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미친 부동산 시장을 만든 사람들

박원경 기자 입력 2016. 12. 8. 15:55 수정 2017. 7. 17.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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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항상 때를 놓칠까? 대책 시행 이후에는 왜 항상 ‘풍선효과’라는 말이 따라붙을 정도로 대책엔 구멍이 뚫려있는 걸까?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있기는 한 걸까?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이다.

예전 한 경제 관료는 이런 질문을 하던 기자에게 “부동산 시장은 전후방 산업 연관효과가 커서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경제 전체가 가라앉을 수 있다”고 항변했다. 부동산 시장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여파가 커서 정부가 쉽게 개입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는 비단 앞서 소개한 경제 관료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을 다루는 상당수 경제 관료들이 줄기차게 외쳐왔고, 박근혜 정부 들어 더 자주 나오고 있는 이야기다.

● ‘실현된 적 없는 가정’과 숫자의 포로가 된 경제관료

올해 2분기 건설투자의 경제 성장 기여율은 51.5%.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을 건설에 기댔다. 이 중 주택 건설투자 증가율이 전체 건설투자 증가율의 2배 수준일 정도로 주택 건설이 건설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점점 커져 왔다. 이런 결과만 보면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경제 전체가 가라앉는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5년 동안 건설투자의 평균 경제 성장 기여율은 5.3%로 현재의 1/10 수준이었다. 때문에 집값이 정점을 찍었던 2006년 이후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았지만 그것 때문에 경제 전체가 가라앉지는 않았다. 이번 정부 들어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경제 전체가 가라앉는다”는 논리는 아직 실현된 적이 없는 가정일 뿐이다.

물론, 지금 경제 상황은 과거와 다르다. 경제 성장의 절반을 건설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현재 우리 경제는 분명 과거와 다르다. 그렇다고 경제 전체를 위해 정부가 현재 부동산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해서는 안 되느냐. 그건 다른 문제다. 현재의 경제 상황 때문에 잃은 것은 무엇인지, 무엇과 현재를 바꾼 것인 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미친 부동산 시장 덕에 웃는 쪽은 소수의 건설사와 금융회사, 일부 투기 세력 그리고 주택 거래량 증가로 세수가 늘어난 정부 뿐이다. 반면 대다수 국민들은 늘어난 대출금 때문에 생활비를 줄이며, 미친 집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곽으로 밀려나며 눈물 짓고 있다. 집값 때문에 생활이 점점 쪼들려 가는 대다수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 성장률이 영 점 몇 % 포인트 더 오르는 게 무슨 의미일까.

하지만, 경제 관료들에게 이 영 점 몇 %포인트의 중요성과 일반인과 다르다. 이들은 자신의 임기 동안에만 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가장 손쉬운 부동산 시장에 우리 경제를 맡겨왔다. 빚 내서 집사라는 식의 무책임한 정책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 사이 ‘부동산 시장이 가라앉으면 경제 전체가 가라앉는다’는 지금껏 실현되지 않은, 그리고 실현되어서는 안 되는 가정의 실현 가능성은 점점 높아져 왔다.

최근에는 1천300조 원까지 늘어난 가계부채를 근거로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쉽게 개입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꺼지면 가계부채라는 폭탄이 터져 모든 국민들, 특히 서민들이 더 큰 피해를 겪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경제 관료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가계부채를 키워온 가해자가 경제성장률이라는 숫자를 몸값으로 국민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부동산 시장은 폭등하고, 가계부채가 폭탄이 되어 가는 사이 우리 경제를 위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면 경제 전체가 무너진다’는 생각에 부동산 가격 하향 안정화를 통한 내수 확대 정책은 정부의 선택지에서 배제됐다. 그 결과 남은 것은 부풀려진 경제 성장률과 대다수 국민들의 한숨, 그리고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다.

● “언론은 부동산 시장을 오버슈팅 시킨다”

하지만,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미쳐버린 건 정부 관료들 때문 만은 아니다. 언론이 자발적이고 때론 적극적인 동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서 언급한 경제 관료는 기자에게 “언론이 부동산 시장을 오버슈팅(급등)시키고, 언더슈팅(급락)시킨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언론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급등락이 커져 정부 대책 마련 시점을 잡기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미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지만, 쉽게 부인할 수는 없는 이야기다.

언어는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신고제인 집회 및 시위가 ‘법원이 집회를 허가했다’,‘경찰이 집회를 허가했다’는 기사의 범람 속에 많은 국민이 허가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언어는 천천히 하지만 강력하게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 ‘분양 시장 찬바람’, ‘거래 절벽 우려’, ‘부동산 시장 한파’

뒤늦게 나온 ‘11.3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에 대한 언론 기사들이다. 몇 개월 새 수억 원이나 오른 부동산 시장을 잡겠다고 나온 것이‘11.3 대책’이었으니,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주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찬바람’,‘한파’,‘거래 절벽’ 등의 자극적 단어를 동원한 언론 기사를 보면 정부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는 게 마치 비정상적으로 인식된다. 이 지점에 있어선 소위 진보적 언론이든 보수적 언론이든 큰 차이가 없다.

정부 대책 발표 전, 부동산 시장을 비판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듯했던 언론이 이런 기사를 내놓고 있는 이유는 뭘까.

부동산 시장은 일반적인 경제 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그만큼 예측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기자들은 전문가들에게 더욱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의 상당수는 부동산 시장이 흥해야 이익을 보는 곳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책을 촉구했던 언론이 대책 이후에는 우려로 돌아서고, 아파트 공급 확대를 예상하면서도 집값에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는 기사들이 나오는 이유다.

경마 중계식 보도로 부동산 가격 폭등에 일조한 언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예측의 어려움 때문에 언론이 부동산 시장에 대해 손쉬운 ‘경마중계식 보도’에 기대고 있는 것에서도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부동산 기사의 상당수는 ‘전주 대비 집값이 몇 % 올랐다’, ‘모델하우스에 몇 미터의 줄이 생겼다’, ‘청약 경쟁률이 얼마다’는 식의 보도가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보도 행태가 집값을 더욱 부추긴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마중계식 보도는 의도와 관계없이 사람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더욱 그렇다. 경마중계식 보도를 보고 집값이 오르고 있구나, 더 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분양에 몰려 청약 경쟁률이 올라가면, 이후 분양하는 아파트 분양가는 더욱 높아져 집값은 더 큰 폭으로 상승한다. 기존 집값도 덩달아 상승한다. 이런 점에서 대다수 언론은 ‘언론이 부동산 시장을 오버슈팅(급등)시킨다’는 앞선 경제 관료의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언론의 보도 행태를 겨냥해 분양대행사 등에서는 출입인원을 제한하거나 알바를 동원해 일부러 모델하우스 입장 대기선을 길게 늘이기도 한다는 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만, 언론 보도가 ‘부동산 시장을 언더슈팅(급락) 시킨다’는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몇 개월 새 수억 원이 오른 부동산 가격이 최근 몇 천만 원 떨어졌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많은 언론들은 집값이 ‘급락’했다고 표현한다. ‘급락’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는 부동산 가격을 더 큰 폭으로 떨어뜨리는 데 일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매물을 거둬들이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더 내려가야 할 부동산 가격을 멈추게 하는 지지대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집은 투자 대상인가, 주거공간인가…그리고

집값은 당연히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앞서 소개한 기사들이 나왔을 수도 있다. 집을 거주의 공간이라기보다는 투자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부동산 가격 폭등기에 ‘집값이 소폭 오르는데 그쳤다’거나 주식의 기술적 분석 방법을 동원해 ‘집값이 과거 고점을 돌파하지 않았으니 아직 오를 만큼 오른 것은 아니다’ 는 식의 보도가 나올 수는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표현과 분석에 동의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집은 투자의 대상일까. 물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해관계다. 부동산 시장을 다룬 기사의 전후에는 예외 없이 부동산 광고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이번 정부에서는 집값 상승은 누구 때문이었을까에 있어 새로운 생각도 든다. 지난달 2일,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나의 철학은 부동산 투기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성장을 위해서 투기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금융위원장으로서 금융 정책을 이용해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수 있었던 사람이, 기존 집값을 떠받들기 위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8.25 부동산 대책’ 입안에 참여했던 사람이 내 놓은 이야기다. 자신의 철학이 갑자기 바뀌지 않았다면 외부적 요인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마침 임종룡 위원장이 자신의 철학을 공개적으로 밝힌 11월 2일은 이번 정권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검찰에 긴급체포된 이후다. 그리고 마침 최순실 씨는 부동산 거부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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