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흘려선 안 돼.. 비장한 말에 짓눌린 男子들"

김성현 기자 2016. 12. 8.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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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무엇인가' 낸 안경환 교수
"흔들리는 가부장제·화장하는 男.. 잔소리 대신 변화에 적응해가야"

안경환(68) 서울대 명예교수는 경남 밀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할아버지에게 '천자문'과 '동몽선습' '명심보감'을 배웠다. 조부는 1962년 돌아가실 때까지 상투를 풀거나 자른 적이 없었다. 안 교수가 살았던 밀양 청운리 안씨 고가(古家)는 현재 경남문화재자료 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많을 적에 그의 가족은 40여 명에 이르렀다. 안 교수는 "어릴 적부터 가부장제와 대가족 제도를 깊이 체험했기 때문인지 지금도 생각에 케케묵은 구석이 있다"며 웃었다.

안 교수가 최근 '남자란 무엇인가'(홍익출판사)를 펴냈다. 법학과 문학을 넘나들면서 역서와 공저를 포함해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지만 결혼과 섹스, 병역과 양성 평등 등 남녀 문제를 정색하고 다룬 에세이집은 처음이다. 그는 "대학 현직에 있을 때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주제인데, 오히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면서 "덕분에 젊은 필자들의 신간을 유심히 눈여겨보고, 인터넷과 SNS도 열심히 뒤졌다"고 말했다.

1948년생으로 '대한민국과 동갑내기'인 그는 "남자로 태어나 엄청난 특권을 누린 세대에 속하지만, 동시에 남자답게 사는 게 너무나 힘들었던 세대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남자는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되고, 목숨이 걸린 자리에서조차 비겁해서는 안 되고…. 어릴 적부터 이렇듯 비장한 말들에 짓눌려 살았던 것이 우리 남자들이었죠."

여기까지 들으면 책은 '남자 예찬'으로 가득할 것 같지만, 반전(反轉)이 있다. 가부장제는 이미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남성들도 시대 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 교수의 주장이다. 남자들이 귀고리·염색·문신을 하거나 공들여 화장을 하는 현상을 기술한 '남자 화장품 전성시대'라는 장이 대표적이다. 안 교수는 혀를 끌끌 차는 대신에 "집단이 아니라 개인의 시대에는 얼굴과 스타일이 개인적 가치에 포함될 것"이라고 '쿨'하게 말한다. 안 교수는 "우리가 시대를 만들지만 거꾸로 시대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인간상을 만들기도 한다"면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핏대를 올리는 순간에 우리는 늙고 만다"고 했다.

책에는 성매매와 간통, 성소수자 문제 등 민감한 주제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법학자답게 동서고금의 역사적 사례나 문학을 통해서 기존의 논의를 충분히 검토한 뒤 지극히 온정적이고 중도적인 '판결'을 내놓는다. 반면 한국 남성들의 첨예한 관심사이자 사회적 쟁점인 병역 제도에 대해서는 '모병제'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군 복무 면제를 둘러싼 소모적 갈등이 사라지고, 수십만 개의 청년 일자리가 생기는 등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나은 건 자율과 자유라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며 모병제는 이를 보여줄 기회"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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