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국민연금 냈나?

김병수 2016. 12. 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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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최순실 사태의 유탄을 맞았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를 특혜 지원한 것이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국민연금 도움을 받기 위한 대가성 지원이었다는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관련된 쟁점은 크게 2가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적절했느냐의 문제와 통상 외부인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넘기던 사안을 기금운영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의 의사결정과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은 말 그대로 국민들이 노후 대비를 위해 쌈짓돈을 모아둔 곳이다. 규모도 세계 3위에 오를 만큼 크다. 하지만 자금 운용과 관련된 의사결정, 낙하산 인사, 지배구조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삼성물산 합병안과 같은 사례가 또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책임투자와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제도적 개편을 통해 기금 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세계 3大 규모…덩치만 클뿐 제역할 못해

낙하산 인사와 정부·정치권 입김에서 못 벗어나
‘책임투자·경영 감시 기능 강화해야’ 목소리 커져

“요새는 진짜 이러려고 국민연금서 일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순실 국정 의혹 사태로 인해 주변에서 보는 시선도 곱지 않아요. 내년 초에는 (운용본부의) 지방 이전도 앞두고 있어 이직을 고려 중입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직원)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안건은 가결 요건인 66.7%를 가까스로 넘긴 69.5%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당시 합병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데는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하고 있던 대주주 국민연금의 역할이 컸다. 국민연금은 두 회사 합병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작업이라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찬성 쪽에 섰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연금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책임자는 물론 실무자들도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은 크게 2가지다.

국민연금은 통상 민감한 사안은 외부인으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넘겨왔다. 하지만 삼성물산 합병의 경우, 기금운용본부 내 투자위원회에서 결정을 내렸다. 투자위원회는 기금운용본부장과 각 부서 실장 8명, 본부장이 지명한 팀장 3명으로 구성된다. 본부장이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28p 경제칼럼 참조>

여러 의혹의 사실 여부를 떠나, ‘최순실 게이트’의 불똥이 튀면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구조와 기금 운용 방식, 낙하산 인사 등 쌓였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외국계 증권사의 한 임원은 “500조원이 넘는 국민의 재산을 특정인이나 정치권 입맛에 맞게 좌지우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진짜 문제”라며 “낙하산 인사와 이에 따른 전문성 부족과 줄서기 문화 등은 국민연금의 고질적 병폐”라고 꼬집었다. 실제 강면욱 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올해 초 선임될 때 서류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지만 면접에서 열세를 뒤집고 최종 선임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 과정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민연금 조직 내부에서는 분열과 반목이 되풀이되는 중이다. “누구는 정치권 ○○라인, 누구는 이사장 라인”이라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후문. 기금운용본부가 완전히 지방으로 이전하고 인력 유출이 심화되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질 개연성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연금이 책임 투자와 경영 감시에 소홀하다는 사실 역시 단골 지적 사안이다.

해외 주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사례를 보면 대부분 정해진 지침에 따라 자체적인 판단으로 결정하지만, 국민연금은 권한과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데다 최고위층의 전문성이 떨어진다. 외국계 운용사 한 펀드매니저는 “이전부터 비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기금이사추천위원회와 불투명한 평가 방식이 늘 문제로 지적돼왔다. 삼성물산 합병 당시에도 합병비율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했으면 비율 조정을 요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투자 수익 제고를 꾀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와 KT 등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에 대한 경영 간섭의 배후에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있다는 비판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이제라도 국민연금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A경제연구원장은 “제도적 개편을 통해 기금 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국민연금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같은 분명한 주주권 행사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을 말한다.

[특별취재팀 : 김병수(팀장)·배준희·류지민·서은내·나건웅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6호 (2016.12.07~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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