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싹~마른 부동산 시장..갈팡질팡 정부 정책 5가지 문제점

강승태,정다운 2016. 12. 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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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장혜영 씨(31)는 아파트 1순위 청약일이었던 지난 11월 30일, 결국 접수를 포기했다. 약혼자와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도금 대출과 잔금 대출을 활용하면 어렵게나마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겠지만, 청약 직전 일주일 새 대출금리가 0.6%포인트나 오르는 통에 덜컥 겁이 났다. 금리가 더 오르면 부부 둘이 벌어도 원리금은 물론 이자만 갚기도 빠듯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장 씨는 “수년 전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온 후부터 내집마련을 준비해왔다. 이제 와서 정부가 대출 길을 막는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털어놨다.

“중도금 이자후불제요?”

지난 11월 평일 방문한 서대문구 소재 ‘연희파크푸르지오’ 견본주택. 이제는 정말 ‘내 집’이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청약을 넣어도 늦지는 않았을까. ‘이자후불제’라는 직원의 설명에 걱정부터 앞선다. 총 분양가의 60%인 중도금을 대출로 빌리고 그 이자는 입주 시점에 한꺼번에 내면 된다는 이자후불제.

주택 시장이 1~2년 전만 같았다면 눈 질끈 감고 청약에 도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중에 감당할 수 있을까. 이자를 한꺼번에 내야 할 입주 시점에 자칫 집값이 급락한다면? 중도금 대출은 변동금리라는데 나중에 금리가 오른다면? 밀린 이자와 앞으로 내야 할 이자 부담까지 떠안고 평생 빚더미에 앉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청약·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투기 수요가 빠진 덕분에 당첨 확률은 높을 것”이라는 직원의 유혹이 썩 달콤하지 않다. 일단 안내문만 받아들고 견본주택을 둘러봤다. 방문객도 몇 되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청약을 벼르던 기자는 결국 청약 접수를 포기했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평균 4.33 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이 21 대 1을 웃돌았던 올 1~10월 대비 청약 열기가 팍 꺾인 셈이다. 이 아파트 전용 112.8㎡는 고작 0.55 대 1의 경쟁률 끝에 15가구나 미달됐다. 11·3 대책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1순위 청약 미달 단지가 나왔다.

▶대출 옥죄기 시작한 금융당국

▷실수요자 피해에 파장 일파만파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부터 제2금융권에 걸쳐 가계대출을 옥죄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가계부채 증가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온 조치지만 실수요자의 돈줄까지 막는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무차별 대출 규제, 주택 시장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1월 24일 집단대출과 상호금융권에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8·25 가계부채 관리방안 후속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아파트 집단대출 가운데 잔금대출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면 입주 시점까지 계약금·중도금·잔금을 차례로 납부해야 하는데, 잔금 납부 시 필요한 심사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또 내년 1월 1일 이후 분양하는 사업장에는 처음부터 대출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도록 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도입한다. 금융당국은 제2금융권으로 대출 상품을 갈아타는 ‘풍선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제2금융권도 집단대출 심사를 똑같이 적용한다.

▶가계부채 관리 필요하지만

▷갈지자 행보 정부 정책 비판

11·24 가계부채 대책은 가계부채 증가세를 줄이고 투기 수요를 억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3분기 가계신용 잔액(가계대출+판매신용) 규모는 1300조원에 달한다. 특히 올해 증가한 가계대출(56조7000억원)에서 집단대출이 차지하는 규모는 31.5%(17조9000억원)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이사는 “지금 시장 분위기로는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대책으로 대출을 통해 집을 사려는 수요가 전반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도 빠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5가지 이유를 들어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먼저 처음부터 가계부채 관리를 위한 명확한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단기 땜질식 처방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가계부채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은 2011년부터 이미 예고된 사실이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해 정부는 “시장이 경착륙하지 않도록 예의 주시할 것”이란 입장만 보였다. 그러면서도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고 경기 부양도 하겠다고 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계산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놓친 꼴이 됐다.

특히 2014년 제2금융권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시중은행 LTV(주택담보인정비율) 상한선을 70%로 확대한 것은 가계부채 증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그동안 감정가의 70~80%를 2금융권에서 빌리던 사람들은 모두 은행으로 몰렸다. 올해부터 금융당국은 은행권 대출심사를 강화하는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2금융권으로 대출이 몰렸다. 주택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은행과 2금융권을 오가며 규제를 피하기 바빴다. 그 사이 가계부채는 급속도로 늘었다.

집단대출 규제도 한발 늦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집단대출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내년부터 신규 분양 물량은 감소할 전망. 이미 규제가 필요한 시점은 지났는데 뒤늦게 대책이 마련된 셈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에 어떤 신호도 주지 않은 채, 그때그때 땜질 처방에만 집중하다 보니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며 “애꿎은 실수요자만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규제 방식도 문제다. 정부는 가계부채 증가세를 줄이고 투기 수요를 잡겠다고 했다. 그럼 그에 맞게 맞춤형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고려가 없다. 11·24 가계부채 대책은 모든 대출 대상자를 적용으로 한 규제다. 가령 투기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목표라면 ‘주택담보대출 2건 이하 제한’ 등이 더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은 무주택자가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막아버렸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를 구분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곳곳에서 잡음이 들린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계부채는 복합적인 문제다. 대출 채널을 막아가며 돈을 빌리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앞두고 시점 안 좋아

▷취약계층 보호방안 마련 시급해

지금처럼 돈줄을 조이면 애꿎은 취약계층부터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도 있다. 대출이 필요한 사람은 은행에서 제2금융권, 나아가 대부 시장으로 옮기면서 더 비싼 이자만 부담하게 된다. 금리가 오르는 시점에 저신용·저소득자의 가계부채 부실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부채 총량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채의 질적 측면을 봐야 한다. 전체 가계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도 소득이나 소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저소득층의 가계부채 문제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시행 시점도 좋지 않다. 미국은 금리 인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가 가계부채 대책에 갈피를 못 잡는 동안 은행들은 잇따라 담보대출 금리를 올렸다. 서민들이 주로 애용하는 정책금융 상품의 문턱도 높아지고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보금자리론 자격 요건을 강화하며 연말까지 공급을 사실상 중단했다.

부동산 시장도 최순실 사태와 미국 트럼프 당선 등 대내외 변수로 침체기로 접어들고 있다. 11·3 대책 발표 이후 거래는 사실상 올스톱됐다. 신규 분양 시장 또한 ‘눈치 보기’ 작전이 한창이다. 건설사들은 분양을 미루고 투기 수요는 관망세로 돌아섰다.

김광석 이사는 “가계부채 관리 대책이 필요하긴 했지만 시점이 안 좋다. 올해 초 미리 시행하든지 아니면 좀 더 늦췄어야 했다. 금리도 부담되는 상황에서 정국도 불안정한데 대출까지 옥죄니 시장 경착륙 가능성은 커졌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를 계기로 공급량이 급속도로 줄면 2~3년 뒤 다시 가격이 폭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건설사나 시행사는 대출관리가 강화되는 과정에서 입주가 안 되면 섣불리 사업 진행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2017~2018년은 예정대로 공급 물량이 늘겠지만 2019년 이후 공급이 대폭 줄면서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실장은 “수요가 줄어드는데 건설사 입장에서는 물량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 규제 적용 후 2~3년 뒤엔 공급량이 줄기 때문에 가격이 또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가처분소득은 줄고 있는데 대출 숨통마저 조인다면 한국 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고종완 원장의 생각이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정다운 기자 jeongdw@mk.co.kr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86호 (2016.12.07~12.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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