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각성시킨 촛불.. "이제는 '탄핵 이후' 고민할 때"

유태영 입력 2016. 12. 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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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본 '촛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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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를 대규모 촛불이 밝히기 시작한 지 42일째인 9일 국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해 대통령 직무를 정지시키는 것으로 ‘촛불 민심’에 화답했다. 최순실(60·구속기소)씨의 국정농단 의혹이 드러나면서 대규모 촛불은 당리당략이나 차기 대권주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고우면하던 정치권을 각성시키며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다.

◆“4·19혁명, 87년 항쟁 역사 이은 민주주의 분기점”

지난 10월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2만명 규모로 시작한 촛불집회는 지난 3일 6차 집회 때 170만명으로 85배나 불어났다. 6차례에 걸친 광화문광장 집회에만 주최 측 추산 402만명의 시민이 운집했다. 이념과 세대를 초월해 수많은 시민이 스스로 광장에 나와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박 대통령 2선 후퇴와 질서 있는 퇴진 등을 놓고 갈팡질팡하던 국회에 준엄한 경고장을 던지며 끝내 ‘탄핵 열차’를 가동시켰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시민들이 행동으로 보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중앙대 이병훈 교수(사회학)는 “이번 촛불집회는 4·19혁명이나 1987년 민주항쟁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시민혁명”이라며 “자발적으로 동참한 수많은 시민의 평화롭고 단호한 행동이 오락가락하던 정치권을 각성시켰다”고 진단했다.

◆평화로운 집회·시위 세계가 놀라

시민들이 진로를 막아선 경찰 차벽을 ‘꽃 스티커’로 도배한 뒤 직접 떼거나 집회가 마무리될 때쯤 “경찰관들도 고생했다”며 꼭 안아주는 모습은 과거 집회·시위 현장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모습이다. 이처럼 단 한 건의 불상사 없이 평화롭고 축제 같은 집회 분위기가 지속된 것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돋보인 장면이었다.

서강대 강정인 교수(정치외교학)는 “최근 집회를 놓고 ‘종북 세력’의 정치공작이라고 하면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폭력의 유무로 시민의식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평화로운 양상이 탄핵안 상정까지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한 것만은 틀림 없다”고 평가했다.

중앙대 이나영 교수(사회학)는 “87년 세대가 구현하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가치를 포스트모던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해 전근대적 방식의 정치 인식과 실천 양식이 종말을 고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며 “이들은 물방울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하기에 형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성숙한 태도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최고 권력자가 있는 청와대 100m 앞 대규모 집회도 가능하게 했다. 경찰이 교통마비 등을 이유로 금지통고했으나 법원이 “건강한 시민의식과 질서있는 집회문화”를 근거로 집회의 자유를 폭넓게 해석한 데 따른 것이다. 

◆“이제는 ‘탄핵 이후’ 고민할 때”

4·19혁명과 87년 항쟁 이후 정치적 혼란상을 경험한 만큼 이제는 ‘탄핵 이후’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경희대 김윤철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는 “정치권의 정략적인 계산을 막아내고 선택지를 좁혀주는 역할을 했다”며 “이제는 (광장민주주의가) 향후 대한민국의 모델을 재설계하는 시민의 공론장, 동력으로 작용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성균관대 김봉석 교수(사회학)는 “이번에 국민이 실망하고 분노한 이유는 청와대나 정부부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이 절차나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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