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뉴스][오래전 '이날'] 12월10일 첫날 밤만 꿈같았다

박용필 기자 2016. 12. 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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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래전‘이날’]은 1956년부터 2006년까지 매 십년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 합니다.

■1996년 12월10일 첫날밤만 꿈같았다.

20년 전 경향신문에는 북한 귀순 가족의 사진이 1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전날 북한 가족 17명이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는데요. 귀순자는 그동안 종종 있어왔지만 이렇게 대단위 가족이 한꺼번에 귀순한 경우는 드문 일이었던 만큼 대대적으로 보도가 됐습니다. 김경호씨 가족은 이해 10월 두만강을 건너 탈출한 지 44일만에 극적으로 한국에 입국을 한 건데요. 16명의 대가족을 이끌고 중국 대륙을 횡단한 뒤 홍콩으로 건너가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홍콩에서 한국에 망명을 하게 됩니다.

당시 기사 제목은 ‘꿈같은 서울 첫밤’이었습니다. 자유에 땅에 도착한 안도감과 기대감, 그리고 남한 사람들의 환대에 당시에는 정말 꿈같은 첫날밤을 보냈을 겁니다. 그러나 4년 뒤인 2001년 가족을 이끌고 사지를 넘었던 김경호씨는 지병으로 사망합니다. 당시 장례식에서 김씨의 2남 4녀와 사위 네 명만이 번갈아 김씨의 빈소를 지키며 고달팠던 남북 양쪽에서의 생활을 회상했다고 하는데요. 둘째 사위는 “탈북했을 때 대대적으로 환영해주던 분위기는 잠깐 뿐이었고 우리 가족들은 그동안 무관심 속에 사회에서 도태되도록 철저하게 방치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숨진 김씨의 자식들은 누구 하나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장례비를 걱정해야 했다고 합니다.

■1986년 12월10일 외줄은 ‘타기’만 하는 게 아니다

30년 전 이날 경향신문에는 기이한 사진이 하나 눈에 띕니다. 외줄을 타는 오토바이 사진인데요. 그 오토바이는 외줄에 걸려있는 집에서 나온 듯 보입니다. 프랑스의 한 곡예단이 프랑스 리옹시에서 선보인 기예라는데요. 외줄 오토바이 타기 정도는 시시하다는 듯 집까지 외줄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곡예단은 크리스마스까지 직접 숙식했다고 합니다. 외줄 ‘타기’는 물론 외줄서 ‘살기’도 선보였네요.

■1976년 12월10일 마약성분도 있다는 얘기?

40년 전 이날 경향신문 1면에는 감기약 광고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건 ‘비마약성분의 기침약’ 이라는 문구가 들어있다는 겁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은 당연히 의사의 처방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나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마약성분이 든 이른바 전문의약품들도 소비자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의약분업이 실시되기 전이었기 때문인데요. 당시에는 의사도 약을 팔 수 있고, 반대로 약사도 처방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즉 지금은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구입이 불가능한 먀약성 전문의약품도 당시에는 약국에서 마음대로 살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이런 마약성 의약품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발생했고, 부작용이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광고는 ‘비마약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세살부터 여든까지 쓸 수 있는” 기침약임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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