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어떻게..낙하산 근절·인재 확충으로 독립성 강화

서은내,나건웅 2016. 12. 9. 09: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서 적극 의지 보여야..보험료율 인상 시점은 '갑론을박'
민간·해외서 전문가 영입, 성과 보상 체계 통한 수익성 개선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연기금 간 수익 경쟁은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다. 일각에선 현 상황을 ‘연금 운용 위기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 수급에 대한 불안감까지 확산되는 상황에서 세계 3대 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기금의 경쟁력 강화는 절실한 과제다.

최순실 사태로 국민연금은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전문가들은 이번 일을 국민연금 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전 금융위원장)는 “또 한 번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계기로 작용할까 우려스럽다. 국민연금의 독립성 강화와 낙하산 인사 관행 근절은 오래전부터 그 당위성에 대한 동의는 이뤄져왔지만 정작 개혁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 이유는 정치권에서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1.정치적 중립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기금운용본부의 독립이 선결 과제다. 국민연금이 국회, 감사원, 복지부 등 너무 많은 기관으로부터 감사를 받는 구조가 정치적 중립을 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1년 중 60~70%의 시간은 감사를 받으러 다녀서 기금 운용에 집중할 수 없다는 하소연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닌 셈이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은 “캐나다 퀘벡주에선 연금을 아예 국회 소속으로 하고 있다. 어떤 파격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중복된 감사기관과 제도를 통일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청와대에서까지 간섭을 하다 보니 이번과 같은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병덕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편으로 기금운용본부를 공단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동열 실장 역시 “기금운용본부를 공무원 조직 산하에 둬선 안 된다. 민간에서 끌어온 인력으로 전문가 풀을 구성하고 역량에 맞는 보상체계를 마련해 새 형태의 조직을 꾸릴 필요가 있다”고 보탰다. 무엇보다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출에 공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경제, 금융시장 전문가를 뽑아야 한다. 해외에서 투자 전문가를 데려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2.수익성 가장 우선해야

개혁의 다음 단계는 수익성 우선 원칙이다. 국민연금의 공적인 역할보다는 수익성에 초점을 둘 때 합리적인 기금의 의사결정이 이뤄질 것이란 얘기다. 일각에서 논의되는 국민연금의 공공투자 역할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도 국민연금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으로 결정했다면 반대하는 것이 옳았다. 전문가들이 ‘수익성’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면, 자연히 독립성이 확보되고 외부의 불합리한 요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공공투자 역시 수익성을 최우선하는 전문 조직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임대주택 투자가 수익률이 높다고 판단되면 투자할 수도 있다.” 김동열 실장의 말이다.

수익성 향상을 위해 해외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영익 교수는 “국내 증시가 계속 지지부진한 상황을 감안할 때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필수다. 특히 중국이 내년에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이며 중국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한 틈을 타 중국 투자 비중을 늘리는 게 적절할 것이다. 해외 투자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문 리서치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이 투자 결정에 소극적이란 지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조건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이가 다수다. 공격적인 투자가 반드시 수익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병덕 선임연구위원은 “채권 투자 비중이 높고, 그중에서도 국채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소극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도 대체투자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등 투자 자산 포트폴리오를 변화시키며 수익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3. 기금 고갈 막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기금 고갈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수익률 제고가 우선이지만 제도적인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대표적인 방법이 보험료율 인상이다. 김병덕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고갈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선 보험료 인상, 수령액 절감이라는 제도 개편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장 공론화하기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 고갈이 가시화되면 될수록 사회적인 논의를 통한 개편 추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광우 교수도 보험료율을 높여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국내 보험료율이 OECD 국가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전 교수는 “우리나라 보험료율은 9% 정도로 매우 낮다.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빠른 시일 내에 현재 부담자의 보험료율 상향이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이후에 연금 수령액을 깎을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은 현재 보험료를 높이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금 당장 보험료 인상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시각도 있다. 국민연금의 실제 소득대체율이 30% 미만인 현 상황에서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기는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김동열 실장은 “고갈이라고 하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 일을 두고 국민들에게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은 협박밖에 되지 않는다. 보험료를 더 내도 돌아오지 않을 거란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아무도 더 높은 보험료를 내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초읽기

‘책임 투자 강화’ vs ‘연금사회주의’ 팽팽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안 초안을 공개한 제정위원회는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해가 바뀌기 전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공표하겠다고 밝혔다. 기관의 책임 투자와 기업 감시를 이끌 수 있어 긍정적이란 평가도 있는 반면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를 독려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기관이 단순 투자를 넘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 주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게끔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집안일을 도맡아 보는 ‘집사(steward)’처럼 기관들도 고객 재산을 책임감 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데서 유래했다.

해외엔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국가가 여럿 있다. 2010년 영국을 시작으로 캐나다, 스위스,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현재 12개 나라가 도입했다. ‘책임 투자’라는 대원칙은 같지만 주요 사항은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는 총 7개의 원칙으로 구성된다. 정책 수립·공시 의무, 이해 상충 해결 정책 마련, 투자회사 주기적 점검 등의 내용이 담겼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강제성은 없다. 기관투자자들은 자유 의사에 따라 참여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참여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지침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법적 제재는 없다. 단 기관투자자는 반드시 해당 결정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합리적 근거 없이 찬성표를 던졌다는 의혹이 ‘최순실 게이트’ 촉발과 함께 다시 한 번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됐다면 국민연금이 의결 자문기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병에 찬성한 이유를 상세히 공개해야 했다는 것이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스튜어드십 코드가 있었다면 애초에 회사가 일방적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설령 불공정한 합병비율이 결정됐더라도 기관투자자들이 주주총회에서 반대해 부결됐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스튜어드십 코드의 국내 도입은 2년 넘게 지체돼왔다. 2014년 11월 신제윤 당시 금융위원장이 처음으로 언급한 이후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돼왔지만 재계 반발에 도입이 수차례 연기됐다. 기업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기업 경영의 자율과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국민연금 같은 기관투자자를 활용해 기업 경영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자칫 ‘연금사회주의’에 빠지게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정부가 국민연금을 지렛대 삼아 기업 정책을 정권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있다. 주주 소송, 이사 해임청구 등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며 염려했다.

[서은내 기자 thanku@mk.co.kr,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6호 (2016.12.07~12.13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