와 당시 회의 발언록을 보면 좀 더 일찍 (금리 인상) 조치를 취해야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동안 저(低)금리를 주장했던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은 총재도 지금은 금리 인상으로 입장을 바꿨다. 나 역시 (올 연말에도)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안정성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 최고의 중앙은행 정책은 백미러를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유리를 보며 앞날을 대비하는 것이다. 지금은 지나치게 오랜 기간 낮은 금리를 유지해왔다.”

―옐런 의장의 수차례 금리 인상 번복과 그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 여파로 연준의 리더십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은 매우 어려운 시기다. 미국이 이렇게 오랫동안 금리를 낮게 유지한 적도, 주변 국가들이 이렇게 마이너스 금리를 실행하고 지속한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옐런이 고용 시장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국내·외 상황 모두를 이해하는 균형 잡힌 접근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옐런은 (결정을 내릴 때) 항상 국제적인 변동 상황과 (경제 기반의) 취약성을 고려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지난해 인플레이션을 겪지 않았다. 미국은 5%의 실업률에도 임금 인상 압박을 받지 않았고, 경제성장률은 회복했다. 일각에서는 연준이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으면 인플레이션이 폭발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난 연준이 (금리 인상 같은) 다음 조치를 취하는 데 매우 조심스러운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버냉키 전(前) 연준 의장은 저서 ‘행동하는 용기’에서 랜달 크로즈너 교수의 첫인상에 대해 “은행과 금융 전공으로 대공황을 포함한 경제사(史)에 관심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성향에 대해서는 “매파도 비둘기파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평가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얼마나 중요한가.

“역사적으로 독립성을 가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문제 등에서 더 나은 결과를 가져 왔다.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적인 압력은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단기적인 측면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물론 중앙은행도 단기적인 경제 요소에 대응하긴 하지만, 그들은 좀 더 지속 가능한 성장률과 같은 장기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정책 안내)’와 ‘공개 발언’ 등이 효과를 낼 수 없다.”

―연준 재직 당시 금리 인상과 동결, 인하를 모두 경험했다.

“연준에서 금리를 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균형’이다. 연준은 인플레이션 안정, 고용 증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 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연준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 시장의 상황, 투자 현황 등을 살펴보고, 소비를 안정시키고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수를 증진시키기 위한 각국의 저금리 정책은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하나.

랜달 크로즈너 시카고대 교수가 2009년 1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이사직에서 물러날 때 동료들로부터 받은 선물.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과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명함과 서명 등이 들어 있다. / 시카고=이혜운 기자

“난 2003년에 발간한 책에서 1972~ 2000년 각국 구매력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결론은 1972년 이후 50% 이상의 구매력을 유지한 국가는 없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매우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구매력 악화가 우려됐다. 그러나 지금은 낮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거시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고 있다. 매우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도 시간이 지나면 구매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자동차가 다음 분기에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될 것이라고 예상된다면 그때까지 기다릴 것이다.”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 재닛 옐런 현 의장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두 사람 모두 연준을 좀 더 투명하게 만들고 싶어하고, 시장 참가자와 소비자, 그리고 기업 간 소통을 중시하려고 한다. 두 사람 다 전원 합의 주도적인 스타일이라 반대편을 설득해 깔끔한 합의를 이끌어내려고 한다. 내 생각에 둘의 기질과 접근 방식은 꽤 비슷하며, 스타일 면에서 차이가 없다. 버냉키가 의장일 당시 옐런이 커뮤니케이션분과위원회를 맡아 버냉키 체제 내 소통을 담당했다. 옐런이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일 당시, 연준 회의에 참석해서 한 발언 대부분은 생산성, 인플레이션, 고용 상황에 대한 데이터 기반의 분석이었다. 난 이것이 매우 현명한 접근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단순히 FOMC 위원 중 한 명이라면 좀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지만, 의장일 경우에는 이념적인 입장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많은 시기일수록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데이터와 관련시켜서 봐야 하고, 어느 것이 적절한 모델인지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구제금융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나.

“내가 당시 연준에 있었기 때문에 편중된 답변일 것이다(웃음). 난 구제금융 정책으로 1930년대 대공황이 반복되는 상황은 성공적으로 피했다고 생각한다. 대침체(Great Recession)를 겪긴 했지만, 대공황(Great Depression)까지는 아니었다. 우린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은행과 시장에 많은 유동성을 공급했다.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시스템을 빠르게 안정시킬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는 일본이 현재 겪는 중이고, 유럽이 직면하기 직전에 있는 디플레이션 상황도 피했다. 우린 금융 시스템이 국제적인 경제 위기와 같은 변동 상황에도 잘 견딜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몇 차례 발생한 금융시장 변동 상황에도, 현재 경기 침체의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 경제는 강한 성장세를 띠지 않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불황기라고 할 수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납세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도드-프랭크법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도드-프랭크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법이 통과된 후 6년이 지났다. 지금이 법을 재평가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더 나아가 (당시 만들어진) 다른 규제들도 살펴봐야 한다. 시장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 변경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혹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은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도드-프랭크법은 시스템 안의 리스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규제를 만들고 그 규제가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기 위한 항목이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준법 감시 활동에만 너무 집중하게 되면 진짜 리스크를 놓치게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태보다는 리스크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보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금융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도드-프랭크법과 같은 규제들은 시장의 유동성을 감소시켜 시장을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섀도 뱅킹(그림자 은행)이 커지는 것처럼, 시장 활동을 기존 은행 밖으로 많이 밀어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금리를 낮추지 않은 채 기업에 돈을 지원하는 형식의 ‘한국형 양적 완화 정책’이 거론되고 있다.

“내가 알고 있기로 한국은행은 금리를 1.25%로 낮췄고, 인플레이션율은 1%대를 유지하고 있다. GDP 성장률은 2~3%가량 된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 정도는 좋은 수치다. 한국의 4% 이내의 실업률도 고용시장이 튼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옐런 의장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가져오지 않으면서 경제성장과 고용 촉진의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처럼, 한국은행 역시 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핀테크 발전이 은행 역할 축소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나.

“핀테크는 수수료가 비싸고 느린 국제 결제 부문에서 강점이 있다. 그러나 아직 잠재력이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 킬러앱(신기술 보급에 결정적인 앱)이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기 핀테크 모델인 페이팔의 성공은 이베이 덕분에 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후 핀테크는 결정적인 기술이 탄생하지 않았다. 핀테크에 대한 의문 중 하나는 그들이 과연 신용 평가를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 이들이 진짜 ‘경기 침체’를 경험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볼 수 없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이 정말 좋은 금융 모델임을 증명하기 전까지는 투자자들은 상당 부분 경계할 것이다.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수영복을 입고 헤엄쳤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결과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생각엔 핀테크가 아시아에서 좀 더 빨리 성장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금융 정책 방향이나 금리 결정을 대체할 수 있을까.

“체스나 바둑을 마스터하는 것과 비즈니스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규칙 외의 창의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내 친구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는 저서 ‘제로 투 원’에서 ‘미래를 예측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래를 창조하고 설계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규칙이 정해진 상황에서는 컴퓨터가 인간보다 한 수 앞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규칙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사람들의 역할이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테일러 룰(Taylor Rule)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가 1993년 발표한 통화 이론.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률과 경제성장률을 적용해 적정 금리를 산출해야 한다는 준칙.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보다 높거나,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높을 경우,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높여 물가와 경기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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