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과 조선 화가들이 만났다
[경향신문] ㆍ서울 DDP ‘…세상을 바꾸다’전
ㆍ비디오아트·산수화 나란히
ㆍ한국적 색채·이상향 염원 비슷
20세기의 비디오아트와 18~19세기 조선의 관념적 회화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1932~2006)과 조선 중후기를 수놓은 김명국(?~1663년 이후) 심사정(1707~1769) 최북(1712~1786) 장승업(1843~1897)의 작품들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고 있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문화로 세상을 바꾸다’전은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작품양식의 이름난 작가들이 만났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주최 측은 각자 별도의 전시회를 열 만한 약 30점의 작품을 각각 출품했다.
백남준과 조선 화가들이 어떤 연관성과 공통점을 기반으로 만났을까. “백남준은 서구 미술계에서 활동했지만 한국성과 동양정신을 구현하려해 조선 화가들과 일맥상통할 수 있다. 간송 전형필은 우리 문화를 지켜내고 백남준은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해 두 인물의 만남은 문화사적으로 특별한 에너지를 낼 수 있다. 출품작들은 이상향에 대한 염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과 이진명 간송미술문화재단 수석 큐레이터는 기획전의 취지를 이렇게 말했다.
전시장은 개별적으로 놓인 작품들도 있지만, 이 같은 의도 아래 연관성 높은 작품을 짝을 지어 배치했다. 길이가 818㎝(폭 58㎝)에 이르는 심사정의 역작 ‘촉잔도권’(1768년)과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1999~2001)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두루마리 그림인 ‘촉잔도권’은 전통 산수화의 갖가지 표현기법을 동원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내듯 장대한 산수를 펼쳐냈다. ‘코끼리 마차’는 부처를 태운 나뭇조각 코끼리가 TV와 라디오·확성기 등을 잔뜩 실은 마차를 끄는 설치작품으로 정보통신의 역사적 흐름을 떠오르게 한다.
장승업의 ‘오동폐월’과 백남준의 ‘달에 사는 토끼’도 짝을 지었다. ‘오동나무 아래에서 개가 달을 보고 짖다’는 뜻의 ‘오동폐월’은 늦가을 밤의 정취를 한껏 드러낸 시적인 작품이다. 나뭇조각 토끼가 TV 속의 달을 쳐다보는 ‘달에 사는 토끼’(1996)는 TV가 지닌 정보 매체로서의 엄청난 가능성을 달에 비유했다.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라고 강조한 백남준의 사유가 시각화된 셈이다. 또 장승업의 ‘기명절지도’(10폭 중 4폭)와 백남준의 ‘비디오 샹들리에 1번’(1989년), 최북의 ‘호계삼소’와 백남준의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 김명국의 ‘수로예구’(수 노인이 거북을 끌다), 그리고 백남준의 회화 ‘머리를 위한 선’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번 전시는 눈에 보이는 작품의 형상보다 보이지 않는 작품 속의 시간성과 상징성, 이야기들을 챙겨야 기획취지를 이해할 듯하다. 관람객으로선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기획취지와는 별도로 백남준의 초기~말기까지의 대표작,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숱한 일화를 지닌 조선 중후기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년 2월5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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