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을 웃고 울게 한 두 '판도라 영화'

고영득 기자 2016. 12. 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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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박정우 감독의 영화 <판도라> 포스터.

원자력발전을 옹호하는 내용의 영화를 내세워 원전을 홍보했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이번엔 또 다른 ‘원전 영화’ 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판도라’다.

한수원은 2014년 미국 로버트 스톤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판도라의 약속>의 판권을 사들였다. 이 영화는 원전에 반대하던 환경운동가들이 원전 찬성론자로 바뀐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한수원은 블로그를 통해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며 “원자력 에너지는 바로 인류의 희망”이라고 주장했다. 한수원은 이 영화를 각종 행사에서 상영하며 원전 홍보에 활용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지난 7일 국내 최초로 원전 재난을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박정우 감독의 <판도라>다. 영화에선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해 방사능이 누출되면서 한반도는 혼란에 휩싸이고 국민들이 그나마 믿었던 정부마저 우왕좌왕한다. <판도라>는 개봉 첫날 15만4641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한수원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판도라>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영화가 ‘한국수력원자력’은 ‘대한수력원자력’으로, 원전 이름은 전남 영광군의 한빛 원전을 연상케 하는 ‘한별’로 설정해놨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경주 지진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진 가운데 지진으로 원전이 폭발하고 전국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풍경이 한수원으로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수원 관계자는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일 수 없듯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면서도 “원전을 직접 볼 기회가 적은 국민들이 원전은 안전하다는 사실은 간과한 채 실제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오해할까봐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현실적인 내용인 만큼 영화에 대해 따로 대응할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

TV 광고 등을 통해 <판도라>의 예고편이 공개된 지난 2일 한수원은 블로그에서 “원전은 단층이 없는 단단한 암반 위에 지어졌다. 리히터 규모 7.0의 지진이 발생해도 안전하게 정지되도록 설계돼 있다”며 안전성을 특히 강조했다. <판도라>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대목이다.

<판도라>는 시나리오가 나온 지 4년, 촬영을 끝낸 지 1년6개월 만에 나왔다. 150억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영화이지만 제작 과정에서 공공자금인 모태펀드가 갑작스레 투자를 포기하자 외압설이 나돌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면 한국의 원전 정책을 꼬집는 자막도 나온다. 한국은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이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일부 선진국이 원전 폐쇄를 선언한 것과 달리 신규 원전을 짓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역시 원전당국인 한수원으로선 눈엣가시가 될 수 있다.

<판도라>를 연출한 박 감독은 포털사이트에서 공개한 제작노트에 “원전 재난은 일단 일어나면 복구가 불가능하다”며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우리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적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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