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역할 못하는 국민연금..'복마전' 비난받는 국민 노후 '최후 보루'

배준희·류지민·서은내 입력 2016. 12. 9. 09:32 수정 2016. 12. 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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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대통령' 기금운용본부장 선임 때마다 전문성 논란
해외 연기금 比 저조한 수익률..초고령화로 조기 고갈 우려

‘최순실 게이트’ 불똥이 국민연금으로까지 옮겨붙었다. 이번 사태와 맞물려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으로 ‘노후 최후의 보루’로서 국민연금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최순실 게이트’ 불똥이 국민연금으로까지 옮겨붙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으로 국민연금이 ‘노후 최후의 보루’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다. <매경DB>

▶‘옥상옥’ 기금운용본부

▷임기 중에도 툭하면 외압 논란

삼성 합병 관련 의혹의 밑바닥에는 불투명한 국민연금 지배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의혹이 해소된다고 해도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체제로는 언제든지 정치 권력의 입김이 작용할 것이란 불신이 높다.

이런 징후는 이미 수차례 목격됐다. 대표적인 예가 기금운용본부장(CIO) 인사 때마다 불거지는 ‘낙하산’ 논란이다. 국민연금 CIO는 500조원이 넘는 자금 운용을 총괄해 ‘자본시장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러나 기금운용본부장 선임 과정에서는 매번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오제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현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도 지난 2월 선임 당시 본부장 지원자 18명 가운데 강 본부장이 서류평가에서는 중간인 9위를 했지만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아 최종 낙점된 것으로 확인돼 뒷말이 무성하다. 이 과정에서 정작 서류평가 1위를 차지한 지원자 유 모 씨는 7명으로 압축된 면접 대상에서 아예 빠진 것으로 드러나 의혹은 더욱 고조됐다.

본부장 면접을 함께 봤던 A씨는 “당초 국민연금 측은 2015년 말 임원추천위원회로부터 4명으로 CIO 후보를 추려 명단을 통보받았지만 석 달 넘게 최종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질질 끌었다. 당시만 해도 강 본부장은 4명의 후보 중 자체 경쟁력은 가장 뒤처진다고 평가받았지만 느닷없이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자연히 ‘청와대가 원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뿐 아니다. 역대 기금운용본부 CIO들은 임기 중에도 잦은 외압 논란에 휘말렸다.

초대 김선영 전 본부장은 주식 투자를 하는데 손절매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사원 지적을 받고 200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다. 조국준 2대 본부장은 ‘주식 투자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다’라는 이유로 경제관료들에게 질책을 들은 뒤 석연찮은 이유로 돌연 사표를 냈다. 금융권에서 발탁된 첫 인사로 기대를 모았던 박해춘 전 이사장 때 임명된 김선정 전 본부장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이 같은 배경 탓에 1999년 기금운용본부 설립 이후 역대 본부장 5명의 평균 임기는 2년 8개월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지배구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수장이 ‘옥상옥’인 태생적 한계 탓이라는 분석이 많다. 관련법부터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 내부 조직으로 돼 있지만 국민연금법에서는 사실상 보건복지부 장관 산하 조직으로 간주한다. 2007년 도입된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은 또 다르다. 국민연금법에서는 기금운용본부장 임면권이 복지부 장관에게 있다고 했지만 공운법에서는 이를 이사장 권한으로 명시했다.

그렇다고 관련법을 선뜻 ‘교통정리’하기도 녹록지 않다. 이는 연기금이 국가 정책의 자금줄로 동원됐던 과거 이력과 무관치 않다. 1988년 국민연금이 출범한 뒤 1998년까지만 해도 기금 운용 주체는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이었다. 그러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세계은행이 구제금융 제공을 전제로 연기금 개편을 요구하면서 1999년부터 보건복지부가 운용을 맡게 됐다. 국민연금공단 산하에 기금운용본부가 설치된 것도 이때다. 기금운용본부 독립 시 이를 어디에 둘 것이냐를 두고 양 부처 간 기싸움이 팽팽한 배경이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 여부도 지배구조와 맞물린 핵심 이슈다. 소극적 주주권에는 단순한 의결권 행사가 있으며, 적극적 주주권에는 회계장부 열람권, 주주총회 소집 청구권, 주주제안권, 집중투표 청구권 등이 있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한 사례는 없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지배구조가 설익은 상태에서 섣불리 적극적 주주권을 확대할 경우 자칫 정부나 정치권이 기금 운용 통제를 통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 우려한다.

한 자산운용사 CIO는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종목에 대한 공시 의무가 강화된다. 그 결과 잦은 지분율 공시로 기금 운용 전략 노출 우려, 업무 과잉 등 기금 운용을 제약하는 일이 생길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강흠 연세대 경영대 교수(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권력에 휘둘리다 부실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 결국 고령화 시대의 재앙이 된다”고 강조했다.

▶오락가락 투자 원칙

▷운용 자율성 침해 논란도

정치적으로 이리저리 휘둘리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본분인 운용을 제대로 못하는 건 당연지사다. 이번 삼성물산 합병건이 터지기 이전부터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가장 큰 문제는 투자 원칙의 부재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5년 단위로 중기자산배분계획을 수립해 자산별 투자 비중 등을 결정하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특히 기금운용본부장의 평균 임기가 2년 8개월에 그칠 정도로 단명하는 상황에서 장기 계획을 수립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기금운용본부 소속 직원 A씨는 “한 번 운용 방침을 정했으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간섭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운용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명확한 원칙이 없다 보니 새로 부임하는 본부장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운용 방침에 위탁운용사들도 곤욕을 치르기 일쑤다. 강면욱 본부장 취임 이후 추진됐던 ‘패시브 강화 전략’이 대표적이다. 운용업계에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위탁운용사에 벤치마크(BM)지수 복제율을 높이라고 지시한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유형별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는데, 국민연금이 코스피200 같은 벤치마크지수를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투자 비율 준수 여부까지 따지겠다고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벤치마크 복제율을 높이기 위해 위탁운용사는 대형주를 늘리고 코스피 중소형주나 코스닥 종목들은 내다 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중소형 성장주 발굴에 주력하던 펀드매니저들이 ‘절대 갑’인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중소형주 비중을 줄이고 대형주를 사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코스닥 급락 장세를 유발했다는 지적이 높다. 더욱이 강 본부장은 취임 당시 “수익률 제고를 위해 중소형주 투자를 늘리겠다”고 말한 것과는 정반대 행보를 보이면서 시장의 빈축을 샀다.

갈팡질팡하는 운용 환경 속에서 핵심 인력들의 잦은 이탈도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은 500조원이 넘는 거대 기금을 굴리는 글로벌 메가펀드임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운용역 사이에서는 그다지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다. 자율성이 많지 않은 데다 연봉이 민간 자산운용 업계 평균의 50%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박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2월 기금운용본부의 전주 이전을 앞두고는 기금운용역의 이탈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비상이 걸렸다.

올 들어 기금운용본부를 떠난 사람만 20명이 넘어 지난해(10명)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하반기에만 해외주식팀장, 채권팀장, 해외인프라팀장, 국내인프라팀장 등 주요 팀장급 인력들이 줄줄이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 이탈이 급격하게 늘면서 기금운용본부는 올해 총 3차례나 신규 운용인력 채용을 진행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기금운용역들의 업무 연속성이 분절되면 운용 수익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불안한 노후 안전판

▷고령화로 고갈시점 당겨질 듯

국민연금 고갈 논란은 오래된 논쟁이면서 최대 난제다. 노후 안전판으로 기대하고 꼬박꼬박 연금 보험료를 내고는 있지만, 정작 연금을 수령해야 할 시점에 재정이 바닥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공포에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정부가 내놓은 제3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서는 기금 고갈 시기를 2060년으로 예측했다. 현행 제도하에서 기금 누적 적립금은 2043년 2561조원으로 정점을 찍고 2044년부터 추가 적립금이 적자로 돌아선 뒤 2060년 고갈될 거란 전망이다.

문제는 기금 고갈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금 고갈 시기를 결정짓는 요소는 운용수익률, 출산율, 평균 수명 등이다. 현재로선 어느 것 하나 낙관적인 전망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2060년이 아니라 이보다 10년 이상 빠른 2049년 기금이 바닥 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고갈 우려가 다소 왜곡됐다는 지적도 내놓긴 한다. 애초 1988년 국민연금이 처음 설계될 때부터 노후안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쌓이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구조로 기본 틀을 짰기 때문에 고갈은 필연적인 수순이라는 얘기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전 금융위원장)는 “태생적으로 국민연금 고갈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65세부터 연금을 수령하는데,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할 때 기본적으로 자신이 낸 것보다 더 많이 받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국민연금 절반은 내가 낸 보험료에서, 나머지는 후세대가 부담하는 구조라 자기가 낸 보험료보다 적게 받는 경우는 없다. 무조건 ‘고갈’이란 단어에 매여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편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민연금이 조기에 고갈돼 노후 안전판으로 제 역할을 못할 것이란 우려 자체가 과장된 것은 결코 아니다. 현재로써 기금의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계산에 따르면 기금 운용 수익률을 연평균 1%포인트 높일 때, 보험료율을 2.5%포인트 인상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 수익률을 처음 목표에 비해 1%포인트 높일 때, 2040년까지 700조원, 2%포인트 높이면 1600조원의 추가 수익을 더 쌓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해외 연기금에 비해 볼품없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은 4.57%를 기록했다. 이마저도 해외 대체투자 수익률이 14.9%로 선방한 결과지 국내 주식(1.67%)과 해외 채권(1.52%)의 수익률은 부진했다. 국민연금 측은 “2~3%대 수익률에 머무는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에 비하면 뛰어난 성과”라고 항변하지만 해외 연기금들과 비교해보면 초라하다. 지난해 일본 공적연금(GPIF)과 캐나다연금(CPP),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은 각각 12.3%, 16.5%, 18.4% 등 두 자릿수 수익률을 올렸다.

특히 투자수익률 중에서 국내 주식 투자 부분이 저조하다는 게 뼈아프다.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수익률은 코스피를 따라가지 못하고, 마이너스에 머무른다. 2013~2015년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평균 수익률은 -0.4%로 기금 전체 금융부문 투자 평균 수익률(4.7%)과 큰 차이를 보인다.

수익률 부진에 대해 국민연금은 적극 항변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지배구조 등 여러 제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해외 연기금과 수익률만 놓고 비교하는 건 곤란하다. 연기금 운용 성적을 수익률로 상징되는 수익성의 관점으로만 채찍질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노후 자산인만큼 안정성 위주의 보수적인 운용 전략도 간과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해외 공적연금 사례 벤치마킹해야

높은 수익률에 기금 운용은 분리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면서 해외 주요 공적기금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내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운용인력의 연봉이 성과에 연동되며, 투자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전문적 지배구조를 갖췄다. 전체 규모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절반 수준이지만 운용전문인력은 5배에 달한다. 캐나다연금은 제도 운영과 기금 운용이 완전히 분리돼 있다. 캐나다는 고용복지부 격인 정부부처(DESD)가 연금 제도를 담당하고, 기금 운용은 CPPIB가 전담한다.

네덜란드 공적연금(ABP)도 2008년 기금에 대한 독립성과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기금 운용을 담당하는 자회사 APG(All Pension Group)를 따로 두고 있다. ABP는 아웃소싱 방식으로 APG에 기금 운용을 위탁한다. APG는 ABP의 감독과 행정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돼 자산 운용에만 전념한다. 기금 규모 세계 2위인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도 기금 운용을 노르웨이중앙은행 내 자산 운용 조직인 노르웨이중앙은행투자관리처(NBIM)에 맡긴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은 1992년 캘리포니아 주의회가 법률을 개정해 CalPERS 이사회에 기금 투자와 경영에 대해 독립적이고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했다. CalPERS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운영이사회가 매년 자산 배분 전략을 수립하면 이에 따라 투자 부서가 운용 한다. 연금 운용 방향을 결정하는 운영이사회 위원들의 경우 교사, 소방관 등 금융 비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 하지만 1박 2일 단위로 매년 10번씩 회의를 열기 때문에 운용에 관한 이해도가 높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6호 (2016.12.07~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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