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지킬 박사' 세계도 홀릴까
[경향신문] ㆍ국내 제작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이젠 해외로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199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후 독일, 일본, 스웨덴 등 10여개국 무대에 올랐지만 유독 한국에서 이상하리만치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해외에선 <지킬 앤 하이드>가 흥행한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2004년 초연 후 10년 넘게 공연을 이어오며 하루 티켓 판매량, 누적 공연 횟수 등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국내에서 공연된 라이선스 뮤지컬 중 명실상부한 히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한국 가요의 질감을 지닌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멜로디, 신파적이고 극적인 이야기, 상반된 두 자아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조승우라는 배우의 힘이 한국 관객에게 호소했다고 분석한다.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작품을 탈바꿈시켜 인기작으로 만든 한국 프로덕션 오디 컴퍼니가 <지킬 앤 하이드>를 제작한 지 10여년 만에 브로드웨이 배우들을 데리고 한국판 <지킬 앤 하이드>로 해외에 진출한다.
신춘수 오디 컴퍼니 대표는 지난 7일 공연을 가장 먼저 시작하는 대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킬 앤 하이드>가 10년 넘게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 시장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브로드웨이와 합작으로 제작, 월드투어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디 컴퍼니가 리드 프로듀서로 제작하고 <렌트> <맘마미아!> 등을 선보인 워크라이트 프로덕션이 파트너사로 합류했다.
오디 컴퍼니가 제작한 이번 <지킬 앤 하이드>는 일종의 ‘테스트 베드’로 한국에서 먼저 공연된다. 대구를 시작으로 서울, 부산, 김해, 울산 등 국내 총 9개 도시에서 공연될 계획이다. 이후 싱가포르와 마카오에서 공연되며, 중국에선 현지 배우를 기용해 중국어로 공연할 예정이다. 장기적으론 유럽과 미국에서의 공연도 준비 중이다.
외형적으로 이번 작품이 기존 한국 프로덕션과의 가장 큰 차별성은 무대와 조명이다. 한국 프로덕션의 ‘지킬 실험실’ 무대에 책이 많이 비치돼 있었다면, 이번 프로덕션에선 각기 다른 색의 메스실린더 1800개가 등장한다. 기존 작품보다 다채롭고 속도감 있는 조명도 눈에 띈다.
파국으로 치닫는 드라마를 온몸을 던져 표현한 배우들도 뮤지컬에 깊이를 더한다. 브로드웨이에서 <닥터 지바고> <맨 오브 라만차> 등에 출연하며 실력을 닦아온 지킬·하이드 역의 브래들리 딘은 건장한 체격조건으로 하이드의 괴물성을 극대화한다. 딘은 기자간담회에서 “‘뮤지컬 배우 커리어에서 한국 공연은 꼭 한번 경험해봐야 한다’는 얘기를 브로드웨이 동료로부터 들었다”며 “한국 관객들에게 깊이 각인된 조승우의 공연을 유튜브를 통해 봤다. 특히 서늘하고 영적으로 차분한 느낌이 숨막힐 정도로 탁월했고, 나도 몇몇 부분은 참고하려 한다”고 밝혔다.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3의 준우승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루시 역의 다이애나 디가모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여성이 지킬을 사랑하며 겪는 비극을 폭발적인 가창력과 애절한 연기력으로 표현한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관객과 깊게 호응하는 배우로 주목된다.
아울러 언어가 바뀌면서 관람하며 느끼는 정서도 크게 달라진다. 신춘수 대표는 “한국어 공연이 은유적이었다면, 영어 공연은 조금 더 직선적이고 정확하게 상황을 표현한다. 신파적인 정서도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연출을 맡은 데이비드 스완은 이 작품에 대해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들과 비극적 열정에 대한 이야기”라며 “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면과 감추고 싶은 면을 갖고 있는데 이번 공연은 그 두 에너지가 팽팽하게 밀고 당긴다”고 소개했다.
오는 25일까지 대구 계명아트센터. 2017년 3월10일부터 5월2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대구 |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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